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포토] “우리 삶을 지켜온 산성을 남기고 싶었다”

등록 2023-12-20 08:43수정 2023-12-20 08:48

사진전 ‘산성의 나라’
여주 파사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여주 파사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가 마길영의 사진전 ‘산성의 나라’가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시작된다. 오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산성을 주제로 한 한국 최초의 사진전이다. 그동안 개별 산성에 대한 전시는 간간이 이어져 왔으나 전국에 산재한 산성을 답사하고 기록한 사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국시대부터 전국 방방곡곡에 축조되어온 산성이 남한에만 1200곳 이상 남아 있다고 하니 한국은 가히 ‘산성의 나라’라 할 만하다. 같은 제목의 사진집 ‘산성의 나라’도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사진집을 보면서 속된 말로 “또 돈 안 되는 사진집을 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에 문을 연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지난 2014년 창간 25주년 무렵 인터뷰에서 “사진 한 점에 수천만 원씩 하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진가들을 쫓아다녔으면 경제적 형편은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잘 나간다는 사진가들에 빌붙어 책을 내오질 않고, 나 스스로 절치부심하며 이 땅의 사진을 발굴해 사진 독자층을 형성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라고 말했다. 또한 눈빛에서 사진집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기준이 무엇인지 묻자 “사진은 원래 민주적인 매체이므로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아무나 사진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를 판명하는 나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대상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자기 작업을 해왔느냐 하는 것이다. 거기엔 프로나 아마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의 눈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그리고 그의 기록이 훗날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잘 팔리지 않아도 오래 두고 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런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이번 사진집 ‘산성의 나라’는 당장 인기를 끌 책이 아니지만 훗날 어떤 의미로 남을지를 생각한다면 눈빛에서 낼만 한 책이라고 끄덕거려진다.

마길영 사진집 ‘산성의 나라’ 표지
마길영 사진집 ‘산성의 나라’ 표지

출판사도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경도 아니고 돌무더기를 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성 작업을 한 사진가의 속내도 궁금했다. 지난 17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마길영 사진가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10여 년 전 가족여행을 갔는데 어떤 산 입구에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다가 느낀 아늑함과 편안함이 산성 작업의 시작이라고 했다. “마치 내가 어려서 성문 앞에서 뛰어놀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니) 주말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남들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찍고 싶어서 등산도 했다. 산에 가서 보니 규모 있고 패턴이 있게 흩어진 돌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게 산성의 흔적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산성을 찍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다닌 성은 서른 곳이 넘었는데 이번 책에는 19곳만 들어갔다고 한다.

“보은 삼년산성의 경우 성곽 폭이 넓어 차 2대가 나란히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중국의 만리장성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그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성을 찾아다녔다. 기본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도를 보고 성의 윤곽이 있는 곳에서 느낌이 가는 곳을 먼저 가봤는데 실제론 다 무너져서 허탕을 친 적도 많았다. 안성의 죽주산성은 1236년 고려 고종 때 죽주방호별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펼쳐서 승리한 곳. 이는 여섯 차례에 걸친 몽골침입에서 고려가 승리한 대표적 전투 중의 하나다.

“산성을 둘러보다 보면 아름다운 S자 곡선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아름답게 보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사다리 등을 타고 성을 공격하는 적군의 옆면이나 등을 활로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치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산성을 왜 찍는가?

“산성의 숫자를 다 세어볼 순 없지만 웬만큼 큰 마을이라면 마을마다 하나씩 산성이 있는 듯하다. 그만큼 전쟁이 잦았다는 뜻. 기본적으로 산성은 전쟁이 나면 피난하는 곳이다. 게다가 험한 산에 있는 산성은 1명이 수비군사가 능히 100명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견고했다.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왔다. 삼전도의 굴욕과 더불어 정축화약이란 것을 맺었는데 거기 항목 중에 ‘성을 새로 쌓거나 개축하지 말 것’이란 것이 들어있다. 얼마나 성을 공략하기가 힘들었으면…. 우리 삶을 지켜온 공간이 바로 산성이다. 5000년 역사를 견딘 이 성들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등산이나 산책코스로 우리에게 편히 다가오지만 걷다가 돌 하나 보더라도 그게 역사이며 우리 민족 생존의 흔적이란 것을 생각해주면 좋겠다”

충주 충주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충주 충주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세종 운주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세종 운주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상주 견훤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상주 견훤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고창 고창읍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고창 고창읍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고창읍성을 보면 성문 앞에 초승달 혹은 말발굽처럼 생긴 자그마한 성을 둘러져있다. 그게 뭔가?

“옹성이란 것이다. 전쟁영화를 보면 성문을 부수기 위해 큰 나무 같은 공성 도구로 성문을 타격하는 장면이 있다. 옹성이 있으면 직각으로 성문을 타격하기가 힘들다. 옹성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공격군사의 숫자가 제한적이니 수비가 용이하다.”

처음 산성을 찍을 때 마길영 사진가는 드론 생각을 못 했다. 특히 가지와 잎이 울창해지는 여름철에는 어디까지가 성인지 절벽인지 성의 규모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2년 전에 드론으로 처음 산성을 찍어보니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고 한다. 이미 촬영을 마친 산성에 드론을 들고 다시 가서 다리품을 팔아야 했지만 그 덕분에 책과 전시를 보게 될 독자와 관객들은 한눈에 편히 성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성을 보니 돌무더기처럼 보이기도 하던데?

“한국의 산에는 대부분 나무가 자란다. 그런데 산성은 자라나는 나무에 의해 파괴되기도 한다. 그래서 관리인들이 주기적으로 산성에 올라가 돌 사이에서 자라나는 나무를 벌목해주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작은 행성에 바오바브나무가 자라는 것을 방치하면 행성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은 이치다. 그 밖에 여러 이유로 무너진 성이 적지 않다. 현재는 여러 지방자치 단체에서 산성복구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산성이 복구의 손길이 필요하다. 잘 유지 보수가 되면 시민들이 사랑하는 등산로의 역할도 하면서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사진집이 꽤 두껍고 크게 나왔다. 공들여 만든 것 같은데….

“안성 죽주산성은 어머님과 함께 간 곳이다. 산성 작업을 하던 중에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산성 작업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어머님이 살아 계셨을 때 이 책이 나왔으면 좋았겠는데…. 나는 윤회를 믿는다. 어머님이 다음에 또 태어났을 때 이 산성사진집을 보시길 희망한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어떠한가?

“수도권의 대표적 성곽인 남한산성, 북한산성, 수원화성 작업을 시작했다. 그 일이 끝나면 남도의 산성도 찍을 계획이다. 요즘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당연히 성을 둘러싼 전투 장면이 나오면 시선과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 신의주에서 평양, 개성까지 숱한 전투가 벌어졌을 것 아닌가? 여건이 되면 북한의 산성도 꼭 가보고 싶다.”

사진집의 서문을 공학박사인 김원 사진가가 썼다.

“산성 사진은 무게중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묵직한 산성을 묵직하게 담아낸다. 산성 사진의 공간적 무게중심은 거리에서 나온다. 가까이에서는 무게중심을 찾지 못한다. 한발 물러서고 두 발 물러서면서 서서히 무게중심을 찾아야 한다. 멀리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산성이기 때문이다. 산성은 산성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산성 사진의 시간적 무게중심은 관심에서 나온다. 관심이 있어야 자주 간다. 자주 가야 보이고 보여야 찍는 것이 사진이다. 수십 개의 산성을 수도 없이 찾은 작가에게서 사진의 시간적 무게중심을 느낀다. 한발 다가갔다가 다시 물러설 줄 아는 작가에게서 사진의 공간적 무게중심을 느낀다. 수천 년 동안 산성 성벽의 돌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가 무게중심이듯 작가의 사진이 가볍지 않은 이유도 무게중심 때문일 것이다. 그 무게중심 때문에 무너진 성벽 사진에서 봄 냉이가 돋아나고 있다. 산성이 산에서 걸어 내려와 사진이 되었다. 비로소 산성 전체가 보인다.”

공주 공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공주 공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오산 독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오산 독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담양 금성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담양 금성산성. 마길영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논산 노성산성에서 마길영 사진가.
논산 노성산성에서 마길영 사진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취했나 봄’ 패러디 쏟아지고…문화·체육계도 ‘계엄 후폭풍’ 1.

‘취했나 봄’ 패러디 쏟아지고…문화·체육계도 ‘계엄 후폭풍’

12·3 계엄 ‘서울의 밤’…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리네 2.

12·3 계엄 ‘서울의 밤’…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리네

202:1 경쟁률 뚫고 ‘60초 독백’ 열연…한국영화 이끌 얼굴들 모였다 3.

202:1 경쟁률 뚫고 ‘60초 독백’ 열연…한국영화 이끌 얼굴들 모였다

콩으로 쑨 된장·간장, 한국 23번째 인류무형유산 됐다 4.

콩으로 쑨 된장·간장, 한국 23번째 인류무형유산 됐다

연예계도 계엄 여파 ‘혼란’…두아 리파 내한공연 두고 문의 빗발 5.

연예계도 계엄 여파 ‘혼란’…두아 리파 내한공연 두고 문의 빗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