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서울 성균관대에서 평화의나무합창단과 사이마타합창단이 ‘강제병합 100년-제1회 한일 시민의 합창’ 합동공연을 하고 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제공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를 포함한 간토 지역에서 사상 최악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역사에서 간토대지진은 역대급 자연재난의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른바 자경단의 광기에 수천명이 희생당한 재일 조선인들에게 간토대학살은 끔찍한 대재앙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일 두 정부의 외면 속에 간토대학살은 잊혀져왔다. 올해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일 시민 합동 추모문화제’ 공연이 열린다.
경기문화재단(대표 유인택)은 오는 9일 오후 7시 경기도 성남 가천대 예음홀에서 ‘2023 한일 시민의 합창-간토, 100년의 침묵’ 공연을 올린다. ‘여기, 오늘 울려 퍼지는 한일 평화와 상생의 하모니’를 주제로, 한겨레 평화의나무합창단과 일본 사이타마합창단, 경기소년소녀합창단, 이애주전통춤회, 엠클래식 오케스트라, 그리고 재일동포 2세 가수 이정미 등 두 나라 예술인들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특히 평화의나무와 사이타마 합창단은 지난 2010년 8월 ‘강제병합 100년 한일시민대회’ 때 서울에서 ‘제1회 한일 시민의 합창’ 합동공연을 한 이래로 지금까지 거의 매년 두 나라를 오가며 문화교류를 해왔다.
‘경관대의 경계리 애의누 원의한/ 슬픈 조사와 추도가로 마쳐/ 인천에서 진재시 참사동포 추도회-작년 9월1일 일본 관동지방 진재 때에 참사한 동포를 위하여 인천로동총동맹의 주최로 추도회를 개최한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 동 추도회는 지나간 1일 오후 8시반부터 시내 산수정 공회당에서 열리었는데 정각 전부터 정사복 순사 삼십여명이 경계하는 속에 정각이 되어 주최측으로부터 로동총동맹위원장 박창한씨의 개회로 애도사가 있은 후 잠시 묵상을 하였는데 회중은 입추할 여지가 없이 무리 1천여명에 달했으며 장내의 공기는 슬픈 바람이 부는 듯 자못 긴장한 가운데…’
이번 추모문화제는 ‘1924년 9월1일 당시 경기도 인천의 공회당(지금의 인성여고)에서 간토대지진(간토대진재) 1주기 추도회가 열렸다’는 옛 일간지의 기사를 계기로 기획됐다.
1924년 9월1일 경기도 인천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주기 추도회를 알린 ‘경관대의 경계리 애의누 원의한’ 제목의 기사. <조선일보> 1924년 9월3일치.
1924년 9월1일 ‘간토대지진 1주기 추도회’가 열렸던 경기도 인천부 시내 산수정의 공회당의 일제 강점기 전경. 지금의 인천 송학동 인성여고 다목적홀 자리이다. 인천시사에 실린 사진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1923년 간토 일대에서 진도 7.9의 강진이 터져 수만명이 죽고 수백만명이 집을 잃고 떠도는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졌고, 일본 경찰의 비호 속에 자경단이란 시민조직에 의해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제2의 3·1만세운동을 경계한 일제의 통제를 뚫고 조선인 피해를 조사한 이재동포위문반이 1924년 1월 발표한 기록을 보면, 최소한 6661명의 조선인이 희생당했다. 100년이 지나는 동안 사건의 진상과 내막은 여러 증거와 연구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의 날조된 선동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일부 극우 정치인은 학살 자체를 부인해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역대 한국 정부 역시 공식적으로 진상규명이나 사과를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침묵’을 지켜왔다.
이번 추모문화제의 총감독이자 ‘간토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을 만든 이용주 평화의나무 합창단 지휘자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이미지 혹은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타인의 기억과 기록에 의존하여 조합하는 방법으로는 사건을 온전하게 서술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답답함을 안은 채 한 곡 한 곡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지금 여기 사는 음악가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비록 당시의 목격자는 아니지만, 남겨진 자로서 후대에 증언을 전해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침묵’을 깨는 의미를 밝혔다.
■포털 환경상 영상이 보이지 않을 경우 한겨레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119056.html
사이타마 합창단의 핫단다 마코토 단장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함께 간토의 진실을 직시해 그릇된 역사를 절대로 또다시 반복하지 말고 다 함께 평화의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기원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우리 쪽의 ‘첫 한일 시민 합동 추모문화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취지를 밝혔다.
사이타마 합창단은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1960년부터 활동해온 순수 민간문화단체이다. 도쿄도 북쪽에 자리한 사이타마는 간토 대학살의 현장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사이타마의 한 단원은 “앞서 2010년 ‘강제병합 100년’ 합동공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사과의 뜻을 전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음속에 한국인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뜻을 간직한 채 공연을 준비했다”고 개인적인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간토대지진 100년 만에 처음 열리는 한-일 합동 추모문화제인 ‘간토, 100년의 침묵’ 포스터. 기획사 에이앤티스토리 제공
추모문화제 1부의 주제는 ‘간토의 기억 100년’이다. 희생자의 넋을 불러오는 이애주한국전통춤회의 넋전춤을 시작으로 대학살의 참상을 평화의 나무와 사이타마 합창단이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2부는 ‘참회와 화해’의 시공간을 이정미 가수와 경기소년소녀합창단이 두 나라의 동요 등을 통해 연출한다. 3부에서는 사이타마 합창단의 단독 무대에 이어 출연진 전원이 ‘평화와 화합의 대합창’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추모문화제는 전석 초대 공연으로, 누구나 예약번호(010-3675-1518)에 문자로 신청하면 된다.
김경애 선임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