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장한나(왼쪽)와 그의 스승 미샤 마이스키. 크레디아 제공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 아트홀. 나란히 들어선 스승과 제자는 시종 싱글벙글했다. 국내에서 11년 만에 한 무대에 서는 ‘사제 합동 공연’을 앞두고 열린 간담회였다. 스승은 여전히 첼로를 켜는데, 제자는 이제 지휘봉을 잡는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5)와 그가 ‘유일무이한 제자’로 꼽는 지휘자 장한나(41)다.
30년 전 하늘 같은 스승 앞에서 입도 벙긋하지 못했던 제자는 이제 스승을 ‘미샤’란 애칭으로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한다. 스승도 제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번에 두 사람이 협연할 곡은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마이스키는 “인기 있고 잘 알려진 곡이지만 연주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작곡가의 의도와 정신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줄 것”이라고 했다. 장한나는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과도 같은 곡”이라고 했다. 장한나는 디토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도 연주한다. 17일 전주를 시작으로 대전(19일)과 경주(21일), 서울(23·24일)에서 공연한다. 장한나는 “연주자로서 눈을 열어주신 마이스키,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연주했던 드보르자크,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베토벤과 함께하는 자리라 설렌다”고 했다.
스승은 “첼리스트 경력을 희생해야 했지만 지휘에 전념하고자 하는 제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기회가 된다면 첼리스트로 돌아와 슈베르트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현악 5중주를 함께 연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쳤다. 제자도 “언젠가 슈베르트의 5중주를 같은 무대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첫 국내 협연은 2012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였다.
“선생님은 개성과 예술세계가 뚜렷한데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누리시는 분이죠.” 장한나는 지휘자로서 보는 연주자 마이스키를 이렇게 표현했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마이스키는 30년 전 처음 한나의 첼로 연주를 들었을 때의 기억을 이렇게 되살렸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92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이스키의 연주회였다. 첼로를 배우던 10살 장한나의 아버지는 벨기에에 살던 마이스키에게 딸의 연주가 담긴 테이프를 보냈고, 연주를 들어본 마이스키는 즉시 회신을 보내 다음해 이탈리아 마스터 클래스에 한나를 초청했다.
“가장 후회가 되는 건 당시 이탈리아 마스터클래스에서 찍은 사진 한장이 없어요. 열살 꼬마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진심으로 대해주신 선생님이 그땐 그렇게 어려웠나 봐요.” 장한나는 “요즘은 선생님 만나면 먼저 휴대폰으로 사진부터 찍는다”며 “그래서 선생님이 제게 붙여준 별명이 ‘셀카퀸’”이라며 웃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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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장한나(왼쪽)와 그의 스승 미샤 마이스키. 크레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