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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구구단 끝나면 논어 외워볼까”…백제시대 6급 공무원 아빠의 일상

등록 2023-06-05 08:00수정 2023-06-06 13:01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전
물납 통계업무, 자식 구구단 교육
백제 공무원의 고단한 일상 적혀
특별전 전시장 한편에 나온 백제 목간 실물. 가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관직을 청탁하면서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한문으로 쓰여 있다.
특별전 전시장 한편에 나온 백제 목간 실물. 가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관직을 청탁하면서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한문으로 쓰여 있다.

“아들아, 구구단 목간은 잘 받았느냐?”

“네, 공부 중입니다.”

“관직에 오르려면 공자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구구단이 끝나면 같이 논어를 외우도록 하자.”

“네. 아버님.”

이 대화는 1400년 전 백제 도읍 사비도성(충남 부여)에 살던 6급 공무원 아버지 득진과 그의 어린 아들이 나눈 것이다. 충남 부여 금성산 자락에 있는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실 특별전 진열장에 이 대화는 카카오톡 이미지로 나와 있다. 당연히 허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대화의 주된 내용은 사실이다. 카톡 창 이미지 옆에 당시 백제인들이 공부했던 세모진 나무쪽에 구구단이 적힌 암기장과 공자의 말씀을 정리한 <논어>의 1장 ‘학이(學而)…’편 내용을 적은 나무쪽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득진 또한 실재했던 인물로, 6품 나솔 직위와 그의 이름을 명기한 나무쪽 문서가 부여읍내 구아리에서 출토된 바 있다. 백제 공무원 득진은 지난달부터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7월30일까지)를 이끌어가는 화자다. 박물관 기획진은 이른바 목간으로 불리는 백제인의 나무쪽 문서가 당대엔 오늘날의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구실을 했다고 본다. 목간 출토품 실물들과 더불어 목간에서 파악한 정보를 만화나 카톡을 보는 듯한 이미지로 구성해 보여준다. 흥미진진한 당대 백제인의 생활사 이야기를 득진이 다른 백제 사람들과 나누는 카톡 대화를 통해 풀어간다.

박물관 진열장 옆에 카카오톡 창으로 꾸며 패널로 붙인 백제 관리 득진과 아들의 구구단, 논어에 대한 대화 내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목간의 발굴 보존처리 과정과 백제 목간의 90% 이상이 나온 사비도성의 발견 지역을 디오라마로 소개한 1, 2부에 이어 나오는 3부 ‘목간, 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가 전시의 핵심이다. 그동안 백제 목간에 쓴 글씨를 읽고 목간과 함께 출토된 문화재를 연구하며 축적된 판독 내용을 11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는데, 백제 공무원 득진의 고단한 하루 일상에 얽힌 이야기들로 가공해 콘텐츠를 풀어낸 점이 독특하다.

목간에 쓰인 백제 사람의 신분과 이름, 행정, 세금 징수와 꼬리표, 구구단 교육, 의료, 대출과 이자, 백제 사찰과 제사, 손편지, 글씨 연습의 흔적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나라에서 춘궁기에 빈민들에게 곡식을 꿔주고, 불교 축일 날 절에서 소금을 보시하고, 몸이 아프면 의사에게 요청해 처방을 받고, 일감이 없어 관직 자리를 청탁하는 백제 사람들의 생활 현장을 곁에서 지켜보듯 만날 수 있다. 백제 목간의 적외선 확대 사진을 생생하게 손으로 터치하면서 넘겨볼 수 있는 말미의 대형 디지털 검색대는 이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전시장 말미의 디지털 사진 검색대. 대부분의 백제 목간을 찍은 적외선 사진 이미지를 손터치로 검색할 수 있다.
전시장 말미의 디지털 사진 검색대. 대부분의 백제 목간을 찍은 적외선 사진 이미지를 손터치로 검색할 수 있다.

부여에서 출토된 구구단 목간과 설명도.
부여에서 출토된 구구단 목간과 설명도.

박물관 진열장 옆에 카카오톡 창으로 꾸며 패널로 붙인 백제 관리 득진과 교사의 대화창 이미지. 아들의 구구단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나무쪽 암기장을 교육자료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박물관 진열장 옆에 카카오톡 창으로 꾸며 패널로 붙인 백제 관리 득진과 교사의 대화창 이미지. 아들의 구구단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나무쪽 암기장을 교육자료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부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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