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천 박사가 인터뷰 뒤 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서예가이자 미술품 감정가 이동천(57) 박사가 붓을 잡은 지는 올해로 50년이 넘는다. 전북향교재단 이사장을 지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 서예를 시작해 ‘학생 명필’로 이름을 날렸단다. 고교 시절 서예 전국 대회 1등 수상으로 전북 교육청이 선정한 ‘전북의 별’로 뽑혔고 그때부터 꽤 큰 돈을 받고 비문을 썼다고 한다. 전남 영광의 묘장서원 묘정비도 그가 15살에 쓴 글씨란다.
1994년 중국 유학 이후 미술품 감정으로 인생 항로를 튼 그이지만 지난 몇 년 새 ‘서예가 이동천’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기는 재야 원로인 함세웅 신부와의 만남이었다. 2019년 이 박사에게 서예 지도를 받기 시작한 함 신부는 불과 1년 뒤인 2020년에 ‘암흑 속의 횃불’ 서예전을 열었고 <한겨레> 온라인판에 1년 동안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연재도 했다.
올해 초 ‘왕희지에서 김정희까지 이천오백년 서예 대가들의 비법’이란 부제를 달아 책 <신서예>를 내기도 한 이 박사를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함세웅 신부와 가톨릭 신자인 이동천 박사가 서예 수업에 앞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동천 박사 제공
“8년 전 1년 동안 중국 베이징에 머물렀을 때 한인 성당에서 사목하던 한국 신부님 세 분에게 서예를 가르쳤는데 모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었어요. 그 인연으로 함세웅 신부님을 만났죠. 올해 초에는 제주에 내려가 문정현 신부님에게도 7박8일 동안 서예를 가르쳤죠.”
1999년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중국 서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내 예술품 감정학 박사 1호로 불린다. 중국에서 이 나라 서화 감정의 최고봉이라는 양런카이(1915~2008)에게 서화 감정학을 사사했기 때문이다. 박사 취득 3년 뒤인 2002년 명지대 대학원에 국내 최초로 예술품 감정학과를 개설해 주임 교수를 2년 지냈고 2004년부터 15년 동안 서울대 미대 대학원에서 예술품 감정론을 주제로 강의했다.
그의 최근작 <신서예>는 왕희지, 안진경, 저수량, 김정희, 허목, 권돈인 등 한·중 서예 대가들의 글씨에서 찾아낸 ‘전번필법’에 초점을 맞췄다. ‘전번필법’은 ‘붓을 굴리면서 뒤집는다’는 뜻으로, 옛 서예 대가들은 한 일자 한 획을 쓰더라도 일반적인 붓놀림이 아니라 붓을 굴리고 뒤집으며 썼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 시대 효종의 편지와 현종 말기 편찬된 책 <두창경험방> 등에서는 한글 서예에 쓰인 전번필법의 예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의 출발을 묻자 그는 중학 시절 전주의 서예학원 다닐 때 기억을 떠올렸다. “(학원에서) 아무리 봐도 왕희지 원 글씨와 학원 선생님이 써준 글씨가 달랐어요. 원본을 재현해보려고 갖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 말고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을 했죠.” 그 뒤 독학해 전번필법이라는 자신만의 답을 찾은 그는 이 붓놀림으로 1995년에 <이동천 위체서 천자문>을 펴내기도 했다. 위체는 중국 북위 시절 서예를 말한다.
왜 전번필법일까? “뼈와 힘줄이 있는, 살아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죠. 그러려면 한 획을 쓰더라도 붓면을 굴리면서 뒤집어서 써야 한다는 게 옛 서예 대가들의 깨달음이었죠. 중국은 왕희지와 저수량, 한국은 허목과 이삼만, 권돈인, 김정희가 이 필법을 잘 구사했어요.” 요즘 서예가들은 어떻냐고 하자 그는 “거의 구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
15살때 묘장서원 비문 쓴 ‘학생 명필’
중국 양런카이에 서화 감정학 사사
국내 예술품 감정학 박사 1호 활약
문화재급 서화에 위작설 제기 ‘파장’
함세웅 신부 지도로 ‘서예가’ 존재감
붓 굴리며 뒤집는 전번필법 가르쳐
서예 대가 비법 다룬 ‘신서예’ 펴내
“유튜브 등 전번필법 보편화 나설 것”
이 책 집필에 4년이 걸렸다는 그는 출간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5년 전에 당시 남요원 청와대 문화비서관에게 서예를 가르쳤어요. 그분이 수강을 마치고 저에게 ‘서예를 배워보니 세상에 악필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오랜 세월 홀로 터득한 서예 비법인 전번필법을 보편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함세웅 신부님도 글씨의 획 하나하나를 왕희지 전번필법으로 지도했어요. 신부님은 저와 서예 공부하는 시간을 ‘영성 수련’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2008년부터 언론 기고와 저술 등을 통해 여러 문화재급 서화에 대해 위작설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울대 강의 교재로 쓰려고 낸 책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에서 천원 권 뒷면에 새겨진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가짜라고 주장한 게 그 시작이었다. 그가 서울대에서 공개 강연회까지 열어 <계상정거도>가 가짜라며 그 근거를 대자 문화재위원회가 감정에 나서 최종적으로 진품 결론을 내렸다. 이 그림은 삼성가 수집품에서 출발한 리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 2016년에 낸 <미술품 감정비책>에서는 천경자 화가 작품인 <뉴델리> 위작설을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위작을 밝히는 데 관심이 없단다. “10년 전 1년 동안 <주간동아>에 연재까지 하며 문화재급 작품 수십 점이 가짜라고 써도 조용하더군요. <뉴델리>를 전시했던 서울시립미술관도요. 언론도 시장 죽일 일 있느냐는 반응이었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가짜 글씨가 경매에 나왔다면서 검·경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도 했지만 무반응이었어요. 그동안 한 인간으로서 제가 할 짓은 다 한 것 같아요.”
이 박사 뒤로 그가 전번필법으로 쓴 글씨가 보인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가짜가 판치는 국내 고미술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진품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고미술품 가격이 중국에 비하면 형편없어요. 추사 급이라면 중국은 작품당 100억원은 될 겁니다. 거기에는 감정 문제가 커요. 우리는 감정 사기로 감옥을 갔다 온 분들이 지금도 버젓이 감정을 하고 있어요. 분석적인 전문 감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죠. 중국만 해도 많은 대학에서 감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고 일본은 대를 이어 감정을 하는 집안이 많아요.” 이런 말도 했다. “중국은 미대에 가면 집안을 일으킨다고 해요. 감정이 돈이 되고 직업화가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미대 복도에 그림이 쌓입니다.”
함 신부 등 그의 제자 여러 명은 서예 개인전을 열었지만 정작 그는 지금껏 한 번도 개인전을 하지 않았단다. “내년엔 전시회를 열어야죠. 앞서 올해는 한글 서예에 나타난 전번필법을 쉽게 설명하는 책과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