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개막식에서 작업모를 쓴 채 팬티 차림으로 퍼포먼스판을 벌인 뒤 카메라 앞에 선 성능경 작가. 그의 발치에 단골 퍼포먼스 도구인 훌라후프와 여행용 가방이 보인다. 작가 오른쪽 옆에 있는, 스티커들을 다닥붙인 피아노는 <피아노 모독>이란 제목을 붙인 설치작품으로 집에 있던 것을 작품 재료로 썼다. 1980년대부터 2017년까지 3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만든 것이라고 한다. 노형석 기자
“선생은 80년대 민중미술의 앞과 뒤를 잇는 전위와 후위의 작가입니다. 수십년 동안 세계를 경험하면서 세상과 사물들을 아주 정확하게 보려는 리얼리즘의 의지와 감각이 있고 작품에 이를 구현해왔기 때문이죠.”
“그를 민중미술 범주에 가두면 안돼요. 언어유희를 하며 우회적으로 폐부를 찌르는 방식으로 현실을 비판해온 분입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 전시장에서 자신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품인 ‘신문 오리고 읽기’를 실연하고 있는 성능경 작가. 노형석 기자
두 논객은 한치도 물러섬이 없었다.지난 19일 오후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에서는 민중미술 계열 평론가 강성원씨와 모더니즘 계열 평론가 김찬동씨 사이에 근래에 보기드물게 열띤 입씨름이 벌어졌다. 바로 이 미술관에서 지난 5일부터 개인전을 열고 있는 79살 원로작가 성능경씨의 작품세계를 제재로 놓고 열린 전문가 토론회(콜로퀴엄)에서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었다. 성 작가의 작업들이 전체적으로 한국 민중미술의 바탕인 비판적 리얼리즘의 경지에 이른 것인지, 현실을 에둘러 조형적인 관점으로 표현하는 모더니즘의 범주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팽팽한 논리 대결을 펼친 것이다. 아쉽게도 곧장 성 작가의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가 예정된 탓에 이들의 논쟁은 20여분 만에 중단된 채로 토론회는 마무리됐다. 그러나 청중들은 고무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 동안 서로를 피하며 침묵했던 민중미술-모더니즘 진영 전문가들이 성 작가의 작업 덕분에 모처럼 말문을 터뜨리는 광경을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퍼포먼스복을 입은 성능경 작가. 지난 2월22일 서울 북촌 백아트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 때 작품을 싼 알루미늄 호일을 전시장 벽에 붙여놓고 익살스럽게 손짓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성·능·경! 15세기 조선의 사육신이자 선조인 성삼문과 디엔에이(DNA)를 나누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원로 전위 예술가의 이름이 2023년 한국 미술판에서 유례없이 뜨거운 관심 속에 호명되고 있다. ‘올해 미술판에서 가장 핫한 80대 신예 원로작가’란 별칭이 따라붙었다. 자하미술관 토론회의 열띤 논쟁은 단적인 사례일뿐이다. 이미 올초부터 현장의 작가나 미술시장의 화상, 미술사학계 연구자들이 그의 작품과 작업 이력들을 잇따라 담론거리로 올리면서 성능경 바람은 일종의 `현상‘으로 전화하는 양상이다.
성 작가는 70년대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을 풍자한 문자 떨어져나간 신문지 작업들로 한국 개념미술과 전위 실험미술의 터전을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나 20대에 그룹전을 연 것으로 작파해버렸다. 군대를 다녀온 1973년부터 기사와 사진들을 오려내 따로 보관하면서 신문지를 해체하는 비물질적 퍼포먼스로 음울하고 수상쩍은 유신시대를 풍자했다. 1973년 에스티(ST)그룹으로 흔히 불리는 당시 전위미술인 단체인 조형미술학회에 적을 두고 활동을 본격화했지만, 그때부터 제도권미술계에서 외톨이에 가까운 고립무원의 길을 50년 가까이 걸어와야 했다. 한국미술판의 70년대는 노장사상을 기치로 내걸고 벽지그림처럼 획일적인 단색조 회화를 그리거나 일상용품, 산업용품들을 쌓거나 벌여놓고 기존 회화, 조각의 범주를 벗어났음을 과시하는 반예술, 입체미술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그가 물질을 벗어난 언어의 의미와 기호를 따져묻는 개념미술 작업을 퍼포먼스와 설치작업 등을 통해 일관되게 지속해간 것은 당대 제도권 미술판의 흐름에서는 이질적인 행보로 비춰졌다.
그는 한술더떠 신문의 보도사진들을 콜라주하고 그위에 점선 동그라미 등의 임의적 기호를 덧붙인 작업을 통해 사회성을 지닌 아방가르드 사진의 신세계를 열어놓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행보를 한국 현대사진사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놓고 지금도 사진계 전문가들은 옥신각신 논쟁을 벌이는 중이기도 하다. 1980년대부터는 일상에서 빗물질적인 개념성을 찾는 유력한 통로로 전통 굿이나 연희풍의 퍼포먼스를 착안해냈다. 알몸이나 가운을 걸친 배우나 광대가 되어 지금 세태를 풍자하고 부채를 태우거나 새총을 쏘는 그의 난장 퍼포먼스는 지금도 그때그때 시의적절한 일상의 소재나 몸짓을 동원하는 행위성의 버전들로 바뀌며 실연되고 있다. 1990~2000년대엔 일상 생활의 행위 자체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해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과 행동을 작업 활동으로 확장시키거나 흔하게 보는 사물들의 유머러스한 변용과 재발견에 초점을 맞춘 설치작업들도 병행하고 있다. 신문지 오려내기에서 비롯되어 굿판 제의를 떠올리게 하는 퍼포먼스 난장과 일상 사물의 개념적 재해석 작업 등으로 변모해온 셈이다. 이렇게 변신을 거듭한 자신의 작업들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단면과 질서를 드러내는 비물질성 탐구의 일관된 맥락들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역설해왔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성능경의 개념미술가적 행보는 난해한 괴짜 퍼포먼스 예술가라는 기존 제도권 미술계의 도식적 평가에 수십여년째 갇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성 작가는 지난 19일 자하미술관 토론회에서 “업신여김이 아니라 없음여김을 당하며 살아왔다. 노자와 장자를 말하지 않으면 형편없는 작가 취급을 했던 70년대 한국적 모더니스트들과 80년대 민중미술의 아우성 속에서 없음여김을 당했다”며 소외됐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뒤이어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민중미술 작가가 아니다. 왜 아니냐,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민중미술가가 되려면 피플스(민중)에 대한 개념, 인식,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게 없다. 대신에 범인류적인 휴머니즘 관점을 나는 채용했다.”
성능경 작가의 이색 사진합성 작업인 <사색당파-특정인과 관련 없음>(2015). 한국 사회와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 사진을 배열해놓고 이들의 눈만 갖가지 색띠로 가려 놓았다. 노형석 기자
그가 한국 현대미술사 맥락에서 재조명 대상으로 부각된 것은 올해 9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한국의 실험미술전에 주요 작가로 초대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미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국현대미술기획전인 ‘70~8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에 출품작가로 선정된 데 이어 사전 조사를 위해 찾아온 구겐하임 큐레이터들이 출품작가들 가운데 단연 발군이라고 극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숫제 그를 무시했던 화단과 시장의 눈길이 확 달라졌다. 올해 9월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장터 프리즈 한국전시 기간에 메이저화랑 갤러리 현대의 개인전이 차려지고 미국의 명문화랑 리먼 머핀이 뉴욕 본사 개인전을 잇따라 열게 된다는 소식도 잇따라 전해졌다.
성능경의 전위예술 역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올 상반기 잇따라 서울 북촌 화랑과 미술관에서 차려진 두 건의 개인전과 두 전시의 개막날 열린 작가의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들은 미술인과 언론의 뒤늦은 관심과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지난 2~4월 서울 북촌 백아트에서 열린 회고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의 경우 개막날 작가는 파란 팬티만 입은 알몸으로 등장했다. 훌라후프 돌리고 새총을 쏘며 벌인 그날 그의 퍼포먼스를 취재진을 포함해 200명 가까운 관객이 좁은 전시장 안팎에 모여들어 지켜봤다. 그날 백아트 전시장 벽에는 몸에 쿠킹호일(은박지)을 부착한 작가가 보여주는 퍼포먼스 신체동작의 차이를 여러개의 연속되는 상으로 보여준 이강우 작가의 연작 사진 <쿠킹호일맨>(2001) 등도 내걸렸다. 이 출품 사진들에 작가는 미리 쿠킹오일을 씌워놓았다가 개막 퍼포먼스를 하면서 호일을 일일이 뜯어내고 `복 받아‘ `돈 받아’ 등의 축원문구가 쓰여진 탁구공을 새총으로 운집한 관객에게 쏘아대는 행위예술을 실연했다.
한겨레신문 지면과 포장지, 포장박스에 온통 시커먼 구두약을 발라놓고 당대 한국 미술판의 실상을 풍자한 설치작품 <넌센스 미술>(1989)의 일부.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이다. 노형석 기자
지난 수년간 그가 출품한 전시만 6차례 열렸던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새로 차린 개인전 ‘개념덩어리-성능경의 예술행각’(28일까지)도 백아트 개인전 못지않게 화제를 낳았다. 특히 지난 19일 미술관에서 열린 전문가 토론회와 관객들이 대거 참여한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는 이후에도 미술계에서 계속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날 민중미술-모더니즘 계열 비평가들이 토론회에서 유례없는 작가 계열 사조 찾기 논쟁을 벌인데 이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종로구민들과 문화예술계 인사 등 50여명이 작가와 함께 신문지를 오리고 큰 소리로 읽는 대규모 참여 퍼포먼스를 처음 펼쳐보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신문에 난 사건 현장 사진에 작가 자신의 점선 등의 기호들을 따다 붙이며 당대 신문의 편집권력과 사회상을 성찰적으로 투시한 <현장 41>(1981). 사진매체를 활용한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출품작들도 일관된 개념미술적 탐구를 색다르게 보여주는 신구작들이 속속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한겨레신문> 지면과 포장지, 포장박스에 온통 시커먼 구두약을 발라놓고 당대 한국미술판의 실상을 풍자한 설치작품 <넌센스 미술>(1989)과 80년대 초 신문에 난 사건 현장 사진에 작가 자신의 점선 등의 기호들을 따다 붙이며 당대 신문의 편집권력과 사회상을 성찰적으로 투시한 <현장 41>(1981)이 재구성돼 현실비판적인 그의 장년시절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집에 뒹굴던 나무토막이나 화분 받침돌 등을 작품으로 명명하고 전시장으로 가지고 들어오거나 집에 둔 피아노에 외부 광고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피아노 모독> 등의 개념적 설치작업과 3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 볼일 보고 난 대변 뒤처리 흔적이 묻은 휴지를 웹상에서 컬러링을 통해 보여주는 현재진행형 생활행위 흔적 작업들은 동시대적 맥락에서 개념의 날을 세우는 그의 녹슬지 않은 작업의식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성능경 작가가 지난 19일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전문가 토론회를 마친 뒤 탁자 위에 올라가 부채 태우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노형석 기자
진보 리얼리즘 계열과 보수 모더니즘 계열의 진영논리와 학맥 구도가 여전히 중시되는 한국 미술판의 생리에 비춰 철저한 비주류였던 그가 새삼 소환되고 재조명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술사적인 평가나 팩트가 모호하고 시장에서 띄우는 의도가 의심스러운 단색조회화의 열풍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대 이후 국내 일부 메이저화랑들이 의도적으로 박서보 등 벽지그림 같은 단색조 추상화가들을 밀어올리고 이후 이승택, 이건용 등의 이른바 실험미술 작가들을 새로운 흥행요소로 발굴했지만, 성능경은 그들과는 또다른 미술사적 의미를 지닌 작가로 재평가되고 있다.
김찬동 평론가는 “70~80년대 보수와 진보 미술진영에서 소외된 채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 시점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을 모두 함축한 것으로 다시 평가되는 그의 전위적 실험 정신은 미술사적인 재해석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놓고 있다”면서 이렇게 촌평했다. “성 작가는 앞으로 뜰 일들만 남았습니다.”
평생 할까말까한 전시들을 올해 너댓개나 치르게 된 노 작가는 말년 팔자가 센 탓이라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성능경의 2023년은 과연 어떤 결실을 낳으면서 흘러갈까.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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