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 1995년 아르헨티나에서 현지산 알가로보 나무로 만든 <합이합일 분이분일1995-532>이란 제목의 추상 조각상 뒤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우뚝 서고 싶었다. 바로 세우고 싶었다.
88살이 된 원로 조각가 김윤신씨는 10대 소녀시절 충격적인 두 가지 풍경을 보고 그렇게 작심한다. 73년 전 한국전쟁의 총성이 휩쓸고 간 서울에 홀로 남아 충무로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쌓인 사람들의 주검더미를 헤집고 다니면서. 해방 직전 고향 근처인 함경도 안변의 야산 숲속에서 일본병사들이 짓쳐들어와 송진을 얻으려고 칼로 무수히 베어 무너뜨린 소나무 더미를 목격하면서. 실향민과 피난민으로 해방과 전쟁 시기 살려고 발버둥쳤던 작가에게 그 풍경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상처였지만, 한편으로 삶과 작업의 의지를 북돋우는 끌차가 됐다. 동심을 부서뜨린 당시의 시각적 충격 속에서도 마음 속에 똑바로 서고 싶다는, 본능같은 직립의 욕구였다. 최근 재조명되기 시작한 김윤신 조각은 이런 전제 아래 평생 나무조각과 나뭇결의 변주 같은 판화와 회화로 풀리고 변모해왔다.
오닉스라는 이름의 준보석 광물로 만든 김 작가의 석조각물 구작. 1980년대후반부터 1990년대초반까지 멕시코에서 직접 오닉스를 구해 작업했다.
지난 2월말 개막 뒤로 국내 미술판 사람들 사이에 반향을 낳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의 회고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7일까지)에는 70년 동안 숙성되어온 본능적인 직립과 전진의 욕구를 형상으로 드러낸다. 위로 치솟거나 옆으로 팔을 벌린 거친 나무 조각상과 돌덩어리들, 그리고 이런 삶의 조형적 의지가 소용돌이치는 석판화들은 경이적인 조형적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 음과 양이라는 동양철학적 화두 아래 자연과 우주의 합일과 인연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라고 미술관 쪽은 설명하지만, 단순한 음양의 소통을 넘어 생존의 역정이라고 할 만한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이 녹아있다. 60~70년대 한국 여성 조각의 기반을 닦은 1세대 원로 조각가이면서 현재도 전기톱과 끌, 정을 들고 왕성하게 작업하는 원로작가의 내공과 경륜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다.
84년 아르헨티나의 나무 시작으로
멕시코·브라질 등서 새 재료 탐구
1세대 여성 작가…지금도 활동 왕성
7일까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서
회고전 ‘더하고 나누며, 하나’
자연 재료에 철학적 사고 표상
채색회화·조각 결합한 근작도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나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월남한 그는 1959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5년 뒤인 1964년 프랑스로 유학한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 파리 에콜드보자르에서 수학하면서 조형적으로 숙성된 역량을 키운 그는 1969년 귀국해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설립을 주도했다. 상명대 교수로 10년 이상 재직하던 그는 1984년 우연히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났다가 단단하고 장대한 현지의 나무재료에 매혹돼 이주 작업을 결심하게 된다. 새 재료를 만나 작품 세계를 확장하려는 열망에서였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멕시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브라질에서 머물며 새 재료(준보석)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이런 작업은 지난해 사실상 영구 귀국해 88살을 맞은 올해까지 진행중인데, 이를 80~90년대 멕시코, 2000년대 브라질에서 결행한 준보석 돌작업을 담은 1층 전시실과 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한국과 남미를 무대로 벌인 나무 조각 작업들을 망라한 2층 전시실의 출품작들과 관련 신문자료와 과거 전시 팜플렛 등의 아카이브자료로 풀어놓았다.
2층의 3전시실은 전시의 눈대목에 해당한다. 70년대 한국의 소나무 등을 국내산 나무들을 토템상처럼 깎은 <기원쌓기> 연작과 1984년 아르헨티나 첫 전시의 출품작인 현지 나무로 만든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 등 남미에서의 작업들이 망라되어 나왔다. 90년대 이후의 작업경향은 80년대까지의 수직축으로 솟구치던 스타일에서 옆으로 수평으로 퍼져가는 스타일로 바뀐다는 것도 주목된다. 팔을 벌려 땅을 덮으면서도 솟은 둥치로 하늘과 땅, 인간을 이어주는 유기적 존재물인 생명 나무의 형상을 거친 표면과 가지를 표상하면서도 날개 같은 인상을 주는 조각으로 변화를 모색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김 작가가 2014년 알가로보 나무로 제작한 채색 조각작품인 <피안 No.3>. 남미 파타고니아 원주민이 만든 토테미즘적인 채색 조형물을 보고 강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출품작들은 모두 철저한 현장 작업들의 산물이다. 좋은 재료가 있으면 무조건 달려갔고 바로 톱과 끌, 정을 쓰면서 작업했다. 현장의 작업과정에서는 쓰라리고 공포스러웠던 과거 생존 고투의 기억과 이후 우주와 세계의 합일과 분화를 향한 그의 사유가 갈마들면서 작품의 수직·수평 방향을 이끌고 배어들었다.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벌인 광물 작업들도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의 직원과 현지인들이 정보를 주자 득달같이 짐을 싸고 달려가 수년간 눌러앉아 작업한 결실들이었다.
“외국에 나오니까 한국적인 한복이나 한옥의 기와 처마선처럼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 등의 영향을 받아요. 나무의 형태를 존중해주자는 원칙, 조각 위의 선을 가미해 넣어주자는 조형적 원칙이 생겼지요. 이런 자연미를 가미해 부분을 살리면서 하나가 되게 만들어가는 것이죠. 통나무 재료가 나오면 그 형태를 보면서 계속 돌고 기도를 해요. 그 다음부터 조각의 이데아를 만들지요. 높이 솟구쳐 깎을만한 나무가 한국에는 전후 남벌과 포격으로 사실상 전무했는데 남미 현지는 키크고 단단한 나무가 도처에 있었어요. 그게 딱 좋아서 여기서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
40~50년대 유년시절 생존을 위해 고투했던 악착같은 기억 탓일까. 살기 위해서라도 더욱 작업에 열심히 매진한다고 밝힌 작가는 올 하반기 강원도 양구 박수근 미술관에 작업공간을 구해 레지던시 창작 활동을 새롭게 벌일 계획이다. 이번 전시 말미에 선보인 채색회화와 조각이 결합된 근작의 작업스타일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변모될지 설레인다고 작가는 말했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