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홍석원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시 ‘죽음의 섬’을 연주하는 장면.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지난 1일 오후 3시,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교향시 ‘죽음의 섬’이 울려 퍼졌다. 홍석원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의 연주였다. 저녁 7시에도 이 작곡가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교향곡 1번이 연주됐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협연이었다. 4월 1일은 150년 전 이 작곡가가 태어난 날이다. 다음날에도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바바얀이 이 작곡가의 소품 2곡을 선보였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서두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돌을 축하하는 잔치와도 같았다.
지난 1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단 제공
어릴 적 가족의 죽음에 상처를 입은 라흐마니노프는 늘 죽음에 사로잡혔고, 레퀴엠(진혼곡) ‘진노의 날(Dies Irae)’ 멜로디에 끌렸다. 서른 두살 한창때 작곡한 ‘죽음의 섬’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귀족 가문 태생인 그는 혁명 이후 미국에 망명했고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음악에서 묻어나는 애수와 감상은 그를 설명하는 ‘죽음과 망명’이란 열쇳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2m 가까운 키에 펼친 손 길이가 30㎝에 이르렀던 이 작곡가는 뛰어난 기교의 피아니스트이자 ‘빌드업’의 달인이었다. 음을 부풀어 오르게 하면서 긴박감을 고조시키다가 한순간에 폭발시키곤 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해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당시 연주한 피아노협주곡 3번이 대표적이다. 임윤찬은 극강의 테크닉이 필요한 이 곡을 오는 5월 10~12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사흘간 내리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오는 5월 10~12일 미국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3차례 연주한다. 지난해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연주 장면. 밴 클라이번 재단 제공
라흐마니노프는 국내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작곡가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 1위로 자주 꼽혔다.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클래식 애창곡 1위’였다. 팝 음악, 영화 음악에서 자주 접해 친숙한 데다 가슴을 파고드는 서정적 선율이 높은 점수를 받은 요인으로 풀이됐다. 그래서인지 국내 공연장과 오케스트라사들도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기념 공연을 앞다퉈 열고 있다.
부천필하모닉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3곡과 피아노협주곡 3곡 등을 6월부터 12월까지 네 차례 나눠 연주한다. 첫 무대는 오는 6월 23일, 새로 건물을 지은 부천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이다. 국립심포니(9월 17일)와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5월 25일), 경기필하모닉(10월 22일)은 각각 다른 색깔의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서울시향도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피아노협주곡 2번(5월 11~12일)을 연주한다. KBS교향악단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12월 13 15일)와 라흐마니노프의 4개의 피아노협주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협연한다.
자주 접하기 어려운 곡들도 만날 수 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과 정한빈(4월 21일)은 ‘포핸즈’로 연주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들려준다. ‘교향적 춤곡’ 2악장의 피아노 듀오 버전도 감상할 수 있다. 조재혁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첼리스트 송영훈과 함께 피아노 3중주(9월 1일) 등을 들려준다. 소프라노 서선영과 바리톤 이동환은 피아니스트 한상일(5월 26일)과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적 가곡들을 선보인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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