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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은율탈춤 역동성으로 이탈리아 관객들 매료시켰어요”

등록 2023-03-30 18:28수정 2023-04-02 17:53

[짬] 인천 양사초 동아리 얼쑤

왼쪽부터 김아윤·김민지·김민주양, 지용빈군.    이승욱 기자
왼쪽부터 김아윤·김민지·김민주양, 지용빈군. 이승욱 기자
높은음의 태평소가 신나게 울려 퍼진다. 이와 함께 흰색 사자 한 마리가 이탈리아 시칠리아 주의 한 도시인 아그리젠토 거리를 활보한다. 진짜 사자는 아니다. 사람 3명이 사자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처음 보는 탈춤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지난 5∼12일 아그리젠토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민속축제’에 참여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의 공연 모습이다. 얼쑤는 인천 강화군 양사초등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이뤄진 은율탈춤 동아리다. 양사초는 은율탈춤 전수학교로 지정돼 3학년이 되면 동아리 시간에 은율탈춤을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에 일부 졸업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은율탈춤을 배우기 위해 지난 2019년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를 만들었다. 현재 얼쑤에는 13명의 초·중·고등학생이 속해있다.

지난 11일 이탈리아 아그리젠토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민속축제’에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 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얼쑤 제공
지난 11일 이탈리아 아그리젠토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민속축제’에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 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얼쑤 제공
지난 24일 인천 강화군의 한 펜션에서 이탈리아 공연 뒤풀이를 준비 중인 학생들을 만났다. 얼쑤 학생 단장인 지용빈(16)군은 이날 기자와 만나 “사실 초등학교에서 처음 은율탈춤을 배울 때는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그런데 탈춤을 배워가면서 흥미가 생겼고 초등학교 졸업 뒤 중학교 진학할 때쯤에는 탈춤을 계속 배우고 싶었다”며 “어머니께 탈춤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고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은율탈춤은 황해도 은율군 은율읍에서 전승되던 가면극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은율탈춤 연희자에 의해 복원됐다. 1978년에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됐고, 1982년 인천이 전승지로 지정받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전수회관을 두고 있다. 얼쑤에는 은율탈춤 보존회 소속 선생님이 방문해 은율탈춤을 가르친다. 국내 탈춤계에서 얼쑤는 엄청난 실력을 자랑한다. 제8, 9회 대한민국 청소년 탈춤축제 한마당에서 각각 금상과 은상을 받았고, 지난해 열린 제63회 한국민속예술제 청소년부에서는 전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력이 뒷받침되면서 이번 이탈리아 공연도 가능했다.

5∼12일 국제어린이민속축제 참가
3명의 사자탈 춤에 “코리아” 호응
피리·태평소 등 악기도 관심 끌어

양사초 ‘은율탈춤 전수학교’ 지정
보존회 소속 강사가 방문해 지도
재학생·졸업생 13명 동아리 결성
청소년 탈춤축제서 연이어 수상

학생들은 은율탈춤의 매력으로 역동성을 꼽았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민속축제에서 은율탈춤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이유도 역동성이라고 설명한다. 지용빈 군은 “우리가 공연할 때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다른 나라 공연에는 한 줄 또는 두줄 정도가 모였다면 우리의 공연에는 다섯줄이 모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며 “다른 나라의 춤도 역동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우리는 공연 내내 역동적으로 탈춤을 추니 나중에는 우리가 공연할 때 ‘코리아’라고 호응하는 관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피리와 태평소를 연주하는 김민주(15)양은 “공연이 끝나면 관객이 다가와 피리와 태평소를 불어봐도 되는지 물어보고 한 번씩 불어보고 가기도 했다”며 “처음에 굉장히 떨렸는데, 공연이 끝나고 느껴지는 성취감으로 탈춤을 계속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탈리아 공연을 위해 작년 말부터 방학 내내 연습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아그리젠토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민속축제’에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 단원들이 공연하고 있다.     얼쑤 제공
이탈리아 아그리젠토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민속축제’에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 단원들이 공연하고 있다. 얼쑤 제공
얼쑤에게도 위기는 있다. 초등학교 단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초등학교에서 은율탈춤을 배우는 시간이 줄어든 것을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양사초는 학생 수가 많지 않아 정규 수업은 이뤄졌지만 동아리 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민지(15)양은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은 물론 오빠, 언니들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는데 코로나19로 동아리 활동을 못 하면서 지금 양사초 학생들 사이에서는 은율탈춤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도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현재 양사초에 재학 중인 김아윤(10)양이 친구들에게 은율탈춤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아윤양은 이번 공연에서 원숭이탈을 쓰고 멋지게 공연을 마쳤다. 김아윤양은 “학교 처음 들어왔을 때 친오빠가 은율탈춤을 하는 거 보고 멋있다고 느꼈다”며 “친구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자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도 탈춤 같이 하자고 친구들을 꼬시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이탈리아 아그리젠토 거리에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 단원들이 공연하고 있다.     얼쑤 제공
이탈리아 아그리젠토 거리에서 은율탈춤 동아리 ‘얼쑤’ 단원들이 공연하고 있다. 얼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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