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토벤> 공연 장면. 배우 박은태가 베토벤을 연기하고 있다.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지난달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베토벤>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며 논란을 부르고 있다.
21일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평점을 보면,
이례적으로 7.5점이다. 대형 뮤지컬이 보통 9점대인 것과 비교된다.
<베토벤>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서랍에서 나온 ‘불멸의 연인’을 향한 편지를 모티브로 삼았다. 사후 발견된 편지엔 수취인이 특정되지 않았기에 후대 학자들은 대략 5~6명 정도를 후보로 추론했다. 뮤지컬은 여러 후보 가운데 안토니 브렌타노(토니·1780~1869)를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으로 등장시킨다.
아쉬운 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받는 대목은 서사다. 창작가이자 예술가로서의 베토벤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청각장애를 극복하며 뛰어난 음악을 만들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위대한 음악 영웅 같은 모습의 베토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뮤지컬 <베토벤>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은 창작의 고통보다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학대로 사랑을 믿지 않게 된 베토벤은 어른이 된 뒤에도 귀족들에게 무시당한다. 이런 베토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토니였다. 베토벤은 토니를 통해 사랑에 눈을 뜨고 환희, 삶의 가치, 아픔을 알게 된다. 뮤지컬 메시지를 ‘음악과 창작’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라고 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는 베토벤과 세명의 자녀를 둔 토니가 사랑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지점이다. 위대한 음악가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사랑의 과정을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뮤지컬 <베토벤>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반면, 그런 장면이 들어갈 경우 이른바 신파로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뮤지컬은 과도하지 않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보여준다. 토니 역시 베토벤처럼 사랑이 결핍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토니는 부모가 정해준 은행가와 정략결혼을 하고 세명의 아이를 키우지만,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외로움 속에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다 호감을 보이는 베토벤을 만나면서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사랑을 시작한다. 이를 통해 사랑은 존재만으로도 특별하며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만큼 강력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토니를 연기하는 조정은은 지난달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랑을 몰랐던 한 남자(베토벤)는 사랑을 통해 한 사람(토니)의 인생을 존중해주고, 사랑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여자(토니)는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뮤지컬 <베토벤>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에 나오는 넘버(노래) 52개 모두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등 잘 알려진 기악곡을 편곡하고 노랫말을 붙여 만들었다. 뮤지컬에서 베토벤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며 노래한 ‘사랑은 잔인해’엔 피아노 소나타 8번(‘비창’)이 실렸고, 1막 엔딩 넘버 ‘너의 운명’엔 교향곡 5번(‘운명’)이 담겼다. 전기기타 등 록오페라 스타일의 반주가 함께해 신선함도 더했다. 다만 ‘엘리제를 위하여’ 등 일부 멜로디는 지나치게 반복되는 느낌이 있다. 중독적이기도 하지만 싫증을 느끼거나 지루해하기 십상일 수 있겠다.
서사와 달리 무대는 호평 일색이다. 1막 마지막에서 베토벤이 사랑에 빠지며 마음의 벽이 부서지는 과정은 실제로 무대 벽이 활짝 열리는 것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사랑의 기쁨과 환희를 알게 된 베토벤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베토벤을 상징하는 무대 장치는 피아노다. 그가 청력을 잃어가는 순간이나 애절한 이별의 순간 등 중요한 때에 나온다. 피아노는 베토벤이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르는 장면에서 허공에 매달리거나, 토니와 이별한 뒤 부서진 모습으로 등장해 깊은 고독과 절망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뮤지컬 <베토벤> 공연 장면.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베토벤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내면의 갈등은 ‘음악의 혼령’으로 의인화했다. 무용수들은 현대적인 안무로 열정과 갈등을 시각화했다. 2막 초반 가발을 쓴 오케스트라단을 베토벤이 직접 지휘하는 장면도 예상치 못한 볼거리다.
배우들의 열연도 눈에 띈다. 베토벤은 박효신·박은태·카이가 맡았고, 토니는 옥주현·조정은·윤공주가 연기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과 가창력은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베토벤>은 다음달 26일까지 볼 수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