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1층 들머리에 나온 설치작품 <울리지 않는 신문고>. 옆벽에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란 글귀가 붙어있다.
때려도 때려도 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 ‘뼈 때리는’ 느낌이 온다.
참으로 오묘한 모순이 아닌가. 지난 6월 서울대 미대 교수를 정년 퇴임한 개념미술가 윤동천(65)씨의 신작 설치작품 <울리지 않는 신문고>의 특장은 견디기 어려운 먹먹함이 되려 날카롭게 울려주는 풍자의 묘미다. 그의 개인전 ‘Pairs 쌍-댓구’가 차려진 서울 통의동 갤러리시몬 1층 들머리에 나온 이 작품의 겉모습은 백성이 북소리 울려 억울한 사연을 알리는 신문고의 전형이다. 금속파이프를 이어 만든 구조물에 동그란 북을 공들여 달아매고 그 옆에 북채까지 갖다 놓았다. 막상 치면 울림판은 북채를 튕기지 않고 감싸안으면서 소리를 먹어 버린다. 울림판 천의 재질이 탄성이 강한 스판덱스인 까닭이다. 황당해하는 관객은 옆벽에 붙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란 문구를 보며 쓴웃음 짓게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명저 <국가>에서 당대 궤변가(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플라톤 스승 소크라테스와 강자·약자의 정의를 두고 논쟁하며 내뱉어서 유명해진 말이다.
신문고 제도는 올해로 세상에 나온지 딱 620돌을 맞는다. 세종대왕의 부친인 조선왕조 3대 임금 태종이 1402년 창안한 이래로 현재 정부가 운영중인 온라인 국민신문고에 이르기까지 역대 위정자들과 언론은 여론 수렴의 대명사로 숱하게 신문고를 언급해왔다. 하지만 윤 작가에게 신문고는 거꾸로 소통이 꽉 막히고 권력을 쥔 강자들이 정의의 개념까지 재단하는 시대 상황을 비추는 상징물로 뒤바뀐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제 구실 못하거나 이름에 걸맞는 내용을 담지 못하는 권력, 제도, 관계, 풍속 등을 울리지 않는 북이 총체적으로 뭉뚱그려 보여주는 셈이다.
전시장 1층 들머리에 나온 설치작품 <울리지 않는 신문고>의 세부. 북채가 놓여져 있다.
의미의 전복과 뒤틀림은 1990년대 이후로 국내 개념미술의 주축으로 활동해온 윤 작가의 특기에 가깝다. 2017년 촛불항쟁이나 90년대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 등의 사진 이미지를 화폭에 풀어낸 <위대한 퍼포먼스> 연작, 젊은 청춘들을 위한 <희망 알약 3종 세트> 등의 과거 작품들에서 보이듯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시사적 이미지나 대중문화적 도상, 일상의 사물이나 용품들을 화폭에 끌어와 기표와 기의의 틀을 뒤집어버리는 방식으로 세태를 짚는 데 30여년 공력을 쏟아왔다.
퇴임 뒤 처음 화랑에서 펼치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더욱 예리하게 벼린 내공을 과시하는 듯하다. 파란 배경에 쫑긋 세운 한우 소의 머리 한쪽을 사실적으로 그려놓고 귀때기에 수많은 불경과 서책의 글귀들이 자잘하게 적혀 있는 <소 귀에 경 읽기>는 신문고 못지 않게 기발하면서도 진중한 상상력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을 팬클럽 ‘아미’를 상징하는 위장군복 위에 쓴 비티에스(BTS) 알파벳 글자로 ‘정리’하고, 걸그룹 블랙핑크는 검정과 핑크빛이 상하로 대비된 색층 이미지로 나타내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국기를 대비시킨 이미지와 잇닿게 만든 연작 그림 <리얼리티―핫 &쿨>도 내걸었다. 지구온난화로 녹는 빙하의 풍경을 두 아이돌 그룹의 색상 이미지에 덧붙이면서 대중문화의 열기와 전쟁의 살의, 기후위기의 절박감이 뒤섞인 세상을 뜨거움과 차가움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혼돈의 상태로 표현한 구성력이 엿보인다. 노년에 접어드는 참인데도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의 모순을 바라보면서도 미학적 언어로 정제해 내놓는 작업의 긴장감 또한 팽팽하게 느껴지는 출품작들이 나왔다. 21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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