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우리 땅 산야초 정원으로 세계 무대 세번째 도전해요”

등록 2022-11-02 21:56수정 2022-11-03 02:38

[짬]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

지난 10월말 광주 작업실에서 만난 황지해 작가의 뒷편으로 그가 디자인한 정원 작품의 사진들이 보인다. 김경애 기자
지난 10월말 광주 작업실에서 만난 황지해 작가의 뒷편으로 그가 디자인한 정원 작품의 사진들이 보인다. 김경애 기자

“이거 한번 맛보세요. 산도라지예요. 요즘같은 환절기 기관지에 좋은 거 아시죠?”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 광주광역시 쌍촌동 5·18기념공원 인근의 컨테이너 작업실에 들어서자 뜻밖에 약초를 권한다. 하지만 그는 약초나 건강 전문가가 전혀 아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영국 런던의 첼시플라워쇼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일약 이름을 알린 정원디자이너이다. 첼시쇼는 프랑스 쇼몽국제가든페스티벌, 네덜란드의 쾨겐호프 가든쇼와 함께 세계 3대 가든쇼로 꼽힌다.

“1천여종의 약초들이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자생하는 고요한 지리산 자락을 세계인에게 선보이려고 해요. 깊은 숲속 지형의 높낮이와 다양한 종의 서식 환경, 크고 작은 교목과 관목이 겹겹이 쌓인 바위 위로 흐르는 물, 일조량과 습도에 맞춰 저마다 제자리를 찾는 산야초의 생장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요. 약초꾼들이 대대로 내려온 지혜를 모아 만든, 작지만 과학적인 원리들이 가득한 ‘건조장’도 연출하고요.”

내년 5월 23~27일 열리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의 ‘첼시 플라워쇼 2023’에 세번째로 초청받은 황지해 작가의 구상이다.

그는 2011년 첼시 플라워쇼에서 ‘해우소'로 최고상과 금메달, 2012년에는 ‘고요한 시간: 디엠제트(DMZ) 금지된 정원'으로 회장상과 금메달을 받았다.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알려온 그가 10여년 만에 다시 첼시에 출품하게 된 연유를 들어봤다.

지난 10월20일(현지 시각) 영국왕립원예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첼시 플라워쇼 2023'의 주제와 선정된 출품 작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시공사 바즈 제공
지난 10월20일(현지 시각) 영국왕립원예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첼시 플라워쇼 2023'의 주제와 선정된 출품 작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시공사 바즈 제공

‘첼시 플라워쇼 2023’의 메인 행사인 쇼가든 부문 12개 출품작에 선정된 황지해 작가의 ‘치유의 땅: 한국의 산’ 조감도. 황 작가 제공
‘첼시 플라워쇼 2023’의 메인 행사인 쇼가든 부문 12개 출품작에 선정된 황지해 작가의 ‘치유의 땅: 한국의 산’ 조감도. 황 작가 제공

‘가든의 나라’ 만든 세계적 박람회
영국 ‘2023 첼시 플라워쇼’ 출품
2011년 첫 참가 ‘해우소’로 최고상
이듬해 ‘디엠제트’로 연속 금메달

최근 3년새 투병·회복 경험 살려
‘치유의 땅: 한국의 산’ 연출 구상

황지해 작가가 2011년 5월 ‘첼시 플라워쇼’ 출품작 ‘해우소’ 앞에서 영국왕립원예협회 회장(왼쪽)에게 금메달과 최고상을 받고 있다. 황 작가 제공
황지해 작가가 2011년 5월 ‘첼시 플라워쇼’ 출품작 ‘해우소’ 앞에서 영국왕립원예협회 회장(왼쪽)에게 금메달과 최고상을 받고 있다. 황 작가 제공

황지해 작가의 ‘첼시 플라워쇼’ 금메달 수상작인 ‘해우소’와 ‘디엠제트-금지된 정원’(사진)은 현재 광주광역시 충효샘길에 있는 광주호 호수생태원에 조성되어 있다. 호수생태원 제공
황지해 작가의 ‘첼시 플라워쇼’ 금메달 수상작인 ‘해우소’와 ‘디엠제트-금지된 정원’(사진)은 현재 광주광역시 충효샘길에 있는 광주호 호수생태원에 조성되어 있다. 호수생태원 제공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첼시 플라워쇼 2023' 핵심 경쟁 부문인 ‘쇼가든'의 12개 출품작의 하나로 황 작가의 작품 ‘치유의 땅 : 한국의 산’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14개의 금메달과 35개 이상의 수상 경력을 지닌 크리스 비어드쇼를 비롯 ‘첼시쇼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그레고리, 런던올림픽공원을 설계한 사라 프라이스 등 유럽의 쟁쟁한 작가들과 겨뤄야 한다.

쇼가든 담당 헬레나 페팃 이사는 “사람과 환경 모두를 위해,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정원과 원예의 ‘회복시키는(restorative) 힘’이 2023년 첼시쇼의 주요 테마로 돌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소개했다. 신임 사무총장인 클레어 매터슨은 “디자이너 황지해의 ‘치유의 땅’은 한국에서 진행된 생태복원 프로젝트가 어떻게 토종 식물들의 멸종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고, 지리산 주변의 균형 잡힌 생태계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알려진대로, 첼시플라워쇼는 1827년 런던 치즈윅가든에서 처음 열린 이래 195년을 이어오면서 영국을 ‘정원의 나라’로 불리게 한 자연박람회이다. 4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250년 전통의 영국왕립원예협회는 1013년부터 퇴역 군인들의 요양시설인 첼시왕립병원에서 해마다 5월 마지막 주에 플라워쇼를 열고 있다. 지난 9월 별세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2022 첼시쇼’까지 거의 해마다 빠짐없이 관람했고, 국왕이 된 찰스3세가 외할머니 추모 정원을 조성해 은메달을 받기도 했다. 2019년에는 왕세자비였던 케이트 미들턴이 직접 가꾼 정원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올해 쇼에서는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후원한 ‘메타가든’이 금메달을 받아 뉴스를 탔다. 그런 만큼 세계적인 언론사들이 중계권 경쟁을 벌이고, <비비시>(BBC) 등에서 황금시간대에 생중계를 할 정도로 대중적인 관심이 높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별세 4개월 전인 2022년 5월 23일(현지시각) 런던의 첼시왕립병원 정원에서 열린 ‘2022 첼시 플라워쇼'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별세 4개월 전인 2022년 5월 23일(현지시각) 런던의 첼시왕립병원 정원에서 열린 ‘2022 첼시 플라워쇼'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왼쪽)가 2019년 5월 20일(현지시각) 런던 첼시왕립병원에서 열린 ‘첼시 플라워쇼’에서 윌리엄(오른쪽) 왕세손과 함께 케이트 미들턴(가운데) 왕세손빈이 만든 ‘백 투 네이처'(Back to Nature)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왼쪽)가 2019년 5월 20일(현지시각) 런던 첼시왕립병원에서 열린 ‘첼시 플라워쇼’에서 윌리엄(오른쪽) 왕세손과 함께 케이트 미들턴(가운데) 왕세손빈이 만든 ‘백 투 네이처'(Back to Nature)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무대에 처음 등장해 아시아권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2년 연속 금메달을 따냈던 황 작가는 화려한 조명과 더불어 명성을 얻었다. 2013년에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갯지렁이 다니는 길' '뻘 공연장'을 조성했고, ‘제4회 코리아브랜드엑스포(KBEE) 런던' 행사에 초청받아 ‘0.001-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를 발표했다. 프랑스 롱스시에서 작업한 한국정원 ‘뻘: 어머니의 손바느질'은 현지에 영구 보존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3년 가까이 그는 개인적으로나 작가로나 침체기에 빠졌다.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국내에서는 워낙 정원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나 기회가 제한적이어서 늘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미지의 길을 개척하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건축업을 하던 두 남동생을 돕다가 자연스럽게 조경작업을 하게 됐다. 환경미술가로서 조형감각과 현장의 경험이 결합하면서 ‘정원 디자인의 세계’로 이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조경산업 현장의 요구와 작가로서 자신만의 예술작업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먼저 한계를 느꼈는지 병마가 찾아왔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회복이 됐고요.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를 계기로 자신감과 감각이 되살아나는듯 해요.”

내년 출품작 주제인 ‘치유의 땅’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자 창작의 원천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첼시쇼 주최 쪽에서도 그의 귀환을 무척 반기고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23 첼시쇼’ 출품작 선정 발표를 보고, 영국 현지 시공사 바즈를 통해서 <비비시>에서 그와 정원에 관한 단편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단다.

“지리산 운봉에서 처음 발견된 모데미풀, 붉은 보랏빛이 강한 지리산에만 있는 지리터리풀, 사라졌다가 다시 찾아온 남바람꽃, 천고지 이상에서만 자생하는 천삼, 고지대에서 군락을 이룬 오미자, 계곡 주변에서 식생하는 세뿔투구꽃, 노각나무, 지리괴불나무, 지리바꽃, 나도승마, 남바람꽃, 지리고들빼기, 지리산개별꽃, 참바위취, 지리강활, 지리 금마타리, 매미꽃 등등 우리 자생종과 특산종을 찾아내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해요.”

그는 이날도 인터뷰를 마친 뒤 산야초를 찾아 경남 산청의 약초꾼들에게 달려갔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1.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일용 엄니’ 김수미…“엄마, 미안해” 통곡 속에 영면하다 2.

‘일용 엄니’ 김수미…“엄마, 미안해” 통곡 속에 영면하다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3.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김수미가 그렸던 마지막…“헌화 뒤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 4.

김수미가 그렸던 마지막…“헌화 뒤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

‘폐기 선고’ 책 45만권 ‘구출 작전’…결국 27만권은 과자상자가 됐다 5.

‘폐기 선고’ 책 45만권 ‘구출 작전’…결국 27만권은 과자상자가 됐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