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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고정관념 ‘조각’ 낸 발랄한 청년작가들

등록 2022-07-14 08:00수정 2022-07-16 18:28

젊은 작가 17명의 ‘조각충동’전
통나무 깎아 아이돌 칼군무 재현
진흙덩어리 켜켜이 쌓아 작품화
조각 미술의 개념과 실체 되짚기
하이트컬렉션 ‘각’ 기획전도 눈길
걸그룹의 춤 장면을 포착해 형상화한 이동훈 작가의 2021년 작 목각상. 북서울미술관의 ‘조각충동’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걸그룹의 춤 장면을 포착해 형상화한 이동훈 작가의 2021년 작 목각상. 북서울미술관의 ‘조각충동’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조각은 덩어리를 만들고 다듬고 후비고 파내는 작업으로 인식된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조각은 낯설고 한물간 천덕꾸러기 영역처럼 미술판에 비쳐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사정이 다르다. 채색화, 미디어아트와 더불어 눈길을 끄는 트렌드로 바로 조각 작업 전시가 유행처럼 잇따라 열리고 있다.

특유의 작업적 경직성과 묵직한 중량감, 부피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미술에선 낙오된 장르처럼 여겨졌던 조각이 새로 복기되면서 청년 작가들 사이에서 신세대적 감수성을 반영한, 가볍고 소비적이며 메타적으로 소통하는 조각 조형물들이 조명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가 지난 9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한 기획전 ‘조각충동’이다. 젊은 작가 17명이 참여한 이 전시에는 전통 조각의 물성과 전형적 이미지들을 전복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 21세기 동시대 조각들의 색다른 시도들이 나왔다.

인기 걸그룹 에스파의 댄스 안무를 모티브로 통나무를 깎아 뮤직비디오의 춤추는 인간 군상을 재현한 이동훈 작가의 조각은 기존의 덩어리 조각이 21세기적 감수성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과도 같다. 스펀지처럼 가볍고 부박한 조각 재료들이 흩날리는 최하늘의 설치적 조각이나 물기가 촉촉한 진흙 덩어리를 4m 높이로 켜켜이 쌓은 거대 덩어리 자체의 존재감을 발산하는 김주리 작가의 작품, 노동 현장에서 뒷머리를 싸안은 여성 노동자의 뒤태를 목각상으로 클로즈업한 신민 작가, 안구·자궁 등으로 표상된 신체 기관을 옷처럼 만든 우한나 작가의 착용 조각도 인상적이다. 강재원의 출품작 <에스 크롭>(S_crop)은 공기를 불어넣어 세운 풍선형 조형물을 컴퓨터 3D프로그램을 활용해 두 덩이로 나눈 뒤 전시장 1·2층을 관통하는 듯한 모양새로 재배치한 디지털 조각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미술관 쪽은 “지금 현실에서 조각과 입체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모바일이나 비대면 환경으로 대표되는 동시대의 감각과 관점을 전시에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하이트컬렉션의 기획전 ‘각’에 나온 정지현 작가의 조형물 <공공의 손 모음>(2018). 콘크리트로 만든 투박하고 정직한 손들의 겹친 형상을 보여준다.
하이트컬렉션의 기획전 ‘각’에 나온 정지현 작가의 조형물 <공공의 손 모음>(2018). 콘크리트로 만든 투박하고 정직한 손들의 겹친 형상을 보여준다.
하이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삼성동 하이트컬렉션에서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조각 기획전 ‘각’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장에 설치된 대가 서도호·이불의 설치작업을 필두로 홍자영 등 중견 소장 작가 12명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조각의 의미를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돌, 모래, 나무, 아크릴,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우레탄, 스테인리스 스틸, 콘크리트 등 다양한 자연·산업용 재료가 들어간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 아날로그적인 기존 수제작품부터 패션공예, 건축설계 작도, 3D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확장된 동시대 조각의 여러 조형어법들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화랑가에서는 이달 초 끝난 갤러리현대의 원로 작가 이승택 개인전 ‘(언)바운드’처럼 기존 대가들의 과거 실험적 조형물들을 재조명한 시도들이 주목을 받았다.

조각 전시의 흐름 속에는 타임머신처럼 과거 조각 전시를 되새김질하며 재해석한 이색적인 기획전시들도 보인다. 독립기획자들의 전시 공간인 서울 삼선동 웨스에서 지난 6월10일부터 7월9일까지 선보였던 기획전‘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가 대표적이다. 2001년 열렸던 한국여류조각가회의 기획전시 ‘사랑’을 주된 소재로 삼아 당시 나왔던 김정숙, 윤영자 등의 출품작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여기에 젊은 조각가 이유성, 홍기하 작가가 원로 작가들의 출품작을 모티브로 작업한 신작들을 함께 전시해 시공간을 초월한 조각 감성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앞서 웨스에서는 지난 3~4월 1970~80년대에 활약했던 작고 조각가 전국광의 중량감 넘치는 모더니즘 추상 조각들을 새롭게 재해석한 회고전이 열린 바 있다.

최근 동시대 조각의 현란한 변모와 다르게 정통 조각의 심연을 파고 들어가는 작품들을 아울러 볼 수 있는 것도 올여름 감상의 특전이다. 서울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에 마련된 목조각가 나점수씨의 신작전 ‘무명(無名)―정신의 위치’(16일까지)는 장인적 수공의 세계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 마당이다. 나무쪽에 홈을 파고 여러 모양새의 그늘진 공간을 새긴 신작 조형물 20여점은 수직과 수평, 빛과 그늘에 대한 사유를 이끌면서 모더니즘과 잇닿은 정통 조각의 개성적인 단면을 드러낸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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