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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임윤찬도 ‘이곳’ 출신…“한국 신드롬” 자아낸 K클래식의 집

등록 2022-06-20 16:14수정 2022-07-12 13:56

한예종 등 한국식 예술영재교육 시스템
“도제식 공교육기관 한국이 유일할 것”

콩쿠르 지상주의 부작용 경계하고
우승 이후 성장·발전 방안 고민해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앨솝이 이끄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포트워스/AP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앨솝이 이끄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포트워스/AP 연합뉴스

그야말로 ‘케이(K)클래식 돌풍’이다. 최근 두달 새 열린 주요 콩쿠르에서 국내 연주자들이 우승 트로피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이번에 임윤찬이 우승한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경우, 2017년 선우예권 우승에 이은 2연패다. 같은 국가 출신 연주자에게 연달아 우승의 영광을 안기는 경우는 드물기에 압도적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그만큼 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선보인 연주는 압도적이었다.

이는 전문가뿐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의 ‘추앙’으로도 증명된다. 결선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들은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한 채 박수갈채를 보냈다. 결선 무대를 생중계한 유튜브에는 임윤찬의 연주에 감동해 눈물을 훔쳤다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임윤찬은 전세계 클래식 음악 팬 3만여명이 참여한 온라인 인기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청중상도 수상했다.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8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폐막한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다. 밴클라이번재단·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8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폐막한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다. 밴클라이번재단·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제공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성악, 현악사중주…다 휩쓸다

임윤찬만이 아니다. 그에 앞서 지난 4일엔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첼리스트 최하영(24)이 우승했다. 지난달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가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 낭보가 전해졌다. 피아노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우승했다. 피아니스트 서형민과 김수연도 각각 독일 본 베토벤 콩쿠르와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입상에 이르지 못했지만, 준결선·결선까지 진출한 연주자들도 많다. 이번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선 임윤찬을 비롯해 김홍기·박진형·신창용 등 모두 4명이 준결선 무대에 올랐다. 준결선 진출자 12명 중 3분의 1이 한국 연주자였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우승자 최하영 외에 문태국·윤설·정우찬 등 모두 4명이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동반 진출했다. 최근 몇년간 주요 국제 콩쿠르의 준결선·결선에 진출한 한국인 수는 클래식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 유럽의 연주자보다 많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금호아트홀 제공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금호아트홀 제공

연주자들의 약진 분야도 다양해졌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뿐 아니라 성악과 현악사중주 부문에서도 우승 소식은 자주 날아들고 있다. 지난해 5월 현악사중주단 아레테 콰르텟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6년 만에 진행된 현악사중주 부문 경연이라 의미가 더욱 깊었다. 성악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6월 바리톤 김기훈이 영국 <비비시>(BBC)가 주최한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대회 메인 부문인 오페라 분야 우승이었다. 창작 분야에서도 지난해 6월 작곡가 신동훈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을 받았다. 동양인 최초 수상자였다.

이런 국내 연주자들의 최근의 대약진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현상이다. 이번 밴 클라이번 콩쿠르 진행자는 임윤찬을 언급하며 ‘한국 현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같은 동양권에서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두드러진 성적을 내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중계를 20년 넘게 맡고 있는 벨기에 공영방송 <에르테베에프>(RTBF) 소속 티에리 로로 감독은 한국 연주자들이 최근 연거푸 좋은 성적을 내는 비밀이 궁금해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다큐멘터리 두 편도 만들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금호아트홀 제공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금호아트홀 제공

이런 케이클래식 돌풍의 배경엔 ‘한국식 영재교육 시스템’이 있다. 올해로 개교 30돌을 맞은 한국종합예술학교(한예종)가 대표적이다. 임윤찬과 박재홍은 외국 유학 경험 없이 오로지 한예종에서만 실력을 연마했다. 음악칼럼니스트 이상민씨는 “다른 나라도 전문 예술학교가 있지만 음악의 세부 디테일까지 세심하고 집중적으로 연마시키는 도제식 공교육 기관은 아마 한예종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예종에 위탁해 운영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영재교육원)도 한국의 독특한 시스템이다. 케이클래식 바람의 주역인 임윤찬·양인모·최하영·박재홍이 모두 이곳을 거쳤다. 중등교육과 별도로 주말을 이용해 재능 있는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곳으로, 학생들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이성주 영재교육원장은 “예술 재능은 어렸을 때 조기에 발견해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도 산하에 영재교육원을 따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한국 영재교육원은 문체부 산하 기관이란 점이 다르다. 영재교육원은 현재 서울과 경남 통영, 세종에 있다. 내년엔 광주에도 개원할 예정이다.

임윤찬도 영재교육 시스템 덕을 톡톡히 봤다. 7살에 “친구들이 태권도장에 다닐 때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어 아파트 상가에 있던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는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여해 합격했다. 그렇게 들어간 음악영재아카데미에서 남들보다 뒤졌던 기초를 다지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다. 13살인 2017년부터는 한예종 부설 영재교육원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를 사사하며 급성장했다. 그는 2021년 한예종에 정식 입학해 국내에서만 꾸준히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오고 있다.

2015년 금호영재콘서트 포스터 속 11살 소년 임윤찬. 금호아트홀 제공
2015년 금호영재콘서트 포스터 속 11살 소년 임윤찬. 금호아트홀 제공

부모들의 지극한 헌신과 전폭적 지원도 주요한 요소다. 세계 10위에 오른 한국 경제력도 빼놓을 수 없다. 부모의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시너지를 내면서 고도의 집중 훈련이 필요한 클래식 분야에서 빼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콩쿠르 우승의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은 성적지상주의로 흐를 수 있고, ‘순위 매기기’가 낳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온종일 연습에 매달려 압박감에 시달리는 어린 연주자들의 모습은 최근 불거진 케이팝 아이돌 시스템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불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음반 산업이 저물면서 클래식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고 공연 기회를 얻을 발판은 사실상 콩쿠르가 유일하다. 콩쿠르를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콩쿠르 우승 이후에도 난관은 존재한다. 우승 초반 쇄도하던 국내 공연 요청은 차츰 시들해진다. 그사이 조성진 등 세계적 명성을 얻은 몇명을 제외하고 새로 콩쿠르 우승자가 된 연주자가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은 이들 모두를 수용하기엔 협소하기 때문이다. 공급은 많은데 소비가 부족한 꼴이다. 이성주 원장은 “어렵게 성취를 이룬 연주자들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국가와 사회가 더욱 깊이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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