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3월 29일 3000회 대기록
거쳐간 배우·연주자들 참여…세차례 기념공연 열기로
거쳐간 배우·연주자들 참여…세차례 기념공연 열기로
1994년 5월14일 대학로 학전소극장 무대를 출발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3월29일로 3000회를 맞는다. 김민기(55) 극단 학전 대표가 독일의 아동-청소년 전문극단 그립스의 동명 원작 뮤지컬을 번안·연출한 작품이다. 통일 전 순박한 동독 소녀가 로커와 사랑에 빠져 베를린으로 무작정 상경한 뒤 겪는 대도시의 편린을 그린 원작을 조선족 처녀가 백두산에서 사랑을 나눴던 약혼자를 찾아 서울에 와서 겪는 대도시의 밑바닥 이야기다. ● ‘지하철 1호선’이 달려온 12년 94년 초연 이후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으로 동시대의 상황을 반영시켰다. 해마다 인물의 성격과 노래가사를 바꾸고 한 시대의 큰 이슈를 극 속에 부각시켰다. 94년 초연 당시 ‘군사정권’을 비판하던 운동권 학생 ‘안경’이 95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짜 운동권 학생으로 바뀌었다. 또 1997년 말부터 불어닥친 아이엠에프가 노래가사에 반영되었으며 우루과이 라운드, 아이엠에프 등 사회경제적인 대변동에 따른 실직자 문제나 구조조정 등을 담았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98년 11월까지의 서울의 모습을 담은 6번째 버전으로만 공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민기씨는 “90년대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소중한 자기 모습을 간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9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지하철 1호선>은 초연 때부터 5인조 라이브 밴드를 무대에 세우고, 영상을 적극 활용한 멀티미디어적 연출 등으로 한국 뮤지컬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소극장 최초로 5.1서라운드 음향을 사용하고, 배우·스태프와의 개런티를 서면계약하는 등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 3000회의 의미와 기록들 <지하철 1호선>은 ‘배우 사관학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해마다 새로운 출연진을 선보이며 신인배우들의 등용문 구실을 해왔다. 그동안 150여명의 연기자와 50여명의 연주자가 <지하철 1호선>을 거쳐 뮤지컬, 영화, 연극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방은진(94, 96년 걸레역), 설경구(94년 안경역 96~98년 철수역)씨 등 영화계에서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다. 조승우, 오지혜, 배해선, 권형준, 이정헌, 장현성, 이미옥씨 등 영화와 텔레비전, 뮤지컬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해 성장하고 배출되었다. 선녀(초연 당시 연순) 역의 나윤선은 재즈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기간도 94년 두달 반, 95년 석달간의 공연에 이어 96년 6월에 시작된 공연은 관객들의 요청으로 11개월 간 연속으로 공연하는 등 소극장 뮤지컬로는 드물게 장기 상시공연의 가능성을 열었다. ● 세계로 가는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은 ‘언어를 뛰어넘는 정서적인 강렬함’을 바탕으로 해외공연의 물꼬를 텄다. 2001년 4월에는 독일 베를린 그립스 극장에서의 첫 해외공연이 현지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리니에 1>의 정신이 그대로 받아들여져 아주 재치있게 한국상황에 맞게 변형된 독자적인 한국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세계 공연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해 10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공연에 이어 일본국제교류기금의 기획·초청공연으로 11월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투어으로 공연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확인했다. 2003년 3월에는 아시아 굴지의 국제규모 예술 축제인 홍콩 아츠 페스티벌에 한국 연극·뮤지컬로는 최초로 초청되어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2003년 11월9일 2000회 공연을 기념해 원작인 독일 그립스 극단이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원작 공연을 선보이면서 <리니에 1>와 <지하철 1호선>이 함께 공연되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독일 원작 연극이 외국에서 2000회 공연을 기록한 것은 전무한 일이다. 내 작품을 독창적인 연극으로 탄생시킨 극단의 노력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2005년 10월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전이자 문화올림픽인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 행사의 일환으로 공연돼 “지금의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힘있는 뮤지컬”로 평가받았다. ● 3000회 기념행사 지난 12년간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250여명의 배우, 연주자, 스태프들과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을 꾸민다. 3월28일부터 30일까지 모두 세 차례 기념 공연에서는 2006년 상반기 출연진과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간 선배 배우,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1인 다역으로 등장인물이 80여명에 이르는 공연의 성격을 살려 현재 공연팀이 주요 배역들을 맡고 선배 배우들이 아나운서와 정박아, 날탕, 깔탕, 신문팔이 등 여러 단역들로 관객과 만난다. 또한 1994년 초연 때부터의 출연진과 공연 사진, 제작과정의 각종 자료 이미지, 에피소드 등 3000회 동안의 모든 것을 정리한 기념책자도 낸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번 정차역은 스타 탄생역!” ‘지하철 1호선’ 타고 뜬 배우들
<지하철 1호선>은 회를 거듭하면서 그 정차역마다 스타 배우들을 내려놓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초연때 연기한 설경구를 비롯해, 황정민, 조승우 등 <1호선>의 힘은 영화계까지 뻗어 나갔다. <1호선>이 배출한 스타 연기자들이 고백하는 ‘<지하철 1호선>과 나’를 들어본다. “첫 공연 참여 행운…내 연기의 뿌리” 설경구(94~98년 출연) 대학 졸업 뒤 한양레퍼토리에 갔다가 같은 대학 선후배들끼리 있는 게 답답했다. 또 연극을 계속하는 게 맞을지 고민도 있어서 그만 두고 나왔는데 학전에 가 있던 대학 선배가 포스터 붙이는 일이라도 해달라며 불렀다. 거기서 돈 받고 포스터 붙이는 일을 하는데 김민기 대표가 날 성실하게 본 것 같았다. <지하철 1호선> 초연을 앞두고 출연 제안을 했다. 뮤지컬이니 오디션 봤다면 무조건 떨어졌을 텐데 <1호선> 첫공연 팀은 오디션 없이 뽑아서 가능했을 것이다. 공연 전 <1호선> 독일 공연의 비디오를 보는데 뮤지컬임에도 ‘턴’이나 ‘덤블링’ 같은 게 없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만만하게 보였다. 처음 공연팀은 절반이 무용수, 재즈 가수 등등 연기에 ‘연’자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하는 게 아주 좋았다. 거칠면서도 힘이 있었고 연습 분위기도 자발적이었다. 배우 8~9명이 90가지 역할을 나눠서 했기 때문에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었고 또 자유롭게 연기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공연이 계기가 돼 다른 연극도 하면서 연기 생활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나는 매우 복 받은 배우다. <1호선>과 김민기 대표가 준 거다. “1천회 때 원작지 독일 공연의 감동 못잊어” 황정민(94~98, 99, 2001년 출연) 1994년께였다. 대학 졸업 직후 오디션을 봤고, <지하철 1호선> 2회 공연 때부터 출연했다. 나한테는 상업 극단 데뷔작이라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4년 넘게 출연하면서 7~8개 역할을 했었고, 그 가운데 철수 역할이 가장 컸다. <지하철 1호선>과 김민기 대표는 ‘배우 황정민’에게 무대가 무엇인지, 배우의 마음가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줬다. 그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한다. 1999년 1천회 기념공연 때 <1호선>의 원작지인 독일에 가서 3차례 공연했다. 이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 연극인들이 독일 연극을 독일 관객들 앞에서 공연한다는 감회도 남달랐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10분 넘게 발을 구르며 환호해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호선>은 우리 사회 밑바닥의 ‘루저’들에 관한 연민을 담은 작품이다. 그래서 관객들에게도 그 애틋함이 가닿았던 것 같고, 3천회 공연을 이끌어온 힘도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닌 가 싶다. 이밖에 극의 짜임새도 좋고, 9명의 배우가 50여명의 역할을 나눠하는데 1인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변화하는 연기도 신선함을 줬던 것 같다. “김민기 대표는 선생님이자 휴식처” 조승우(2001년 출연) <춘향뎐>으로 영화 데뷔했던 2000년 가을 학전의 뮤지컬 <의형제> 오디션에 응모했다. 그때 배역과 내 나이가 맞지 않았음에도 기회를 주셨고, 그게 계기가 돼 다시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서 제비, 구두닦이, 재수생, 승객, 행인, 신문팔이, 단속반원 등을 연기했다. 같이 공연했던 황정민씨가 장난기가 많아 실제 공연 중에도 귓속말을 하는 등, 장난을 많이 쳐서 재미있었고, 멤버들 중 가장 막내여서 “승우야, 물 떨어졌다”하면 바로 정수기 물도 갈고, 청소를 도맡아 했던 일도 즐거웠다. 또, 오프닝 때 밴드가 2층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 신문팔이 역할을 기다리던 중 밴드와 같이 대기하면서 줄이 끊어진 못쓰는 기타를 찾아서 진짜 연주하는 것처럼 밴드와 같이 연주(?)했던 기억도 재미있게 남아있다. 김민기 대표는 나에게 말 그대로 ‘진짜’ 선생님이셨고, 좋은 친구같기도 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정말 존경스럽고, 살짝 ‘귀여운’ 모습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김민기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서민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나는 연기를 하면서 편하게 즐겼던 기억이 없는데, <1호선>은 마음껏 즐기면서 표현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학전과 김민기 대표는 부담이 없어 나의 휴식처 같은 공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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