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9일(현지시각) 미국 멤피스에서 열리는 세계 블루스 대회에 참가하는 블루스 음악인 하헌진(왼쪽부터)과 밴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의 리더 리치맨, 윤병주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사무총장이 서울 용산구 청파동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서 의기투합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블루스 하면 흔히들 구슬픈 선율을 떠올리곤 한다. 나이트클럽의 끈적끈적한 ‘부르스 타임’ 음악과는 상관없다는 걸 모르는 이는 이제 거의 없겠지만, 대부분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와 통하는 음악쯤으로 알고 있다. 100년도 더 전에 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부 목화농장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일하면서 부른 노동요가 블루스의 발단이니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기 블루스의 참된 매력을 알리고자 모인 이들이 있다. 이름하여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이런 단체가 있었나 싶겠지만, 생긴 지 6년이나 됐다. 2016년 여름, 한국 블루스의 거목 김목경과 무명 음악인 최항석이 서울 삼각지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나눈 이야기가 단초였다. 2000년대 초 블루스의 본고장인 미국 멤피스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참가했던 김목경은 당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국 블루스 음악인들의 세계 진출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에 동감한 최항석이 멤피스의 ‘블루스 파운데이션’과 접촉해 한국 지부인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를 만든 것이다. 이후 블루스 페스티벌 개최, 블루스 클럽·음악인 지원, 멤피스 ‘인터내셔널 블루스 챌린지’(세계 블루스 대회) 한국 대표 파견 등의 사업을 해왔다.
6년간 단체를 이끌어오는 사이 최항석은 2018년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란 밴드로 데뷔했다. 자신의 진솔한 얘기를 담은 노래 ‘난 뚱뚱해’의 네이버 온스테이지 라이브 영상은 유튜브에서 80만회 가까운 조회수를 올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가 ‘난 뚱뚱해’를 부르는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 유튜브 갈무리
그는 올 초 새로운 대표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3년에 한번씩 리더를 바꾸도록 권장하는 미국 본회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국내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블루스맨을 하나로 모을 적임자를 찾다 ‘음악계의 타노스’인 그분을 떠올렸다”는 최항석이 구애한 상대는 한국 블루스 록의 대표 밴드 ‘로다운30’의 윤병주였다. 윤병주는 사무총장직을 수락하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대중음악의 뿌리’라든가 ‘블루스가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문화의 척박함’ 같은 표현으로 블루스를 강제하기보다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음악이자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음악’으로서의 블루스를 알리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월19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선 소박하지만 뜨거운 파티가 열렸다. 새 사무총장 취임식과 오는 6~9일(현지시각) 멤피스에서 열리는 세계 블루스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 출정식을 겸한 자리였다. 솔로 부문 참가자는 인디신에서 10년 넘게 블루스에 천착해온 하헌진, 밴드 부문 참가자는 2018년 데뷔한 리치맨(본명 차이삭)이 이끄는 신예 밴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다.
오는 6~9일(현지시각) 미국 멤피스에서 열리는 세계 블루스 대회에 참가하는 밴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의 리더 리치맨(왼쪽부터), 윤병주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사무총장, 블루스 음악인 하헌진이 서울 용산구 청파동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서 의기투합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앞서 리치맨은 2019년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최근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서 <한겨레>와 만난 리치맨은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저는 연주력을 중시했는데, 현지에선 무대에서의 흥과 쇼맨십, 퍼포먼스를 중시했어요. 피아노에 불을 붙인 채 연주하거나 기타를 들고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들과 어울리는 연주자도 있었어요. 블루스 또한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중견 음악가인 하헌진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데뷔 이후 줄곧 미국 블루스가 가진 매력을 한국말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어요. 블루스는 가사가 중요한데, 미국에 가서 내 가사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고민이에요. 기존 노래를 영어로 바꾸거나 새로운 영어 노래를 만드는 중인데, 제 음악 경력에 새로운 계기가 될 큰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오는 6~9일(현지시각) 미국 멤피스에서 열리는 세계 블루스 대회에 참가하는 블루스 음악인 하헌진(왼쪽부터)과 밴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의 리더 리치맨, 윤병주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사무총장이 서울 용산구 청파동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서 의기투합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들 두 참가 팀과 윤병주, 최항석은 오는 4일 출국한다. 윤병주는 “이번 대회에는 세계 각 나라의 200여팀이 참가하며, 본토인 미국 참가자만 100여팀이다. 아시아에선 한국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최항석은 “쟁쟁한 음악인들 사이에서 최종 본선에 진출하거나 떨어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출전 자체만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축제처럼 즐기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투어에는 블루스 애호가 12명도 자비를 들여 동참한다. 대회를 참관한 뒤 블루스의 고향인 클라크스데일, 블루스와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 등을 돌며 7박8일간의 블루스 여행을 즐길 예정이다.
“블루스를 두고 ‘한국인의 한’이 있다고들 하는데, 아닙니다. 블루스는 신나는 댄스음악입니다. 이제부터 제대로 즐겨봅시다.”(최항석) 이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