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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흙판에 꿈틀거리는 사람·동물의 군상

등록 2022-02-22 18:29수정 2022-02-23 02:00

우민정 개인전, 새달 1일까지 북촌서
고대벽화 모사 서사에 흙 소재 활용
갤러리 조선 지하 전시장에서 만난 우민정 작가. 가장 안쪽 벽에 내걸린 신작 <프롤로그> 앞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갤러리 조선 지하 전시장에서 만난 우민정 작가. 가장 안쪽 벽에 내걸린 신작 <프롤로그> 앞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한국 미술판에 이렇게 낡은 방식으로 그리는 작가가 있다니!

팝아트와 디지털 엔에프티(NFT) 바람에 휩싸인 요즘 화단 트렌드를 우민정(38) 작가는 정면으로 거스르는 작업을 한다. 옛 석굴벽화 같은 화폭에 사람과 동물이 솟구치거나 꿈틀거리는 군상을 그린다. 화판 위에 물에 갠 진흙을 두껍게 발라 흙판을 만들고 그 위에 송곳 등으로 선을 긁거나 긋고 한국화 안료로 채색해 만드는 신화적 분위기의 그림들이다.

그런데 그 그림들의 이미지가 오늘날 현상을 담아냈다는 작가의 설명이 더욱 놀랍다. 출퇴근길 같은 정형화된 사람들의 일상과 그 안에서 선뜩 비치는 의지와 생명의 꿈틀거림을 작가는 고대 그리스 도자병 암포라의 인물화나 둔황벽화의 불전도 같은 인물 형상과 바랜 색면의 이미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북촌 갤러리 조선에서 3월1일까지 열리는 작가 우민정의 두번째 개인전 ‘벌’의 전시 현장은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서사와 이미지의 숨바꼭질이 중첩되는 세상과 우주를 보여준다. 화판에 흙을 올리고 세상 만물의 수많은 서사들을 화엄의 세계처럼 새기고 칠하는 작가의 화풍은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둔황벽화 전문가인 서용 동덕여대 교수를 은사로 삼아 수년 동안 연찬해온 고대 벽화 모사 작업을 바탕에 깔고 있다.

고대 불교 벽화의 도상적 기반 위에 반복되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사람들의 행위에 착안해 내일을 만들기 위한 세상 만물의 다채로운 움직임 등을 형상화한다. 코끼리, 뱀, 풀, 무지개, 밧줄과 천막 등의 이질적인 소재들을 한 흙 화면에 부려 넣고 이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삶과 세상의 역동성을 표현한 그의 작업들은 참신하고 탄탄하다. 요즘 젊은 작가들 그림에서 지적되는 전형적 문제점인 구성의 헐거움이나 단발적인 이미지 마케팅의 흔적이 거의 없다. 자기만의 단단한 서사, 흙과 안료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이해가 와닿는 청년세대 작가의 반가운 수작 전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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