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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겸재의 박연폭포를 유화물감과 연필로 새롭게 그렸다

등록 2022-02-08 17:58수정 2022-02-09 02:36

문성식 작가 신작전 ‘삶’
국제갤러리 부산서 28일까지
문성식 작가가 자신의 새 연작 <땅의 모습>의 주요 작품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18세기 조선 후기 거장 겸재의 필력을 보고 느끼면서 추상적 풍경회화의 새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문성식 작가가 자신의 새 연작 <땅의 모습>의 주요 작품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18세기 조선 후기 거장 겸재의 필력을 보고 느끼면서 추상적 풍경회화의 새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시커먼 암벽 사이 폭포수 쏟아지는 굉음이 그림에서 들린다.

200여년 전 이 땅 산하의 기운 넘치는 풍경을 그려낸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명작 <박연폭>의 마력이다. 1740년대 70대 노구를 끌고 개성 인근 박연폭포를 답사한 뒤 그린 이 작품에서 겸재는 장쾌한 폭포 소리가 사무치게 귀를 울렸던 기억을 추상적 표현으로 형상화한다. 먹을 꼼꼼하게 겹쳐 칠한 적묵법으로 폭포수 양옆 암벽을 더욱 짙게 칠한 반면, 물살 모양은 수직 선으로 단순화시켜 대비를 극대화시켰다. 이런 구도 아래 폭포소리 울림은 절묘하게 시각화되어 감상객에게 보면서 듣는 듯한 공감각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겸재 정선의 &lt;박연폭&gt;. 개인 소장
겸재 정선의 <박연폭>. 개인 소장

지난 10여년간 이야기 깃든 일상과 자연 풍경을 그리며 묘사력 뛰어난 구상화가로 입지를 다져온 문성식(42)씨가 <박연폭>으로 대표되는 겸재 걸작들에 영향을 받은 신작들을 내놓았다. 지난달 21일부터 부산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에프(F)1964에 자리한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고 있는 신작전 ‘삶’을 통해 내보인 신작 중 일부인 <땅의 모습> 연작이다. 작품들은 이 땅 산하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풀어낸 겸재의 진경산수 화풍을 추상적 풍경화, 작가의 행위가 육화된 풍경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설악산의 토왕성폭포, 울산바위, 포천의 기암, 총석정, 제주의 주상절리 등 풍경들을 유화 화폭 위에 연필을 죽죽 그어 긁어내듯 묘사하거나 <박연폭> <만폭동> 같은 겸재의 명작들을 역시 유화드로잉으로 모사한 신작들은 극도의 세필과 끈끈한 관찰에 기반했던 작업 방식의 변모를 보여준다.

문성식 작가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한 새 연작 &lt;땅의 모습&gt;의 일부분.
문성식 작가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한 새 연작 <땅의 모습>의 일부분.

“수년 전 설악산 토왕성폭포의 모습을 보고 조형적 호기심을 느껴 시작했고, 지난해 전남수묵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본격화한 땅 연작인데요, 그린 배경엔 너무나 사랑하는 겸재의 <박연폭> 그림이 자리 잡고 있어요. 추상화된 풍경화를 그리고 싶다는 욕망인데, 아직은 제 그림이 말이 많죠. 묘사에 몰입하지 않고 갈수록 단순한 형상으로 가고 싶어요. 그리는 몸짓이 풍경으로 육화되는 길을 찾는 중이죠. 겸재의 명작들을 본보기 삼아서 배우면서 가려고 해요. 얼마 전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였던 거장 루이스 부르조아의 드로잉들도 감명을 줬어요. 잘 그리려는 의지를 빼고 삶에 통달해 그린 듯한 선이 좋았어요.”

문성식 작 &lt;기도&gt;(2021).&nbsp;
문성식 작 <기도>(2021). 

그는 25살이던 200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출품해 두각을 드러냈다. 추상과 설치작품, 미디어아트가 득세하는 미술계 흐름과 달리 작가 주변의 세상 풍경과 사람살이,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주력해왔다. 2019년 개인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유화 화폭에 연필로 긁기(스크래칭)를 하는 특유의 드로잉 묘사 방식은 표현 측면에서 선염과 번짐의 수묵 표현에 비해 일일이 긁기를 해야 하는 숙명적 제약을 안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표현의 한계와 극복에 대해 고뇌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특유의 조형 의지와 열정으로 리얼리즘 회화의 새 영역을 탐구해온 작가가 불혹 나이를 넘기면서 원숙한 건너뛰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번 전시에서 일부 드러났지만, 출품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상 풍경과 꽃 그림, 나무·숲·사람 그림 등에서 비친 작법과 소재의 매너리즘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8일까지.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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