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화 작가의 근작. 옛 변두리 동네 골목길의 기억 속 정경을 그렸다.
빨려들어간다. 파란 하늘 너머, 환한 빛덩어리 속으로. 오래된 변두리 동네의 낡은 집 담벼락 골목길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한순간. 담장 위 무성한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도열하듯 길이 사멸해가는 풍경 주위를 수놓고 있다.
부산에서 작업해온 소장 화가 하미화씨의 근작들은 환각적이다. 세월에 밀려가는 부산 변두리 동네의 기억을 특유의 방식과 구도로 표현한다. 화면엔 대개 사실적 풍경과 감상적 색조의 층이 맞물려 있다. 화폭 한쪽에는 근대기 쌓은 마름모꼴 왜식 축대와 1960~70년대 풍의 조악한 콘크리트 담장, 좁은 골목길 등이 표현되고, 다른 쪽엔 검남색부터 하늘빛, 연둣빛으로 변하면서 깔리는 하늘층이나 길 끝자락을 맴도는 허연 대기 같은 것들이 똬리 같은 나무숲 이미지와 어울리고 있다.
하 작가의 몽환적인 풍경들을 서울 경복궁 서쪽 영추문 맞은편에 있는 인디프레스갤러리의 5인전 ‘기억’에서 만난다. 6일까지 열고 마무리되는 전시회다. 한국 현대사 연작을 그린 리얼리즘 화단의 대가 신학철, 화폭을 누더기처럼 만드는 핍진한 필법으로 인물과 풍경의 심연을 파고들어가는 김명숙 작가, 풍경과 내면에 대한 실험적 묘사를 거듭하며 현대 한국화에서 독보적 영역을 닦은 유근택 작가, 사실과 추상, 응시와 방관 사이에서 진동하는 회화를 구현한 최진욱 작가의 근작들과 함께 볼 수 있다. 전시장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열린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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