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해파리가 지배하는 세상?…미래를 경고하다

등록 2022-02-04 04:59수정 2022-02-04 21:58

[부산현대미술관 특별전 가보니]

팬데믹·지구온난화·불평등…
종잡을 수 없는 미래 기획전시

바다 점령 해파리로 위기 메시지
곤돌라 탄 노동자 등 영상물로
금융자본주의·기계문명 성찰도
부산현대미술관의 ‘그 후, 그 뒤’전에 나온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연극 퍼포먼스 설치작품 ‘승><승’. 실제 수조 속을 헤엄치는 바다 해파리가 객석의 관객 눈앞에 등장해 서로 대결하듯 마주 보는 구도가 펼쳐진다. 2017년 작으로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미술관이 부산아쿠아리움과 협력해 만든 한국판 에디션이다.
부산현대미술관의 ‘그 후, 그 뒤’전에 나온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연극 퍼포먼스 설치작품 ‘승><승’. 실제 수조 속을 헤엄치는 바다 해파리가 객석의 관객 눈앞에 등장해 서로 대결하듯 마주 보는 구도가 펼쳐진다. 2017년 작으로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미술관이 부산아쿠아리움과 협력해 만든 한국판 에디션이다.

“두 손으로 눈 가리고 상상하세요. 50년 후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안내 방송에 관객들은 눈을 가렸다. 극장의 등불도 꺼졌다. 40여초간 어둠과 정적에 묻혔던 실내에 이윽고 다시 낭랑한 육성이 흘러나왔다. “이제 눈을 뜨세요!”

예상치 못한 풍경이 정면에 나타났다. 동그란 수조의 파란 물속에 수십마리의 해파리가 떠다니고 있었다. 수백개의 촉수를 벌름거리며 투명한 몸을 펼쳤다 접었다 하며 각자의 리듬과 템포에 따라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환각적으로 펼쳐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가 해파리란 뜻일까? 뇌도 등뼈도 없이 바닷속을 유령처럼 떠다니는 이 생물이 지구를 지배한다고? 안내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전세계 수많은 곳에서 해파리들이 생태계를 장악해버렸습니다. 해파리를 잡아먹는 물고기들을 인간들이 남획하면서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기후온난화로 따뜻해진 바닷물도 해파리는 좋아합니다. 우린 생태계가 해파리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해파리가 인간의 미래가 되는 건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해양오염 등으로 생태 위기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20분 가까이 해파리가 유영하는 수조 무대 앞에서 마치 대거리를 하듯 관객은 눈으론 수조 속 해파리를 응시해야 했다. 귀로는 지구의 생태위기를 이야기하는 배우의 육성을 들으면서 불안한 인류의 미래상을 숙고하게 된다.

부산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 1층 특별전 ‘그 후, 그 뒤’(3월1일까지)의 특설극장에 나온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관객 퍼포먼스 설치작품 ‘승><승’은 입소문 난 수작이다. 오염이 심화한 바다 환경과 위태로운 인류 미래를 관객과 해파리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연출 구도로 보여준다.

팬데믹, 기후 생태위기, 불평등 등으로 종잡기 어려운 인류 미래상을 시각예술가, 디자이너, 연구자들의 다채로운 이미지 작업들로 예측해보는 기획 전시들이 지난 연말부터 부산에서 잇따라 열리고 있다. 기계문명, 금융·자본주의 문명과 해양생태 위기의 현실과 미래를 통찰하는 부산현대미술관의 3종 기획전 ‘그 후, 그 뒤’, ‘신실한 실패’(2월6일까지), ‘경이로운 전환’(3월20일까지)과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의 디자인 주제전 ‘미래가 그립나요?’(3월31일까지)가 화제의 작품마당들이다. 모두 진중하게 미래 우리 삶과 생활 환경을 낯설거나 익숙한 여러 요인을 끌어들여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성찰하고 진단하는 틀거지를 띠었다.

‘그 후, 그 뒤’전에 나온 장한나 작가의 설치작품 &lt;뉴락&gt;. 인류세에 대량생산되면서 마구 버려져 바다나 땅속에서 새로운 암석이나 지층의 일부처럼 변질된 플라스틱 덩어리의 모습들을 디스토피아적인 생태계의 모습으로 드러냈다.
‘그 후, 그 뒤’전에 나온 장한나 작가의 설치작품 <뉴락>. 인류세에 대량생산되면서 마구 버려져 바다나 땅속에서 새로운 암석이나 지층의 일부처럼 변질된 플라스틱 덩어리의 모습들을 디스토피아적인 생태계의 모습으로 드러냈다.

‘그 후, 그 뒤’전은 리미니 프로토콜의 해파리 퍼포먼스 작품 외에도 내용과 형식 면에서 보기 쏠쏠한 수작들이 적지 않다. 다섯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형식에 맞춰 20세기 이후 인류사의 대사건, 산업화의 과정, 생태재난, 인공지능, 디지털 혁명 등의 대서사를 여섯개 채널의 대형 스크린에 집약한 존 아캄프라의 <보라>와 땅속에서 새로운 암석이나 지층의 일부처럼 변질된 플라스틱 덩어리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장한나 작가의 설치작품 <뉴락> 등을 주목할 만하다.

부산현대미술관 기획전 ‘신실한 실패: 재현 불가능한 재현’에 나온 작가 재커리 폼왈트의 영상물 &lt;모래 위의 임금&gt;의 한 장면.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창립 주역 판 론(반 룬) 가문의 저택이었던 암스테르담 판 론 뮤지엄의 난간과 회화, 사진 등에 초점을 맞추며 가문의 재산 증식 과정을 이 문화적 산물들이 어떻게 함축하고 은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산현대미술관 기획전 ‘신실한 실패: 재현 불가능한 재현’에 나온 작가 재커리 폼왈트의 영상물 <모래 위의 임금>의 한 장면.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창립 주역 판 론(반 룬) 가문의 저택이었던 암스테르담 판 론 뮤지엄의 난간과 회화, 사진 등에 초점을 맞추며 가문의 재산 증식 과정을 이 문화적 산물들이 어떻게 함축하고 은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하층 공간의 ‘신실한 실패’전에선 디자인 작가 잭슨 홍과 재커리 폼왈트가 갈수록 추상화하는 현대 소비금융 자본주의 체제의 실체를 건축 공간 이미지 분석과 뒤틀린 상품 디자인으로 짚어낸다. 특기할 만한 건 폼왈트가 내놓은, 자본의 역사가 깃든 건축 공간 연작들이다. 영상물 <모래 위의 임금>은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창립 주역이던 판 론(반 룬) 가문의 저택이던 암스테르담 판 론 뮤지엄의 난간과 회화, 사진 등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며 가문의 재산 증식 과정을 이 문화적 산물들이 어떻게 함축했는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영상물 <언서포티드 트랜짓>은 중국 선전 증권거래소 신축공사장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과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탄생 계기가 됐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말 주행 연속사진의 내레이션을 함께 병치해 추상화한 자본주의와 이미지 재현의 관계를 분석한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다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선전 거래소 공사장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부각시킨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작가는 바로 이 장면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금융 시스템 본위로 추상화할수록 노동하는 인간의 자취는 사라진다는 속성을 짚어내면서 날카로운 시각적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

재커리 폼왈트의 영상물 &lt;언서포티드 트랜짓&gt;. 중국 선전 증권거래소 신축공사장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과 19세기 말 영화 탄생의 계기가 됐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말 주행 연속사진의 내레이션을 함께 병치시키면서 추상화된 자본운동과 이미지 재현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작품이다.
재커리 폼왈트의 영상물 <언서포티드 트랜짓>. 중국 선전 증권거래소 신축공사장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과 19세기 말 영화 탄생의 계기가 됐던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말 주행 연속사진의 내레이션을 함께 병치시키면서 추상화된 자본운동과 이미지 재현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작품이다.

부산 지역 작가들과 홍콩, 싱가포르 중화권 작가 등이 같이 출품한 2층의 ‘경이로운 전환’전(3월20일까지)은 ‘신실한 실패’전과 비슷한 맥락 같지만, 또 다른 결을 드러내는 작품마당이다. 주식·가상화폐·부동산 열풍과 지금도 여전한 노동현장의 사고사, 노동 가치 하락 등의 극명한 대비로 드러나는 현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큰 배경 주제로 삼았는데, 문제의식을 표현한 대상과 작업 방식 등이 각양각색이다. 초고층아파트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꼭대기로 시선을 이동시키거나(이승훈), 초고속 열차 안 동전세우기 게임 장면(호루이안)을 담은 동영상, 자본의 욕망과 포획을 풍자하는 생선잡이 통발 모양의 조형물(강민기)이나 비닐하우스 저장소(강태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대기를 담아 출간한 책들을 수북히 늘어놓은 평상(저우위정) 등 창의적이고 기발한 작품들이 많다.

이번에 나온 3종 기획전 외에도 최근 수년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만든 여러 전시회들은 부산비엔날레 전용 전시관이란 공간적 특징을 업고 그 나름의 독특한 형식적 특장을 창출해냈다. 원래 개관 당시 컨테이너 창고나 공장 같다는 지적까지 나왔던 건물 내외 공간의 이질적 특징을 전시 요소로 최대한 활용했다. 천장 높은 전시장에 널찍하게 작품 영역들을 구획하고, 최대한 슬림화·압축화시킨 출품작 배치와 명료한 메시지 전달 등으로 전시 효과의 가성비를 확 높였다. 실제로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출품작은 국외 명문 미술관에서도 보기 힘든 진기하고 전위적인 시지각 생태 퍼포먼스극이다. 이 미술관 특유의 공간 얼개에 맞춰 특설 무대가 꾸며지면서 몰입도가 커졌다. 서울과 지역의 다른 국공립 미술관들이 국외 거장·대가 중심의 이름값 전시 마케팅에 주력하는 실정에서, 코로나 시대의 개인과 건축, 자본과 생태환경의 미래 같은 굵직한 문명사 현안들을 놓고 지난해부터 주제전을 지속해온 뚝심과 기획력을 높이 살 만하다.

건축 디자인 기획자 심소미씨가 부산 망미동 현대모터스튜디오에 꾸려놓은 기획전 ‘미래가 그립나요?’ 역시 현대 도시와 도시인들에게 닥쳐올 가까운 미래상을 짚는다. 테크놀로지, 도시공간, 디자인 등의 개념 영역을 오가는 국내외 시각예술가, 건축가, 연구자들의 영상과 조형물 등이 등장한다. 1·2층 관객들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잠망경이 장착된 거대 튜브구조물과 인공지능과 플랫폼 연결망 등에 기반한 새로운 생활문화와 언어 문자에 대한 영상, 이미지들을 통해 불안, 희망이 교차하는 미래의 단면들을 훑는다.

은색의 대형 튜브들을 잇따라 얽히게 이어붙인 덩어리 형태로 도시공간의 네트워크 구조를 제안한 대형설치물 &lt;리미널 시티&gt;. 건축 디자인 기획자 심소미씨가 부산 망미동 현대모터스튜디오에 꾸려놓은 기획전 ‘미래가 그립나요?’의 핵심 작품이다.
은색의 대형 튜브들을 잇따라 얽히게 이어붙인 덩어리 형태로 도시공간의 네트워크 구조를 제안한 대형설치물 <리미널 시티>. 건축 디자인 기획자 심소미씨가 부산 망미동 현대모터스튜디오에 꾸려놓은 기획전 ‘미래가 그립나요?’의 핵심 작품이다.

은빛 대형 튜브들을 잇따라 얽히게 이어붙인 덩어리 형태로 도시공간의 네트워크 구조를 제안한 대형설치물 <리미널 시티>가 어느 출품작보다 도드라진다. 기획자가 십년여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온 배관 튜브의 공간 미학을 확장시킨 핵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층에 나온 블라단 욜러의 17분짜리 영상 <신채굴주의>도 끝까지 볼 만한 문제작이다. 중력, 힘, 블랙홀, 벽 등의 역학적 개념을 적용한 근미래 사회의 작동 얼개를 풀어놓은 도해도가 인간 형상과 얽혀 꿈틀거리듯 움직이며 관객에게 다가가는 그래픽 매핑 방식이 새롭다. 다 보고 나면 개인의 정체성과 능력을 광물 캐듯 착취하는 21세기 플랫폼 독점자본의 실체를 나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전시 자체로는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 설명 도슨트가 따라붙어야 겨우 이해할 정도로 개념틀이 산만하고 난삽하다. ‘포스트시티’ ‘유령노동’ ‘초과객체’ 등 1~4부로 구성한 소주제와 체계적으로 호응하는 출품작들이 많지 않다. 미래학, 도시공학, 디지털 테크놀로지 분야의 개념어들이 난무하지만, 설득력 있게 뒷받침할 볼거리는 따라가지 못하는 맹점도 도드라진다.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