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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경매사 규탄하며 경매판 벌인 화랑업자들

등록 2022-01-27 04:59수정 2022-01-27 10:09

[울림과 스밈]
화랑협회, 금기시했던 행사 진행
시장 삼킨 경매사들에 경종 명분
경매 항의를 경매로? 모순 행태
‘낙찰 비공개’ 취약한 역량 자인
26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화랑협회가 처음 마련한 회원화랑 경매가 펼쳐졌다. 경매가 열린 그랜드볼룸 특설 전시장 안쪽에 김창열·손상기·박수근·이인성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26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화랑협회가 처음 마련한 회원화랑 경매가 펼쳐졌다. 경매가 열린 그랜드볼룸 특설 전시장 안쪽에 김창열·손상기·박수근·이인성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가수들이 디너쇼 하던 호텔 공연장에서 화랑주들은 경매판을 차리고 그림을 내다 팔았다.

26일 오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은 고급스러운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화랑업주 단체인 한국화랑협회가 ‘회원화랑 옥션’이란 이름으로 처음 차린 경매장이었다. 가벽에 120여점의 작품들이 내걸렸다. 이인성의 <사과 있는 정물>을 비롯해 김환기, 박수근, 이우환 같은 대가들의 명품들이 안쪽 경매대 근처와 들머리 가벽에 나란히 붙었다. 한동안 잊혔던 중견 작가들과 시장에서 각광받는 젊은 작가들의 신구작들도 볼 수 있었다. 협회 간부는 “쇼 무대에 경매할 그림을 넣었더니 분위기가 멋지게 바뀌었다”고 자랑했다.

실상은 겉모습과 달랐다. 상당수 화랑주들은 휴대전화를 붙들고 경매 출품 서류들을 점검하느라 바빴다. 경매에 사전 응찰하거나 전화로 응찰하는 고객들 주문에 응대하는 경매사 직원 구실을 난생처음 해야 했다. 경매는 이날 오후 4시 협회원 화랑주 외에 언론을 포함한 모든 외부인 출입을 막고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정숙 총무이사가 경매 시작에 앞서 회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모 옥션사는 1년에 경매를 80여차례나 하고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직거래까지 진행하면서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경매는 행동을 통한 문제 제기이고, 수익을 남기기 위한 사업도 아닙니다. 협회는 여러차례 지적했지만, 옥션사는 귀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26일 오후 한국화랑협회의 회원화랑 경매가 열린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화랑들이 출품한 주요 작가들의 그림들이 가벽에 걸렸다. 맨 왼쪽에 내걸린 작품이 처음 선보인 김환기의 소품 <달>이다.
26일 오후 한국화랑협회의 회원화랑 경매가 열린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화랑들이 출품한 주요 작가들의 그림들이 가벽에 걸렸다. 맨 왼쪽에 내걸린 작품이 처음 선보인 김환기의 소품 <달>이다.
화랑협회가 경매를 표방한 공식 행사를 차린 건 1976년 설립 이래 처음이다. 경매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1차 시장에서 나온 작품들을 경매업체들이 되파는 2차 시장이다. 1차 시장의 주역인 화랑들이 경매판을 차리는 행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금기시돼왔다. 지난 18일 언론을 불러 간담회까지 열면서 경매 개최를 널리 홍보한 협회의 행보가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그래서다. 서울옥션·케이옥션 양대 미술품 경매사와 협회의 갈등이 심화된 탓이다.

이들은 2007년 일종의 ‘신사협약’을 맺어, 메이저 경매를 한해 네차례로 제한하고, 제작한 지 2~3년 지난 작품만 경매에 낸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경매사들이 경매를 1년에 80여회나 하고, 젊은 작가들과 직거래하고, 갓 제작한 작품까지 출품하면서 1·2차 시장의 거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협회는 호소한다. 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맞대응 경매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경매가 미술시장의 대세가 되고 두 경매사가 막대한 수익을 누리는 공룡이 되면서, 이에 맞서는 대응이 주목받으려면 경매로 의사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는 게 화랑주들의 말이었다.

미술계 시선은 곱지 않다. 경매사를 규탄하는 화랑들이 비판의 표적인 경매로 항의 의사를 표시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협회는 경매 행사를 언론에 홍보해놓고, 정작 작품 값을 부르고 낙찰되는 현장은 개별 화랑의 영업 비밀 등이 노출될 수 있다며 언론과 일반 관객 출입을 막았다. 경매 뒤에도 총낙찰액과 주요 작품 낙찰가를 감추고 총낙찰률(95%)만 밝혔다. 경매장 열기는 높았다는 후문이지만, 이런 행태는 경매의 본령이 아니다. 한 중견 딜러는 “시장에서의 역량이 경매사보다 훨씬 취약함을 자인한 결과로 보인다. 작가 발굴과 육성 등에 대한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며 신뢰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긴요한 과제임을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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