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위의 점심>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진 1932년 미국 건설 노동자들의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우리 머리 위에 뜨는 태양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인가? 시대마다 다르게 비치는 가변적 존재인가?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장 벽에 나붙은 두장의 사진이 잠시 이런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첫 사진은 1930년 미국 뉴욕 중앙역 홀에서 찍은 것이다. 홀의 천장 옆 연속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찬란한 햇살 무리가 역 안을 온통 흰 기둥의 구조물처럼 채워놓았다. 그 빛기둥 사이로 여행객들이 내부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두번째 사진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당시 영국 런던의 패딩턴역 구내에서 포착한 것이다. 당시 유럽 대륙의 전장으로 출정하는 장병을 가족들이 눈물 흘리며 환송하는 장면 위로 창을 통해 내려온 햇살이 내리꽂히고 있다. 같은 햇살이지만, 시대별·장면별로 다가오는 질감과 느낌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우리는 두 사진의 대비를 통해 알게 된다.
사회적 다큐 사진의 대표적 명작으로 꼽히는 도러시아 랭의 <이주노동자 어머니>. 1936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이주민 캠프에서 찍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세계와 세상을 누빈 이미지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 마당이 차려졌다. ‘세계와 세상의 모든 이미지가 들어찬 저장소’로 불리는 세계적인 사진 이미지 아카이브사 게티이미지가 처음 곳간의 컬렉션을 풀어 보여주는 특별전 ‘게티이미지 사진전―세상을 연결하다’이다. 22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한겨레가 공동 주최한다.
게티이미지는 요즘 국내외 신문이나 인터넷 등의 보도사진이나 자료사진 이미지에 붙는 출처 표시에 흔히 등장하는 이미지 회사의 상호다. 미국의 석유재벌이자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였던 폴 게티의 재력을 바탕으로 그의 손자 마크 게티가 조너선 클라인과 함께 1995년 영국 런던에서 세운 세계 최대 사진 이미지 아카이브이자 유통 배급 플랫폼이다. 우리가 잘 아는 전통의 통신사들인 <로이터>, <아에프페>(AFP), <에이피>(AP) 등과 보도사진 제공 등을 놓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한 사진배급사로도 유명하다.
혀를 내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51년 3월14일 72번째 생일에 사진작가가 웃어달라고 부탁하자 혀를 불쑥 내민 순간이 그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남게 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세상을 연결하다’전은 사진 발명 이래 이어져온 인류의 삶과 이야기들을 게티이미지가 보유한 아카이브 컬렉션과 사진 330점으로 보여준다. 20세기 전지구상에 명멸했던 수많은 역사적 현장 사진들과 사진가의 명작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미지를 전송하는 게티이미지 소속 작가들까지 저마다 담은 시대의 기록들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본다.
게티이미지 사진전의 3섹션 ‘기록의 시대’ 전시장. 천장 층고가 높은 전시장 외벽에 20세기부터 지금까지 각 시대를 포착한 주요 기록사진의 이미지 조각들이 빼곡하게 내걸렸다. 노형석 기자
전시는 전반부 1관과 후반부 2관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1관은 다시 프롤로그와 1섹션 ‘아키비스트의 저장고’, 2섹션 ‘현대르포의 세계’로 나뉜다. 게티이미지의 4억개 넘는 이미지와 1200만개의 비디오 영상 콘텐츠 아카이빙 중 엄선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후발주자로 시작해 세계적 통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게티이미지 보도사진들과 유명 작가들의 숨은 사진들이 뒤이어 펼쳐진다. 2관에선 천장 층고가 높은 전시장 외벽에 20세기부터 지금까지 각 시대를 포착한 주요 기록 사진의 이미지 조각들이 빼곡하게 내걸린 가운데 전쟁과 풍속, 항쟁 등의 사진들을 만나는 3섹션 ‘기록의 시대’가 주목된다. 시공을 초월한 연대와 평화의 감성을 담은 사진들을 모은 4섹션 ‘연대의 연대기’,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생활과 문화에 얽힌 100여년의 사진 기록을 수십개의 사진 상자에 담은 5섹션 ‘일상으로 초대’도 잇따라 만나게 된다.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운데)가 1965년 흑인투표권 제한에 항의하는 행진을 이끄는 장면. 마틴 루서 킹의 인권투쟁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진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1969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여성인권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브래지어를 벗어 치켜들고 있는 사진(일부분). 베트만 컬렉션 소장.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작품들 가운데 <마천루 위의 점심>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진 1932년 미국 건설 노동자들의 사진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뉴욕의 마천루인 록펠러빌딩 고층 골조 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11명을 담고 있다. 원래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경제공황기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명작으로 회자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작품을 ‘세상을 변화시킨 100장의 사진’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사회적 다큐 사진의 대표적 명작으로 꼽히는 도러시아 랭의 <이주노동자 어머니>는 1936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이주민 캠프에서 찍은 것으로, 대공황기에 아이들과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빈민 여성의 지치고 절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1951년 3월14일 72번째 생일에 사진작가가 웃어달라고 부탁하자 혀를 불쑥 내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진도 나왔다. 시공간을 넘어 영원으로 남은 ‘순간’들의 연속을 통해 세상을 연결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연대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거하는 사진들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내년 3월27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게티이미지 사진전 포스터.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