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승의 신작 영상 <대공원>의 일부분. 둥그런 원통형 화면 속으로 과천 동물원의 동물들이 이야기하는 듯한 동영상이 점멸하며 흐른다.
당신은 아는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갇혀 사는 곳이 어디인지를.
코를 벌름거리는 큰 말과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는 수리매. 그들이 어둠 속에서 슬며시 나타나 관객 앞에 정면으로 눈길을 내리쏟으면서 묻는다. 말과 매는 360도 둥글게 돌아가는 화면 속에 갇혀 있다. 그 안에서 그네들이 던지는 눈짓이 한동안 계속 맴을 돌며 흘러간다.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귀에 동물원 울타리에 갇힌 사육 동물들의 절규 어린 신음 소리가 윙윙 울려온다. 이윽고 화면에는 겁먹은 듯한 원숭이와 앵무새, 침울한 표정의 곰이 잇따라 관객 앞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더니 갑자기 거품이 뽀글뽀글 피어오른다. 거품들은 점점 위로 솟구쳤다가 일순 구름으로 변하고 그 안에 자리한 송전탑과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한다. 잇따라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영상들이 낯익어 보인다. 거대한 미술관과 말들이 치달리는 경마장, 청룡열차 따위의 놀이기구, 그리고 전두환이 탑승해 웃고 있는 코끼리열차! 관객은 알게 된다. ‘아, 여기 과천이구나!’
신작 영상 <대공원>의 일부분. 둥그런 원통형 화면 위로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 과천은 어떤 공간인가? 이런 물음이 들게 되는 전시 체험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하게 된다. 지난달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전 ‘대지의 시간’에 출품한 영상작가 장민승의 15분짜리 신작 동영상 <대공원>이 던지는 울림 덕분이다. 작가는 모든 진귀한 것들을 잡탕처럼 부려놓은 공간이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의 남서울개발계획과 1980년대 초중반 전두환의 동물원 대공원 프로젝트로 실체를 드러낸 신도시 과천이며, 이 재개발의 결과로 과천이란 공간은 자연과 생태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울타리 구실을 한다는 깨달음을 영상으로 이야기한다. 1980년대 정부 주도로 과천 산자락에 자리하게 된 동물원, 대공원, 경마장, 국립미술관을 주인공 삼아 과천에서 펼쳐진 현대사의 한 자락을 스펙터클한 영상 화면 속에서 구현한 것이다.
학창 시절 과천의 미술관과 동물원에 소풍을 자주 갔고 예술가가 된 뒤엔 미술관을 수시로 들락거렸던 체험을 녹여 석달여 동안 만들었다는 영상은, 모순된 과천 공간의 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둥글게 흘러가는 영상의 파노라마 속에 동물원 동물들의 표정과 몸짓, 제자리를 맴도는 대공원 회전목마의 움직임, 과천대공원 개장 당시 코끼리열차를 타는 전두환 등 과천 재개발 역사의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편집해 녹였다. 기실 일종의 시각적 유토피아를 실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생태적이고 비인간적인 울타리나 다름없다는 메시지가 울려나오는 얼개다. 즐기고 휴식하는 유원지나 문화 명소와 다른 ‘텅 비어 있는 허망한 원’으로 대공원을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 관점을 섬세한 영상언어로 실감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맡은 단짝 정재일이 만든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끽끽거리는 대공원 회전목마의 기계음, 동물의 절규 소리가 뒤섞인 음향 작업도 어우러져 2021년 한국 미술판에서 가장 빼어난 미디어아트 수작이 연말에 튀어나왔다.
‘대지의 시간’전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돌아보는 틀거지의 기획전이다. 장 작가의 작품과 축축하게 젖은 생태적 상태를 보여주는 김주리 작가의 거대한 흙덩어리 작품 <모습(某濕 Wet Matter_005)> 등 국내외 작가 16명의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35점을 선보이는 중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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