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가슴 그리지 말라? 화난 작가 서명 안 한 걸작

등록 2021-07-28 18:51수정 2021-07-29 02:32

[작품의 운명]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김환기가 1950년대 그린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를 한 관객이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김환기가 1950년대 그린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를 한 관객이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그림 속 여인네들 젖가슴이 눈에 걸리는데…, 그리지 않으면 안 되나요?”

자유혼을 지닌 화가에겐 가당치도 않은 주문이었다. 40대 초반의 홍익대 미대 교수 김환기는 단단히 뿔이 났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55년께였다. 화가들이 절대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최고의 재벌로 흥성하던 삼호방직의 총수 정재호가 길이만 5m 넘는 대작을 그려달라고 김환기에게 부탁해 왔다. 보통 일감이 아니었다. 그는 열성적으로 작업했다. 파스텔톤의 포근한 색면에 여섯명의 여인과 네개의 항아리, 사슴 한마리 등이 등장하는 강렬한 대작을 그렸다.

문제는 선 채로 항아리를 들거나 머리에 인 세 여인의 가슴 묘사였다. 이를 빌미 삼아 정 회장의 부인이 그림 속 도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하는 건 열혈 작가 김환기에게 견디기 어려웠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 전통 회화와 문양의 이미지에 바탕을 둔 반구상, 추상 회화로 미술판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였다. 붓질로 표현하는 데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신중한 김환기는 대놓고 반론을 내놓거나 주문자를 설득하는 대신 묘수를 택했다. 그림을 얼추 완성시켜 정 회장의 서울 필동 집으로 보냈는데, 작가의 서명을 일부러 써넣지 않은 것이다.

지난 21일부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의 최고 걸작이자 전시의 얼굴로 시선을 사로잡는 김환기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는 이런 사연과 내력을 품은 채 지금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lt;여인들과 항아리&gt;의 가운데 부분. 여인과 사슴, 항아리, 꽃, 산, 나무 등 1950년대 김환기 회화를 구성했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색면 위에 어울려 있다.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여인들과 항아리>의 가운데 부분. 여인과 사슴, 항아리, 꽃, 산, 나무 등 1950년대 김환기 회화를 구성했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색면 위에 어울려 있다.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 그림은 1950년대 조선방직을 인수해 국내 최대 방직 재벌로 군림했던 삼호그룹의 정 회장이 서울 퇴계로 필동 옛 일본인 주택지에 자택을 신축하며 주문했던 것이다. 파스텔톤 색면 배경 위에 전통 이미지들이 추상화되어갔던 김환기의 50년대 회화들의 핵심 요소가 모두 망라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면 가운데 작가의 혼을 형상화한 듯한 가냘픈 사슴 한마리를 중심축으로 도자기를 든 채 젖가슴을 드러낸 반라의 여인들이 청자와 백자를 안거나 머리에 인 도상을 통해 작가는 한국의 전통미를 단순화하고 추상화하는 50년대 작업 여정의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사슴과 여인 도상 말고도 김환기 특유의 모나지 않은 사각형으로 단순화된 나무와 우아하게 날아가는 새의 실루엣, 백자 항아리와 학, 사슴, 말린 넝쿨 무늬로 수놓아진 꽃 상자를 인 수레, 새 두마리가 지저귀는 새장 등이 화면 곳곳에 나타난다. 해방 뒤인 1948년 ‘신사실파’ 동인을 다른 소장 화가들과 결성한 이래 1956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 겸 창작 활동을 위해 떠나기 전까지 애호했던 작품 도상들이 고아하면서도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20여년간 정 회장의 필동 집 1층과 2층 난간 사이의 벽에 벽화처럼 걸려 있었다. 60년대 말 이후 그룹 운영이 내리막길을 걷고,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에 의해 반사회적 기업인으로 낙인찍히면서 운영난에 처하자 소장자 쪽이 1980년대 초 당시로서는 거액인 4억~5억원의 가격에 삼성가에 바로 처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화상으로 거래를 중개했던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작품의 규모와 내용이 뛰어나 사진을 보여주자마자 이건희 회장이 바로 구입을 승낙했다”고 회고했다.

가로가 5m를 넘고 세로가 3m에 육박하는 대작으로 한국 근대미술사 명작 그림들 가운데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이 작품은 이후 인수와 소장 과정에서 크기가 계속 걸림돌이 됐다. 애초 1985년 서울 서소문에 준공된 <중앙일보> 사옥 내부 공간에 걸어두었으나, 인근 호암갤러리에서 계속 개최되는 다른 전시 작품들을 압도하는 큰 규모와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전시 장소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일부러 떼어 따로 보관하게 된다. 이 회장도 처음 구입 당시 “이 작품은 별도의 방을 만들어 따로 전시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을 만큼 관심이 남달랐다.

&lt;여인들과 항아리&gt;의 오른쪽 부분. 여인과 꽃, 새 등 1950년대 김환기 회화를 구성했던 주된 요소들이 정갈한 색면 위에 어우러져 있다.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여인들과 항아리>의 오른쪽 부분. 여인과 꽃, 새 등 1950년대 김환기 회화를 구성했던 주된 요소들이 정갈한 색면 위에 어우러져 있다.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하지만 떼어져 말려진 채 수장고로 들어간 뒤로는 거의 외부에 전시되지 않고 40여년간 사실상 묻혀 있었다. 그러다 지난 4월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계와 대중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으며 김환기 최고 걸작으로 재조명되며 금의환향하게 됐다. 구입 당시에는 미술계에서 김환기의 성가가 박수근·이중섭에 가려 훨씬 낮았던 탓에 굳이 재조명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도 요인이 됐다. 미술시장 사람들은 이 작품을 만약 지금 경매에 내놓는다면 요즘 각광받는 70년대 초 김환기 말년의 전면점화보다 훨씬 높은 300억~500억원대에서 시작가가 형성될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기도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환기의 대작 중 단연 압도적이라고 말하면서 이 작품에 얽힌 오랜 인연을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1980년대 중반 삼성그룹 산하 호암갤러리 수석 큐레이터로 일할 당시 중앙일보 빌딩 로비 벽에 걸기 위해 이 그림 두루마리를 처음 풀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나 국립 미술관장이 되어 미술관 품에 들어온 이 작품의 두루마리를 다시 풀었으니 정말 감회가 새롭더군요.”

1950년대 국내 재벌의 소장품이었다가 80년대 다른 국내 재벌의 소장품으로 옮겨갔고, 21세기 들어서야 김환기 최고 작품으로 새롭게 재조명된, 서명 없는 걸작이 바로 <여인들과 항아리>다. 내년 3월13일까지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2.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현철 선생님 떠나고 송대관 선배까지…” 트로트의 한 별이 지다 3.

“현철 선생님 떠나고 송대관 선배까지…” 트로트의 한 별이 지다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4.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5.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