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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제주사람들 애환 서린 삶터, 렌즈로 기록하며 ‘정체성’ 탐색했어요”

등록 2021-07-22 19:34수정 2021-07-23 02:34

[짬] 시각예술작가 양동규씨

양동규 작가가 지난주 전시작품인 ‘다랑쉬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허호준 기자
양동규 작가가 지난주 전시작품인 ‘다랑쉬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허호준 기자

“자연 속에서 제주의 역사와 정체성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같은 풍경을 봐도 느낌이 달라요. 제주의 풍경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역사성과 본질을 고민하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내내 활동해온 시각예술작가 양동규(43)씨가 지난 16일부터 8월5일까지 제주시 삼도2동 포지션 민에서 25년 만에 첫 개인전 <터> 열고 있다. 제주대에서 해양학을 전공한 그는 제주카메라클럽 회원으로 영상과 사진 등 시각예술 작업을 하며 제주참여환경연대와 제주민예총에서 활동해왔다.

제주 출신 대학때부터 카메라 작업
25년만에 처음으로 개인전 ‘터’ 열어
“나이들며 알게된 ‘섬의 서사’ 표현”

제대한 뒤에야 ‘조부 4·3 희생’ 들어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 영향도 받아
“역사와 현실 이미지 응축한 작품”

그의 작품 속에는 제주섬에서 살다간, 그리고 살아가는 민중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제주의 정체성과 본질을 묻는다. ‘태손 땅’(태를 사른 땅), ‘고립된 평안’, ‘동시대 스냅, 2019’ 3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제주섬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바라보는 섬의 서사를 시각적 이미지로 펼쳐낸 작업의 결과물이다.

‘태손 땅’은 섬사람들에게 자기 탯줄을 묻은 시원의 터이자 생명을 품은 본향이다. 전시는 ‘어이없는 현상에 대한 투쟁’으로 시작된다. 요시카와 히로미츠의 <어이없는 진화>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작품은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저항에 맞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곶자왈 바위틈에서 나무뿌리가 뻗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15컷으로 이뤄진 길이 3m의 대작 ‘빈 땅’은 정뜨르비행장(제주공항)에서 실패한 유해 발굴의 현장을 담았다. 죽음의 흔적을 찾으려고 측량을 위해 선을 그어놓은 장면을 포착했다. 앞의 작품을 넘기면 발굴작업 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 나온다. 이들 두고 미술평론가 김준기씨는 “기록사진의 재구성이 다큐멘터리 영역을 넘어 개념미술로 이어진 사례”라고 했고, 문학평론가 김동현씨는 “비어있는 땅은 기록에서 배제된 장소이자 기록되지 않은 기억이며, 우리의 기억은 빈 땅에서 건져낸 시간”이라고 했다.

양동규 작가의 작품 ‘빈 땅’. 양 작가 제공
양동규 작가의 작품 ‘빈 땅’. 양 작가 제공

그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와 맞닿는 지점이 ‘4·3’이다. 작품 곳곳에서는 작가의 할머니와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의 체취를 만날 수 있다.

‘고립된 평온’에서는 할머니의 방을 연상케 하는 작품들이 내걸렸다. 낡았지만 반짝이는 마루, 가지런히 포개어진 이불, 베개, 버선 속에서 작가의 기억은 할머니를 따라간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4·3 때 토벌대에 희생당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4·3을 알게 됐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4·3평화공원을 가자고 해서 그때야 집안의 역사를 알게 됐습니다. 자라면서 할머니의 정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살아계실 때는 유족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는 김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에서 김 시인을 만났을 때 책에다 써준 글귀가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숨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바다가 주는 원초적인 ‘본향’ 같은 것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1949년 4·3 때 ‘내 눈 앞에서는 죽지 말라’는 부친의 말을 되새기며 제주 앞바다의 무인도인 관탈섬에서 사흘을 숨어 지내다가 일본으로 밀항했다. 바다는 김 시인이 생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길이고, 고향으로 오는 길이었으며, 수많은 제주사람들이 수장 학살된 곳이기도 했다. 칠흑 같은 바다의 하얀 거품을 연속된 이미지로 만든 작품 ‘숨’은 그렇게 나왔다.

눈이 내린 삭막한 풍경의 ‘다랑쉬마을’은 폐촌이 된 제주 중산간마을에서 눈 속에 모습을 내민 돌담과 억새가 ‘아끈(작은)다랑쉬오름’을 담았다. “특별한 풍경은 아니지만 70여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어르신들이 늘 바라봤을 만한 풍경을 담았어요. 그때 이곳에 살았던 어르신들도 눈 오는 풍경을 봤을 것이고, 오름을 올랐겠지요.”

양 작가의 이런 시선은 4·3무장유격대가 주둔했던 이덕구 산전의 오래된 때죽나무, 백년초, 덩굴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무꽃 사이에 돌무더기가 있는 작품 ‘어느 유격대원의 죽음에 대한 단상’은 아련함을 넘어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작품의 마지막 ‘동시대 스냅’에서는 작가가 직접 찾아가 반대운동을 했던 강정 해군기지와 오키나와 헤노코에서 벌어진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기지 투쟁, 타이완 금문도의 지하벙커를 만날 수 있다. 4·3 생존자의 집에 있던 수석을 꺼내 ‘돌의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작품에서는 김 시인의 목소리와 생존 피해자들의 증언을 겹쳐놓아 웅성거리는 소리로 나온다. 양 작가는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청년에서 중년의 나이가 되는 동안 제주의 역사와 현실을 만나면서 기록한 이미지를 현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가공하고 응축시켰어요. 25년 동안의 작업 결과물을 처음 내놓게 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숙제를 하나 푼 느낌입니다.”

그는 오는 31일 오후 6시 전시장에서 작품집 <제주시점> 출판기념 토크쇼도 할 예정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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