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화가 인생 스토리 담은 전시 해설에 관객 호응했죠”

등록 2021-07-15 18:27수정 2021-07-16 10:53

[짬] 스타 도슨트 정우철씨

정우철 도슨트가 전시장에서 작품 해설을 하고 있다. 정우철씨 제공
정우철 도슨트가 전시장에서 작품 해설을 하고 있다. 정우철씨 제공

‘미술계의 스토리텔러’로 불리는 정우철(32)씨는 지난 5년 인생의 큰 변화를 겪었다.

그는 2016년에 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를 퇴사하고 알바를 전전하다 이듬해부터 미술관에서 전시 해설을 하는 도슨트로 살고 있다. 지난해 8~9월 <교육방송> ‘클래스e’에서 방송된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은 심야 시간대 방송에도 시청률 1%를 넘기는 호응을 얻으며 시즌2가 제작돼 올해 초 전파를 탔다. 지금은 시즌3 제작 이야기도 오가고 있단다. 클림트와 모네, 모딜리아니 등 서양 미술사 대가들의 예술세계를 화가의 삶과 엮어 풀어낸 이 방송 내용은 최근 책(<도슨트 정우철의 미술 극장>)으로 나왔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첫 책 <내가 사랑한 화가들>도 펴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정씨는 방송에 나간 뒤로 강연 요청이 늘어 요즘 한 달에 4번은 강연을 한다고 했다. “주로 화가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중·고교 선생님들이 강연 요청을 많이 해요.”

&lt;도슨트 정우철의 미술 극장&gt; 표지.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 극장> 표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2016년에 2년 동안 일하던 교육영상 서비스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가 좋아한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어서란다. 아들의 이 선택에 화가인 어머니는 “회사 나가 뭐 할 거냐”며 화를 많이 냈다. “교수님들 강의 영상을 찍었는데 연차가 쌓이면서 내근직으로 인사가 났어요. 교수님들 만나 종일 이야기 듣는 게 좋았는데 회사에 있으니 너무 답답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뭐라도 찾아보려고 무모하게 회사를 나왔죠.”

퇴사 뒤 1년 쯤 지나 그의 눈에 미술관 도슨트가 들어왔다. “2017년 초 어머니 전시를 돕다 미술관 스태프 알바를 시작했어요. 멍하게 전시장을 지키는데 도슨트가 보이더군요. 내가 서 있는 공간에서 작품 해설을 하는 모습이 멋있었죠. 재미도 있을 것 같았어요.” 얼마 안 돼 기회가 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 스태프로 전시장을 지키던 그에게 전시 기획사 쪽에서 예정된 도슨트가 펑크를 냈다며 대신할 수 있겠냐고 의향을 물었다. “겁은 났지만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았죠.” 그는 첫 도슨트 경험을 이렇게 떠올렸다. “기획사 자료를 토대로 1시간 분량 대본을 만들어 달달 외웠어요. 하지만 관객이 두 명이었던 첫 해설은 20분도 채우지 못했어요. 너무 떨려 다 까먹었어요. 차츰 하다 보니 1시간이 됐죠. 그때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가 네 번째로 도슨트를 한 재작년 베르나르 뷔페(프랑스 화가, 1928~99)전은 정우철 이름 석 자를 미술 애호가들에게 각인시켰다. 전시 기획사 대표까지 전시 성공에는 도슨트 몫이 컸다고 인정했단다. “전시 첫날 관객이 십여명에 불과했어요. 그러다 도슨트 설명과 같이 보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저와 전시가 같이 떴죠.” 도슨트 초기에 그는 하루 5만원을 받았다. 지금은 15만원을 받는단다. 뷔페 전시로 뜨기 전까지 한 달 수입이 채 100만원이 되지 않았다. “뷔페 그림이 너무 강렬해 ‘이번에 한 번 잘해보고 안 되면 투잡 뛰자’는 각오로 전시 전에 저한테는 꽤 큰돈을 들여 일본 시즈오카에 있는 뷔페 미술관까지 찾아 나흘 동안 뷔페 그림만 봤어요. 또 뷔페를 다룬 일본어 책 3권을 사 중요한 대목은 전문번역자에게 맡겨 대본 작성에 활용했죠. 이렇게 화가가 태어난 순간부터 어떻게 죽었는지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설명하니 관람객 몇 분은 눈물을 흘리더군요.”

‘하고 싶은 일 찾아’ 직장에 사표
4년 전부터 미술관서 전시 해설
뷔페전 “도슨트 덕 성공” 말 들어
‘EBS 강의’ 시청률 1% 넘기기도
방송 내용 토대로 책도 출간

“화가 삶에 초점 맞추는 해설 추구”

그는 전시 해설을 할 때 작품 분석보다 화가의 삶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대학에서 영화를 배울 때도 영화감독들의 삶에 흥미를 느껴 자서전을 많이 봤어요. 이런 관심이 미술로 옮겨왔죠.” 여기에는 미술 비전공자로서 미술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대학 때 ‘영화를 잘 만들려면 미술도 알아야 한다’는 교수 가르침에 따라 미술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탐구는 아니었다. 도슨트를 하면서 진짜 미술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미술책은 30대 후반쯤 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어요. 미술사 전반에 대한 지식이 아직은 부족해 대학원 진학도 고려하고 있어요.”

어떻게 대본을 쓰냐고 하자 그는 “화가당 최소 책 5권은 본다”고 답했다. “1980~90년대에 나온 책 중에 도움이 되는 게 많더군요. 책을 보고는 포털 뉴스 검색을 해 오래된 뉴스 순으로 봅니다. 거기서 그림이 얼마에 팔렸는지, 화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보를 구하죠.”

전시 해설을 하는 정우철 도슨트. 정우철씨 제공
전시 해설을 하는 정우철 도슨트. 정우철씨 제공

대본을 만든 뒤에는 먼저 어머니에게 들려준단다. “엄마가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 표시를 해 보완합니다. 저는 전시를 처음 보거나 거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제 설명을 듣고 전시에 재미를 느끼고 다시 전시장을 찾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는 쓰지 않고 다 풀어서 말하죠.” 도슨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냐고 묻자 “책임감”이란다. “누구도 도슨트에게 대본을 쓰라고 하지 않아요. 기획사 자료 보고 정보만 전달하는 도슨트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는 초보 관람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없어요.”

도슨트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재작년 뷔페 전에 여자 친구와 함께 온 남자 관객이 제 설명을 듣고 엄청 울다 나갔어요. 뭔가 사연이 있겠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여자 친구가 저한테 에스엔에스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디자이너 남친이 어머니를 잃고 회사도 관두면서 폐인처럼 살았는데 제 설명을 듣고 굴곡진 뷔페의 삶이 자신과 비슷하다면서 힘을 얻었다고요. 참으로 오랜만에 남친이 환하게 웃는 모습도 봤다면서요. 방송에서 화가 뭉크 편이 나간 뒤에도 고교생한테 비슷한 메시지를 받았죠.” 이런 경험 뒤로 그는 화가의 인생 스토리 위주인 자신의 해설에 자신을 갖게 되었단다. “사람들은 미술 정보보다 쉬러 전시장을 찾는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지난 8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정우철 도슨트.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8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정우철 도슨트. 강성만 선임기자

도슨트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리액션(반응)을 잘 해주는 관객을 만날 때란다. “관객 수가 100명이든, 10명이든 제 설명에 ‘아 맞아 맞아’하며 반응해주는 분들이 많을 때 제일 좋아요. 고개도 끄덕여주고요. 반응이 없으면 너무 힘들어요.” 그 역시 인터뷰 내내 ‘아 그래요’, ‘아 맞아요’라며 질문에 반응했다. 대화가 술술 풀리는 마법 같은 리액션이었다. “엄마 성격을 닮았어요. 엄마도 리액션이 좋아요. 저는 지금도 집에 가면 엄마한테 바깥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다 이야기해요.” 아들의 인생 격변을 엄마는 어떻게 볼까. “지금은 너무 좋아하세요. 엄마가 제 사진과 제 책 사진을 카톡 프사로 쓰세요.”

그처럼 노동의 대가를 받는 도슨트는 국내에 불과 열댓 명이란다. “80~90%는 자원봉사이죠. 도슨트는 아직도 한국에서 직업으로 안착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저한테 도슨트가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요. 국립미술관은 자원봉사자를 쓰는 게 좋지만,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야 하는 상업전시는 제대로 된 보수를 지불하고 도슨트를 쓰는 게 맞죠.”

샤갈의 ‘연인들. 정우철씨 제공
샤갈의 ‘연인들. 정우철씨 제공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샤갈의 ‘연인들’이란다. “유대인 샤갈이 2차 대전에서 나치한테 위협을 겪은 뒤 그린 작품인데 샤갈의 인생이 담긴 것 같았어요. 화가는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꽃다발 속에 연인과의 보금자리를 마련해두고 오른쪽 하단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담긴 마을 모습까지 그렸죠. 한동안 제 핸드폰 배경화면이었습니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하자 그는 “20년 뒤에도 전시 현장에서 해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지금은 제가 젊어서 사람들이 찾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해요. 앞으로 영어도 읽혀 외국 유명 미술관의 원화 앞에서 해설하는 꿈도 있어요. 미술관 관람법도 책으로 써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1.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2.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현철 선생님 떠나고 송대관 선배까지…” 트로트의 한 별이 지다 3.

“현철 선생님 떠나고 송대관 선배까지…” 트로트의 한 별이 지다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4.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5.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