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그 옆벽에 걸쳐 눌러 붙듯 설치된 길이 5.1m의 그림자 모양 대형 인물상. 계단 위 2층 전시장 안쪽에는 벽을 바라보는 사람 크기 남자의 상이 서 있어 실제 관객이란 착시를 일으킨다. 아래 1층엔 선인장의 일종인 아가페를 형상화한 식물 화분도 보인다.
‘납작이’는 ‘그림자’가 됐다.
인간들의 모습을 땅딸막하게 압축한 난장이 군상이나 길쭉하게 늘린 상으로 표현해 주목받아온 이환권 조각가의 신작은 사실상 양감을 상실한 평면의 흔적에 가깝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시작한 그의 개인전은 바닥이나 벽에 눌러 붙은 작가와 가족 친지, 동료들의 몸 흔적들을 그림판 같은 조각상들로 보여준다. 그것은 세상이 디지털 화면처럼 갈수록 평평해지는 흐름과 조응한다. 디지털 가상세계의 이미지와 정보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실체가 된 시대이니 더 이상 실체를 보여주는 덩어리 느낌은 조각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웅변하는 듯한 작업들이다.
사물과 사람을 길쭉하게 늘리거나 납작하게 압축시킨 특유의 작업 방식은 지난 20여년간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조각의 본질적 요소인 물성과 양감을 사실상 배제하며 그림자의 형상과 의미를 신작의 중심 화두로 도입했다. 납작한 그림자 판에 묘사된 사람 군상이 조명 속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면서 전방을 주시하거나 관객의 시선을 내려받는 구도의 신작들을 내놓았다.
화랑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그 옆벽에 걸쳐 눌러 붙듯 설치된 길이 5.1m의 그림자 모양 대형 인물상이 대표적이다. 계단 위 2층 전시장 안쪽에는 벽을 바라보는 사람 크기 남자의 상이 서 있어 실제 관객이 먼저 와서 보고 있다는 착시감을 일으킨다. 아래 1층엔 선인장 일종인 아가페를 형상화한 식물 화분이 보인다. 3층엔 기지개를 펴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실제 형상을 닮은 그림자의 실루엣과 길게 왜곡된 그림자의 실루엣으로 나눠 묘사하고 있다.
예화랑 3층 전시장의 신작 인물상 뒤에 나란히 서 있는 이환권 작가. 장인어른의 기지개 장면을 납작하게 뜬 그림자 형상의 합성수지로 빚어낸 작품이다.
2000년대 이후 그는 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성을 계속 제거하고 왜곡된 인물상을 만드는 작업을 변주해왔다. 인물의 상은 극사실적이나 옛적 영화의 장면처럼 납작하고, 실체적인 덩어리감은 줄어들고 압축되는 기묘한 양감을 빚었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이런 양감을 더욱 덜어내 사실상 평면에 가까운, 그러니까 일종의 판대기에 이미지를 입힌 그림자상으로 변화했다. 작가가 이성적 판단과 관찰 아래 일종의 세계를 빚어내는 기존 조각 장르의 속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이런 변화가 의미한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나 스스로 지금 시대 조각이 다루는 실체가 허상이라는 인식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화와 조각, 설치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경계가 사라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각가는 여전히 덩어리와 물성을 생각하면서 종합적인 작업을 하려는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이미 지금 시대상에 뒤처지고 있는 셈이죠. 저는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세상과 일상의 단면들을 표현하면서도 물성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지금 이 세상에 대응하는 조각을 해보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 왜곡된 상에서 나아가 허상으로 귀결되는 그림자까지 오게 됐습니다.”
이 작가는 디지털 감수성이나 팬데믹 상황에 따른 비대면 문화의 흐름 속에서 본질이나 의미가 아니라 형상과 조각에 대한 미학적 열망만을 표현하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앞으로 그의 인물 조형 작업이 어떤 방향과 맥락으로 귀결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전망을 밝히지 않았다. 신작인 그림자 작업 또한 근본적인 실체가 없고, 오직 정보와 형상만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대한 관념 혹은 반영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31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