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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만에 공론화된 무단 도용 논란…<흔들리는 마음> vs <본명선언> 비교 상영회 열려

등록 2020-02-07 20:19수정 2020-02-07 21:45

“홍형숙 ‘본명선언’이 내 작품 ‘흔들리는 마음’ 무단 도용”
재일교포 출신 양영희 감독 98년 첫 문제제기 공론화 실패
홍 감독 ‘경계도시2’ 임금체불 문제 등 불거지며 재공론화

두 작품 모두 일본식 이름 혼명 쓰는 재일동포 현실 다뤄
9분40초 분량 ‘본명선언’에 삽입…크레디트 표기조차 부실
“도움 주기 위해 원본 테이프 제공·취재원 소개했을 뿐”
7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열린 비교상영회에 참석한 양영희 감독.
7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열린 비교상영회에 참석한 양영희 감독.

“테이프(촬영 원본)을 보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갖다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말이 되나요? 세계 영화사에 남을 범죄라고 생각합니다.”(양영희 감독)

재일교포 출신 양영희 감독이 제기한 도용 논란을 무려 22년 만에 공론화 하는 비교 상영회가 열렸다. 7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양영희 감독의 <흔들리는 마음>과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이 차례로 상영됐다.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가족의 나라>(2013)를 연출한 재일동포 양영희감독은 22년 전인 1998년 당시 자신이 연출한 일본 방송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9분 40초 장면을 홍형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본명선언>이 무단으로 도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조선 국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없었던 양 감독은 한국의 영화 담당 기자들을 수소문해 <흔들리는 마음>의 복사본을 우편으로 보냈다. 또 <본명선언>을 상영하고 이 작품에 최우수 한국다큐멘터리에 주는 운파상을 수여한 부산국제영화제측에 비교 시사회를 제안하며 저작권 침해 문제가 한국에서 공론화되길 바랐다. 그러나 비교 시사회는 성사돼지 않았고, 홍 감독은 “영상을 사용하는데 양 감독의 합의가 있었다”고 맞서며 논란은 해소되지 못한채 잊혔다.

22년이나 지난 현재 이 논란이 다시 공론화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홍 감독이 연출한 <경계도시2>에 얽힌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김명화 현 굿필름 대표가 “<경계도시2>를 연출한 홍 감독이 당시 스태프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고 인건비를 유용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논란을 알게 된 양 감독이 <씨네21>을 통해 다시 무단 도용 문제를 공론화 하면서 비교상영회가 열리게 됐다.

논란의 핵심은 양 감독이 <흔들리는 마음> 촬영 원본을 모두 홍 감독에게 제공했고, 이를 <본명선언>에 사용해도 되는지 협의했는지에 있다.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모두 본명을 쓰지 못하고 일본식 이름인 혼명을 쓰는 재일동포들의 현실을 다뤘다. <흔들리는 마음>보다 2년 후에 발표된 <본명선언>의 첫 장면에는 양 감독이 등장한다. “이름 때문에 울어본 적 있니?”라는 양 감독의 말을 듣고 홍 감독이 오사카로 취재를 하러 왔다는 나레이션이 깔린다. 이날 비교상영회에서 양 감독은 영화의 도입부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 나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다고 해서 거절한 적이 있고, 내가 하는 말을 다 찍길래 기록 차원인 줄 알았다“며 “영화 도입부에는 내가 먼저 테이프를 보내 자신이 오사카에 온 것처럼 나레이션한 것도 거짓”이라고 말했다.

양 감독은 촬영 원본을 홍 감독에게 제공한 것은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95년 10월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에서 홍 감독을 처음 만났는데, 이름을 소재로 취재를 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연락을 하고 지내다 자신도 재일교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당시엔 지금보다 더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이를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서 <흔들리는 마음>에 등장하는 후지하라 선생도 소개해주고, 재일 교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방송에 나간 30분 분량 외에도 보고 싶다고 해서, 재일교포에 관해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원본을 다 보냈다.”

홍 감독이 사전에 협의를 했다고 주장하는 점에 대해 양 감독은 “만약 내 작품을 1초라도 쓰면 가편집을 미리 봐야한다고 말도 했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점은 상식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양 감독은 <본명선언>이 <흔들리는 마음>에 출연한 김성미씨의 초상권을 무단으로 침해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흔들리는 마음>에는 혼명을 쓰다가 본명을 선언하는 김성미씨가 출연한다. <본명선언>에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인용해 김성미씨가 등장하는데, 이후 그를 찾아갔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단 장면이 나온다. “단 한번도 만나지 않은 성미를 영화에 마음대로 써도 되나요? 일본어도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서울에서 찾아와서 취재하겠다고 하면 누가 나갈까요? 성미의 초상권은 어떻게 할건가요?”

사진 신지민 기자
사진 신지민 기자

이날, 여러 차례 울먹인 양 감독은 홍 감독의 사과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다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22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이 사안이 바로 잡아야한다는 주장이다. “영화 <기생충>이 세계를 다 휩쓸고 있는데 한쪽에선 이런 이야길 해야한다는 것이 참담합니다.”

상영회에 참석한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논문에서 글을 한 줄 인용할 때도, 각주에서 출처를 명확히 밝힌다”며 “설사 협의가 있었다고 해도 <흔들리는 마음>의 영상을 사용하기 전에 출처를 자막 등에 명확히 표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명선언>의 크레딧에는 ‘8mm 취재 양영희’라는 이름만 나올 뿐, <흔들리는 마음>이라는 작품 명이나, 작품의 저작권을 가진 NHK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편, 이날 상영회에는 박찬욱 감독도 참석했다. 박 감독은 “오늘 개인이 아니라 한국 영화 감독 조합을 대표해서 왔다”며 “오늘 당장 어떤 입장을 밝힐 순 없지만 오늘 보고 들은 이야기를 조합에 가서 보고 하고, 이번 사안에 대해 잘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는 직접 관객들에게 “당시 사실 확인도 없이 부정과 타협으로 침묵하고 동조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거듭나기 위해 반성하면서 22년 만에 양영희 감독에게 사죄”하는 글을 나눠주기도 했다.

글·사진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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