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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연봉 640만원…영화판 우리 꿈도 지극히 평범하죠”

등록 2006-01-02 14:58수정 2006-01-04 16:27

연출·촬영·조명·제작부 등의 스태프가 주축이 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15일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결성됐다. 사진은 한국 영화 시나리오작가,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조합 통합 출범식. 사진/최호경
연출·촬영·조명·제작부 등의 스태프가 주축이 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15일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결성됐다. 사진은 한국 영화 시나리오작가,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조합 통합 출범식. 사진/최호경
[인터뷰]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이 말하는 ‘영화인의 꿈’
‘한국 영화’는 잇단 국제영화제 수상과 수준높은 작품성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는 한국의 대표적 상품이 되었다. 한국 영화의 ‘오늘’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번득이는 상상력이 깃들어 있다. 지난 연말 한국영화의 ‘오늘’을 만든 그들에 대한, 담담한 헌사와 고백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트로피의 여자 발가락 몇개만 떼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타’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영화제에서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황정민씨는 수상소감에서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려 화제가 됐다. 스태프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인정한 셈이다. 1000만 관객이 몰리고, 3년 연속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스탭들의 처우는 주연배우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묻혀져 있었다. 그러나 영화판 스태프는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받지 못하는, 그것도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영화판 스태프, 그들이 ‘노조’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2004년 영화판 스태프 평균 연봉 640만원


그들이 뭉쳤다. 연출·촬영·조명·제작부 등의 스태프가 주축이 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노조, 홈페이지 fkmwu.org)가 지난해 12월15일 결성됐다. 이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도급 근로형식 철폐, 제작인력의 전문화 등에서 한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장시간의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영화판 스태프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이들은 영화작업의 특성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3권 등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영화노조는 “스태프가 건강해야 한국영화가 건강해지며, 근로기준법 적용은 한국영화산업 경쟁력의 출발”이라고 선언했다. 노조는 △실용적인 단체교섭안과 단체교섭 환경 조성을 통한 단체교섭 승리 △4대보험 적용 및 고용안정시스템 구축을 통한 근로기준법 적용 △교육사업과 ‘영화인 신문고’ 사업 등을 통한 한국 영화산업 경쟁력 확보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 센터 맞은편에 노조 보금 자리를 마련한 최진욱 위원장은 출범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 센터 맞은편에 노조 보금 자리를 마련한 최진욱 위원장은 출범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영화산업노조 초대 위원장을 맡은 최진욱(31)씨를 만났다. 최 위원장은 영화판 스태프의 꿈도 ‘평범한 보통사람’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영화노조 설립 이유에 대해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결혼도 하고, 의료보험 혜택 받아 병원도 가고, 국민연금에 가입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 등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영화판의 특성상 영화 제작사와 스태프간의 불공정한 계약관계에서 벗어나 영화산업 안에서 공동의 분배원칙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2004년 스태프들의 평균 연봉이 640만원입니다. 최하직급의 경우 200만원의 연봉도 받지 못하는 것이 관례이고요.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삶을 영위할 수 없어 중도에 ‘꿈’을 접는 이들이 많아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계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고, 특히 결혼을 한 경우 영화판에서 버는 돈으로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30~35세가 고비이죠.”

10여년째 조명 담당 최진욱 위원장 “나는 여전히 ‘싱글’입니다.”

10여년째 조명일을 맡아서 해왔던 최 의원장 또한 ‘싱글’이다. 94년 영화 <헤어드레서> 작업 현장을 우연히 본 뒤 영화에 매력을 느낀 그는 <테러리스트>, <리허설>, <불새>, <투캅스2>, <피아노맨>, <클래식> 등에서 조명부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즐겁게 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경험과 전문지식이 쌓였지만, 급여는 오르지 않았다. 10년 넘게 일했음에도 통장의 잔고는 거의 바닥이다. 지금 이 상태로는 결혼 자체가 ‘환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화판에서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는 스태프들의 처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부분 6~7개월의 단기간 계약직으로 일해요. 영화는 산업화되었지만 노사 관계가 정립되지 않아 스태프들은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관건인데, 갈 길이 멀죠. 그만큼 책임감도 큽니다.”

노조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몇년 전부터 꿈틀댔다. 2001년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스태프들이 모여 인터넷 상에서 결성한 피해자 모임 성격의 단체 ‘비둘기둥지’를 시작으로 이듬해부터 조감독·촬영·조명·조수협회 등이 발족됐다. 2003년 제작부가 포함된 4부 조수연합이 설립되면서 영화노조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당시 최 위원장은 영화노조설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해결을 돕는 영화인 신문고가 2004년 설립돼 어느 정도의 성과도 올렸지만 정식 노조가 아닌 협회 차원에서는 영화산업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실질적으로 많은 한계가 있어 노조 결성을 추진하게 됐어요. 2004년과 지난해에 걸쳐 현장 스태프의 근로조건 개선 등을 위한 근로기준법·노동법 적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작업을 추진해 왔는데, 이달쯤 공청회를 열고 구체화할 생각입니다. 노조의 본격적 활동도 이때부터 본 궤도에 오르는 셈이죠.”

영화노조 현재 700여명 가입, 노동부 설립인가 대기중

연출, 촬영, 조명, 제작부 소속 700여명의 노조원을 이끌고 있는 최진욱 위원장.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연출, 촬영, 조명, 제작부 소속 700여명의 노조원을 이끌고 있는 최진욱 위원장.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현재 영화노조에는 연출, 촬영, 조명, 제작부 소속으로 700여명이 가입돼 있다. 미술, 의상, 녹음, 분장, 운송, 스턴트맨 등의 산하 직능별 하부 조직도 갖추게 되면, 장기적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인력을 포괄하는 노조로 거듭나게 된다.현재 노동부에 설립신고를 마쳤고,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4년을 준비했는데, 시스템 개선에는 노사 모두 공유하는 것이 있어요. 때문에 도제시스템을 대신할 개별 근로계약에 필요한 표준계약서 양식을 만들기 위해 제작자들과의 협상 테이블을 갖고 단체교섭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받고, 연장이나 야간근로에서 적정 수준의 수당을 받도록 해야죠. 4대 보험 혜택도 받아야 하고, 부당해고 등도 없애야 하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영화판에서 ‘모성보호법’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그는 노조 설립이 ‘영화발전을 저해할 것’, ‘제작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노조의 자정기능이나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서라도 노조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노사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영화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으니 궁극적으로 영화산업에 있어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스템은 ‘공멸’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는 영화인의 처우가 개선이 유능한 인력의 유입과 영화제작의 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영화 발전에 기여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능한 인력이 유입되지 않으면, 우수한 영화를 만드는 토대가 무너지고, 훌륭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는 얘기다.

“영화판의 인력구조는 역삼각형이에요.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대학에서 영화에 대한 꿈을 안고,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서도 선뜻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들에게 ‘꿈’을 먹고, 모든 것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 위원장은 “최근 한국 영화의 눈부신 약진은 우수 인력의 유입과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언제까지 이들의 꿈을 볼모로 영화 현장을 지키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이제는 제작자들이 영화 발전의 숨은 공로자인 스태프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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