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의 기억>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오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같은 계절의 반환점을 10번이나 도는 동안 ‘노무현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염원했던 ‘지역주의 청산’과 ‘참여 정치’,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꿈꿨던 ‘생명 농법’과 ‘농촌 부흥’까지…. 노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스크린에는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와 <노무현입니다>(2017)의 뒤를 이어 그의 유지를 추념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속속 개봉하고 있다.
영화 <시민 노무현>의 한 장면. 삼백상회 제공
오는 23일 개봉하는 <시민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귀향을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청와대 그 후 이야기’, 즉 퇴임 뒤 봉하마을에서 보냈던 454일간의 기록을 담는다. “야~ 기분 좋다!”는 귀향 일성을 시작으로 영화는 고향으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이 도모했던 친환경 농사, 화포천을 중심으로 한 생태 환경 복원, 그리고 새로운 사회 담론을 꿈꿨던 민주주의 2.0 등을 소개한다. 가장 모범적인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이 꿈꿨던 농촌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비전이라 할 수 있다.
자전거에 손녀를 태워 들판을 달리고, 봉하 방문객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며, 오리와 우렁이를 논에 풀어 농사를 짓던 소탈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스크린 가득 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하지만 귀향 생활마저 ‘정치적 공격’에 휘말리고 결국 서거로 귀결되는 마지막 부분은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분노와 슬픔을 환기하기도 한다.
영화 <시민 노무현>의 한 장면. 삼백상회 제공
<시민 노무현>이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의 ‘새로운 꿈’을 다뤘다면, 지난 15일 개봉한 <물의 기억>은 그 꿈이 이뤄낸 지난 10년의 결과를 이야기한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라던 노 전 대통령의 비전은 생태 연못, 퇴래 들녘, 화포천 등 복원된 봉하마을 생태계를 통해 계속 실천되고 있다.
영화 <물의 기억>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물의 기억>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드러내놓고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물의 흐름과 봉하마을의 눈부신 사계절을 현미경처럼 담아낸 ‘자연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노 전 대통령의 꿈을 그려낸다. 눈이 녹은 물이 땅속 싹을 틔우고, 볍씨가 꽃을 피워 쌀을 만들어내는 여정, 봉하의 자연과 공존하는 반딧불이·왕우렁이·미꾸라지·메뚜기 등의 움직임은 한편의 대서사시다.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배우 김명곤의 나직한 내레이션이 귀를 편안하게 한다.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의 한 장면. ㈜바보들 제공
지난달 개봉한 <노무현과 바보들>은 지역주의 타파와 동서화합을 내걸고 선거에 나섰다 연거푸 낙선했던 ‘바보 같은 정치인 노무현’과 그에게 반해 생업도 내팽개친 채 그를 대선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앞장섰던 ‘바보 같은 노사모’의 이야기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생애를 노사모 회원 86명과 박원순 서울시장, 배우 명계남,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훑는다. 애도와 추모보단 왜 ‘바보 노무현의 유산’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번에 나온 세편의 영화는 ‘정치인 노무현의 도전과 좌절’을 그렸던 전작들에 견줘 그의 또 다른 삶과 사상,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서거 10주기’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움도 남는다. 참여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품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올해 노무현재단의 추모 표어는 ‘새로운 노무현’이다. 당신은 원치 않으시겠지만 수시로 현실 정치에 호출되실 텐데, 이젠 역사 속으로 들어가실 때도 됐다. 앞으로는 참여정부를 차분하게 평가하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그 속에서 그분의 정신이 보수와 진보를 넘어 공동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