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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웅 아닌 인간, 암스트롱의 고뇌를 읽다

등록 2018-10-17 06:00수정 2018-10-17 09:31

[리뷰] 영화 <퍼스트맨>

‘위플래쉬’ ‘라라랜드’ 셔젤 감독 신작
‘최초 달 착륙’ 암스트롱 실화 바탕
우주 개척 신화 이면의 ‘희생’ 그려

‘그레비티’ ‘인터스텔라’ 등과 달리
1인칭 다큐처럼 극적인 설정 없어
한 인간 ‘용기 있는 발걸음’에 집중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광기에 휩싸인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음악 영화 <위플래쉬>,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을 주인공으로 꿈을 좇는 젊음의 열정을 그려냈던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30대 천재감독 데이미언 셔젤(33)이 만든 우주영화. 단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영화 <퍼스트맨>이 18일 국내에 상륙한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할리우드의 기술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뽐냈던 <그래비티>(2013), <인터스텔라>(2014), <마션>(2015)에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데이미언 셔젤의 이 영화가 다소 의외일지도 모르겠다.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1930~2012)의 이야기를 담은 <퍼스트맨>은 우주 개척의 역사와 그 안에서 한 인간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과 고뇌를 묵직한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영화는 극적인 설정이나 과장을 빼고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의 일대기를 세밀하고 차분하게 연대기 순으로 짚어낸다. 제트기 조종사였던 닐 암스트롱이 두 살배기 딸 캐런을 암으로 잃고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 들어가 제미니8호 선장으로 아제나 위성과 최초로 우주 도킹에 성공하면서 점차 달로 향하는 잰걸음을 옮기는 과정이 영화의 주요 플롯이다.

하지만 영화는 닐 암스트롱은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 마주한다. 아이를 잃은 뒤 오랫동안 슬픔에 방황하고, 함께 우주 개척을 준비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채 공포를 느끼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냉전 시기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던 이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 내의 비판적 여론도 가감 없이 전달한다. 흑인들이 “우리는 빵이 없어 굶는데, 백인들은 달에 가려 하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반대시위를 하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다. 암스트롱은 개인적 비극과 동료들의 잇따른 죽음에 고뇌하면서도 ‘최초의 달 착륙’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는 무중력 상태를 유영하는 우주인들의 낭만이나 시공간을 넘어설 정도로 탁 트인 우주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인 우주선 조종석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불안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으로 계기판을 응시하는 암스트롱의 얼굴을 지극히 세밀하게 훑어낸다. 관객은 그 표정만으로도 우주 개척의 신화를 써 내려 간 암스트롱이 겪었을 심리적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퍼스트맨>은 다른 우주영화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관객에게 ‘관람’을 넘어선 ‘체험’을 제공한다. 암스트롱의 1인칭 시점에서 핸즈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16mm 필름은 시종일관 관객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속에 놓인 듯 느끼게 한다. 뜨거운 열기와 온몸을 뒤흔드는 속도감과 굉음, 좁은 우주선 안의 폐쇄감 때문에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힌다. 4DX로 관람할 경우, 멀미를 각오해야 할 정도다.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퍼스트맨>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셔젤 감독의 전작들이 모두 ‘음악’에 기반한 영화이기에 <퍼스트맨>에서도 탁월한 음악 효과를 기대하는 관객도 많을 터다. 음악감독이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저스틴 허위츠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퍼스트맨>은 러닝타임 내내 튀는 음악을 극도로 자제한다. 다만, 왈츠풍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제미니8호가 아제나 위성과 도킹에 성공하는 장면은 춤을 추듯 멋진 앙상블을 뽐낸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달 착륙 장면이다. 천신만고 끝에 달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은 마치 정지화면인듯 한 동안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관객도 무중력 상태의 달에 함께 선 듯 희열이 느껴진다. 64mm 초고화질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이 장면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광활한 우주와 달 표면의 분화구는 찬사와 황홀경의 감탄사를 뽑아내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암스트롱의 명언은 경외심을 넘어 숭고미마저 느끼게 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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