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먼저 개봉한 <물괴>의 뒤를 쫓아 <안시성>, <명당>, <협상>이 오는 19일 일제히 추석 관객 사냥을 시작한다. <물괴>를 포함한 네 편의 손익분기점을 모두 더하면 1500만명 규모로, 영화계에서 예측하는 추석 박스오피스 규모 1300만명을 넘어선다. “결국 제 살 깎기 경쟁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한 판 승부만이 남아 있다.
무얼 볼지 고민된다면 <한겨레> 문화부 기자 3인방이 ‘사심 가득한 추석 영화 추천기’를 선사하니 끌리는 대로 골라보시라. 단, 보고 나서 “속았다”고 항의해도 푯값은 못 돌려드린다.
①<안시성>: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안시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안시성주 양만춘(조인성)이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성민들과 함께 당 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대군에 맞선 88일간의 사투를 그린다.
②<명당>: 땅의 기운이 인간의 운명을 바꾼다고 믿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천하명당을 차지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려는 이들의 암투. 왕이 날 터로 부친의 묘를 이장한 흥선대원군의 일화에 살을 붙였다.
③<협상>: 올 추석 유일한 현대극이다. 타이에서 경찰과 기자의 납치극을 벌인 무기밀매업자 민태구(현빈)와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협상가 하채윤(손예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뼈대로 한다.
간지 좔좔 전투신에 ‘국뽕’ 한사발 추가요!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극 중 양만춘(조인성)의 대사처럼 <안시성>은 사활을 건 추석 대전에서 절대 물러서지도, 무릎 꿇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5억짜리 사극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안시성>은 그 포문을 여는 10분 남짓의 주필산 전투신부터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한다. ‘반복되는 전투신이 지루하지 않겠냐’는 걱정은 날려버려도 좋다. 7만평 부지에 구현한 11m 수직성벽, 180m 길이 안시성 세트, 공성탑과 투석기, 장대한 토산 전투까지 할리우드 씹어먹는 볼거리에 입이 떡 벌어질 테니 침 닦을 준비 하길. 특히 초당 1000프레임으로 찍었다는 ‘시그니처 액션신’에 이르면 영화 <300>(2014)이 겹쳐지며 “고구려의 전쟁신을 이토록 스타일리시하게 뽑아내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터진다.
추수지(배성우), 파소(엄태구), 풍(박병은), 활보(오대환)와 안시성민이 그려내는 ‘감동 드라마’엔 알면서도 속수무책 당한다. 연개소문의 밀명으로 잠입한 사물(남주혁)이 양만춘에 동화돼 가는 스토리도 뻔하지만 나름의 설득력을 보여준다. 조인성은 이세민(박성웅)이나 연개소문(유오성)이 내뿜는 전형적 ‘장군 포스’를 내려놓고 인간다움과 사려깊음으로 무장한 새로운 양만춘을 연기해냈다. 감독의 “젊은 사극” 전략이 조인성의 화살에 실려 과녁을 명중할 듯하다.
<안시성>은 ‘고구려판 <명량>’이라 할 만큼 ‘국뽕’을 세숫대야로 들이붓는다. 하지만 뭐 어떠랴. 5천 군사로 당나라 20만 대군을 물리친 동아시아 최고의 전투 아닌가. “(조)인성교도들이여! 고증 논란은 접어두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즉시 자랑스러운 고구려 역사를 검색하며 뿌듯해할지어다. 아멘!”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114분 후딱 ‘손예진+현빈’ 조합인데 뭔들
사실 영화 <협상>이 완성도가 뛰어나다거나 영화를 보는 내내 좌석 손잡이를 긁어댈 만큼 긴장감 넘치는 작품은 아니다. 주연 배우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종이인형처럼 납작하고, 난데없이 협상장으로 끌려온 손예진에게 20초만 설명해도 될 상황을 전혀 알려주지 않고 꽁꽁 숨기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가방 속에 사이다를 넣어오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이런 영화 초반의 어수선함을 수습하면서 114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야무지게 들었다 놨다 꼬았다 폈다 하는 건 물론 두 주인공이다. 믿고보는 여배우지만 전작 드라마의 여파로 혹시나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가 책상을 쾅 내리치며 “넌 나쁜 놈, 난 협상가야!”라고 사랑스럽게 외치는 대재난의 풍경을 보게되는 건 아닐까, 잠시 했던 우려를 손예진은 역시나 가볍게 털어버린다. (남성) 권력자들의 꿍꿍이 속에서 ‘소외된’ (여성) 협상가로 남기를 거부하고 “모든 권한을 나에게 넘기라”고 서늘하게 외치는 장면에선 사이다를 넘어서는 어떤 뭉클함이 느껴진다.
인질범으로 나오는 현빈은 마지막 장면을 빼고는 시종 밀실에서 모니터를 보고 연기한다. 연극적인 공간에서 과해질 법한데 물흐르듯 편하다. 마지막까지 악당이 될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사연(기구한 사연의 제국 JK 필름 제작!!!) 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악랄한 냉혈한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잘 모르겠는 악당이다. 그래서 더 바짝 앉아 지켜보게 된다. 화면 속으로 들어가 손예진을 밀치고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끌어안고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어진다. 역시, 현빈이어서 그런거겠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난해한 복선 없이 딱! 온가족 둘러보기에 딱!
어느 것을 볼까, 고민하기 전에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라는 걸 먼저 떠올리길. 추석의 의미가 무엇인가. 모처럼 가족애를 ‘뿜뿜’하는 날이다. 당근 온 가족 함께 봐도 좋을 영화가 안성맞춤이다. 물론, <안시성>도 12세 관람가다. 하지만 <명당>은 동아시아 전쟁보다는 부동산 광풍인 작금의 현실과 직접 맞닿은 여운이 건설적인(?) 토론의 장도 제공한다.
바른 말을 하다 화를 당한 지관 박재관(조승우), 힘 없는 왕 헌종(이원근)의 뒤에서 사실상 나라를 통치하는 장동 김씨 세력(백윤식), 권력을 차지하려고 가족도 배신하는 등 묵직한 메시지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스터 션샤인>의 의병들이 요즘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명당> 역시 왕을 지키려고 자신을 희생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에 잠시 먹먹해진다. 역사적 ‘명당’도 히든카드다. ‘효명세자’릉 등 실제 모습을 재현한 4~5개의 능터와 화엄사에서 촬영한 마지막 가야사 장면도 <명당> 만의 ‘명당’이다.
‘사심 가득 추천’하는데도 아쉬움은 곳곳에 보인다. 이야기 구성이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촐랑이는 자와 점잖은 자가 2인 1조로 움직이는 요즘 사극의 기본 조합에, 이들을 돕는 매력적인 기생도 익숙하다. 흥선(지성)을 둘러싼 복선을 그리 쉽게 드러내는 걸 보면 과연 12세 관람가구나 싶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풀어낸 것이 오히려 힘이 될 수도 있다. 흥미로운 소재를 그저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아쉬움도 녹여주는 ‘연기의 명당’ 조승우가 있지않은가. “제목 때문에 땅에 대한 주제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메시지는 ‘인간이 가지지 말아야 할 욕망들'이다.” 말도 잘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