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두 주인공 엥겔스(왼쪽)과 마르크스(오른쪽)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던 20대 시절을 다룬다.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낮부터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토론을 벌이던 20대 청년 둘이 파리의 뒷골목에서 진탕 취해서 서로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갑자기 한 사람이 뭔가 깨달은듯이 말을 꺼낸다. “자네 덕분에 뭔가 이해하게 된 거 같아.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는 세계를 변혁해야 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인용한 이 말은 아마도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 다음으로 유명한 카를 마르크스의 말일 것이다. 연도를 따져보면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두 문장 모두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두 사람이 20대일 때 나왔다는 것이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예니 마르크스(왼쪽), 카를 마르크스(가운데), 프리드리히 엥겔스(오른쪽)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던 20대 시절을 다룬다.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동안 이념적 상징으로서 존재감이 컸던 나머지 그동안 그들을 인간으로서, 특히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은 어땠을까. 이들이 아직 과학적 공산주의라는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기 이전에, 아직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이 끔찍한 현실을 뒤엎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만큼은 가득한 20대 시절 말이다. 아이티 출신 영화감독이자 정치운동가인 라울 펙(65)이 영화 <청년 마르크스>(2017)에서 주목하는 시기는 이 때다. 영화는 마르크스 부부가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을 떠나 파리로 망명하는 1843년부터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는 48년까지의 5년간을 다룬다.
영화에서 마르크스는 언론인이자 노동운동가, 정치범이자 난민이었던 면모가 부각된다. 공산주의라는 위험한 사상을 전파하고, 제국들을 서슴없이 비판했던 그는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추방당해야 했다. 동시에 두 아이와 아내, 하녀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을 걸머진 아버지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추방돼 벨기에 브뤼셀로 간 그는 우체국을 찾아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달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악명높은 악필 때문에 취업을 거절당하고 발길을 되돌린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두 주인공 엥겔스(왼쪽)과 마르크스(오른쪽)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던 20대 시절을 다룬다.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동안 마르크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엥겔스는 이 영화에선 마르크스와 ‘브로맨스’ 관계를 형성하며 어떤 점에선 마르크스 보다 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타도의 대상이라 생각하는 자본가를 아버지로 둔 모순적인 상황에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그 상황을 극복해내고야 마는 사람으로. 누구도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고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담은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이란 걸작을 25살의 나이에 써낸 실천적 지식인으로 부각된다.
이 영화의 중요한 기여는 예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연인 메리 번즈를 마르크스와 엥겔스만큼 중요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예니는 제국 프로이센의 도시 트리어의 귀족인 베스트팔렌 가문 사람이다. 예니가 하인이 딸린 저택 생활을 버리고 온데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엥겔스에게, 예니는 자신 또한 혁명가로서 주체적으로 이 삶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난 끔직한 권태에서 도망쳤어요. 행복을 위해선 저항이 필요해요. 기존 질서와 구세계에 대한 저항이요. 구세계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군요.”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예니 마르크스(왼쪽)과 엥겔스(오른쪽),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던 20대 시절을 다룬다.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펙 감독은 영국의 진보언론인 <인디펜던트>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지금 일어나는 일에 저항하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들과 같은 혁명가들이 더는 필요없는 시대인가?”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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