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는 인물 설정부터 이야기 전개까지 관객의 기대와 예상을 저버리는데도 화가 나기는커녕 통쾌감을 주는 게 매력이다. 감독이 관객과의 대결에서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우선 피해자는 순수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통념이 이 영화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뛰어난 연기로 형상화된 주인공 밀드레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괴팍하며 가늠하기 힘든 인물이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죽은 딸에 대한 복수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이 사람은 간혹 자기 상처를 직진으로 헤집고 들어오는 전남편과 같은 상대를 만날 때면 그냥 허물어져 버릴 만큼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오뚝이처럼 전의를 회복해 막무가내로 범인 색출이라는 임무를 향해 돌진한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대단한 기운이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우리가 본받고 싶은 영웅은 아니다. 밀드레드의 어깃장은 매번 실패하며 그가 공격의 주목표로 삼았던 같은 동네의 월러비 경찰서장은 시한부 인생을 앞당겨 자살한다. 월러비 서장을 비난하기 위해 밀드레드가 돈을 주고 세웠던 광고판이 불타자 밀드레드는 경찰의 짓인 줄 지레짐작하고 경찰서를 향해 화염병을 던진다. 경찰서 방화 용의자로 몰리지 않게 알리바이를 대준 이웃 난쟁이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인 밀드레드는 그와의 저녁 식사에서 그에게 노골적으로 모욕감을 준다. 월러비의 충실한 부하 경찰관이지만 무능한 편견 덩어리인 인종주의자 딕슨은 그런 밀드레드와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늘 밀드레드에게 기세가 밀린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밀드레드를 축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말들이 쏟아지고 예측하기 힘든 그들의 행동이 쏟아지면서 <쓰리 빌보드>는 단순하고 직선적인 복수극의 궤에서 벗어나 결함 많은 인간들이 더 큰 중죄를 저지른 누군가를 단죄하러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법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범죄를 사적 복수의 동기를 갖고 집행하러 나섰던 주인공은 이제 사적 동기와는 무관하게 죄 그 자체를 묻는 정의의 명분을 실행하기 위해 한때 앙숙이었던 사람과 친구가 된다. 증오와 대립의 이야기 구도가 연대와 책임의 결말로 절묘하게 전이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때까지 결함 많고 모순 덩어리였던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실컷 보게 된다. 그들은 일관되게 순결하거나 정의로운 게 아니며 동시에 간혹 악행을 저지르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그들 자신을 방치한다. 한마디로 선과 악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인간들이다. 주인공 밀드레드를 비롯한 영화 속 대다수 인물들은 그 과정에서 그들 인생에서 가장 선한 단계에 도달한다. 나름대로 진화하는 것이다. 영웅주의를 배격하면서도 인간이 때로 특출할 수 있다는 이 영화의 인간 관찰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평론가·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