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감독이 동료 감독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들이 속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내에서 조직적인 은폐시도와 고소 취하 요구 등 ‘2차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사건을 처음 인지한 책임교수 ㄱ씨가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제대로 취하지 않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영진위의 말에 따르면, ㄱ교수는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부적절한 언사를 했다. 또 재판이 시작되자, 이 감독 쪽 증인으로 출석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활용될 수도 있는 증언을 했다. 아카데미 원장인 ㄴ씨 역시 성폭행 사건과 고소사실을 알고도 상급기관인 영진위에 알리지 않고, 피해자 보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어 이 감독의 졸업작품을 아카데미 차원에서 지원·홍보함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 감독은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영화 <연애담>으로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행정직 직원들 역시 이 감독에게 재판에 쓰일 사실확인서를 작성해주고 나서 윗선에 보고하지 않는 등 보고체계도 전혀 작동하지 않아 사건이 장기간 은폐된 것으로 조사됐다. 영진위는 사건을 보고받지 못한 탓에 판결 선고가 난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이번 조사결과는 당초 피해자가 에스엔에스를 통해 주장한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 감독은 이 사건으로 인해 지난해 이미 대법원에서 준유사강간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피해자의 폭로 뒤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영진위는 조사결과를 감사팀에 통보하고 관련자들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절차를 밟기로 했다. 영진위는 “지난 16일 오석근 위원장이 피해자에게 조사결과를 알리면서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전했다”며 “아카데미 내부 운영체계를 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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