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빛나는>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
“영화는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관객들이 이걸 먹었을 때 배부르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신작 <빛나는>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다섯번째 칸국제영화제 진출작이기도 한 영화는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음성 해설 대본을 만드는 초보 작가의 사랑 이야기다.
13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빛과 시각장애인을 소재로 택한 이유를 “영화에 대한 사랑”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감상은 눈으로 영화를 보는 행위로 시작되지만,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감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음성 해설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영화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음성 해설 대본을 만드는 주인공 미사코는 시각장애인들이 볼 수 없는 영화 장면을 처음엔 장황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곧 그는 자세한 설명을 줄여나간다. 말이 너무 많으면 영화를 귀로만 듣는 관객에게 느낌을 강요하게 된다는 조언을 받기 때문이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실제 시각장애인이 영화에 나온다. 그중에 한 분이 촬영 현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정말 그 영화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인공 옆에서 그 영화 속의 세계를 삽니다. 그러니 말로 세계를 작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거기서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화 <빛나는>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가 가진 치유의 힘을 보여주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받아들이고 있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은 이전에도 수다스럽지 않았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등 작품들 모두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적셨다. “영화 안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면 과잉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너무 말을 죽이면 그것도 안 돼죠.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운 일이에요.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의 신뢰관계 형성도 중요하고요. 영화를 빼고서라도 사람과 사람의 신뢰관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든 영화마다 치유의 감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건 그 역시 살아오면서 많은 상처를 받아서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자 떠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그는 “가족은 굉장히 오랫동안 제 인생에서 빠지고 소외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겐 <빛나는>이 빈 곳을 채워주는 작품이었다. 실제의 인생이 고통스럽더라도 영화를 통해서 치유하고, 상처를 덮고 가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빛나는>을 보는 관객들이 제목처럼 아름다운 ‘빛’을 세상에 던져주길 바란다”고 말하는 그의 차기작은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함께 만들고 있는 <비전>이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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