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낭트 다녀온 위안부 피해자 만화 ‘풀’

등록 2017-06-14 14:41수정 2017-06-14 20:57

장편만화 ‘풀’ 김금숙 작가 인터뷰
서울 공항동 자택 작업실의 김금숙 작가. 벽에 위안부 만화 <풀> 작업 노트와 그녀의 어린시절을 그린 <꼬깽이> 캐릭터가 보인다. 사진 구둘래 기자
서울 공항동 자택 작업실의 김금숙 작가. 벽에 위안부 만화 <풀> 작업 노트와 그녀의 어린시절을 그린 <꼬깽이> 캐릭터가 보인다. 사진 구둘래 기자
까맣게 칠해진 페이지가 연잇는다. 검은 페이지 끝, 목 아래가 어둠 속에 잠긴 여자가 등장한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하다. 김금숙 작가가 8월 발간 예정인 <풀>(보리출판사)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만화다. 원화는 프랑스 낭트에서 5월19~28일 열린 ‘제5회 한국의 봄’에 전시되었다. 2013년 시작한 이 행사는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주요 축제로 그동안 판소리 공연 등이 펼쳐졌는데, 만화가 초대된 것은 김 작가의 <풀>이 처음이다. 만화는 2016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문화체육관광부 ‘스토리 투 웹툰 지원사업’ 선정작이자 2016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전시회 참가 뒤 한국에 돌아온 김 작가를 7일 서울 공항동 작가의 집에서 만났다.

“여성들을 ‘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풀’이 떠오르더라.” 제목으로 ‘풀’을 정하고는 김수영의 시 ‘풀’도 알게 되었다.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김수영이 떠올렸던 이미지는 그대로 위안부 할머니의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삶이었다.

<풀>은 단편 ‘비밀’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 프랑스 최고의 만화축제 앙굴렘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한 만화전시 ‘지지 않는 꽃’에 참가하려고 급하게 만든 단편이다. “위안부 피해자 구술집을 읽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일본인한테 꽃신하고 예쁜 옷을 받고는 새벽에 따라나섰다고 하더라. 그렇게 떠난 길이 못 올 길이 됐다.” 작업이 급해 정작 그 할머니는 뵙지 못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위안부 사연을 그린 장편 만화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쉬움도 내내 그를 붙잡았다. “천상 내가 해야 되나, 그래 하자” 결심하고 이듬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머무르는 나눔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옥선 할머니가 <풀>의 주인공 옥희가 되었다.

지난해 90이 된 이 할머니는 재기가 넘쳤다. 김 작가가 오랜만에 들른 나눔의 집에 아이 신발이 놓여 있길래 궁금해했더니 하는 농담이 “니가 안 오는 새 하나 낳았다”였다. 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진 않았다. 인터뷰를 하면 “‘아베한테 사과를 받아야 해’라는 언론에 하는 말”만 했다. 할머니가 대화를 튼 건, 그가 가져다준 <꼬깽이>를 보고 나서였다. <꼬깽이>는 가난한 시골과 달동네에서 보낸 김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전적 만화다. 이 할머니도 일본군 이전에, “묻어놓은 씨까지 파헤쳐간 지주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공감대를 만들어준 셈이다. 그래서 <풀>에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우동집으로 팔려갔다 다시 일본군에 팔려 기차를 타고 만주로 끌려가는 할머니의 사연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작가도 등장한다. 박제된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서다. 폭력적 사건을 묘사할 때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먹지가 계속되고 목이 잘린 듯한 얼굴로 그려지는 장면은 옥희가 위안소에서 처음으로 남자를 받을 때 등장한다. 다른 폭력적인 사건들도 손의 모양이나 주변의 사물 묘사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다. 무엇보다 “극적인 이야기를 모아 과장하지 않았다. 사건의 감정, 인간적인 측면에서 다가가려” 해서다. 이렇게 완성된 만화는 500쪽에 이른다.

<풀>. 보리출판사 제공
<풀>. 보리출판사 제공
김 작가는 프랑스에 한국 만화를 알린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4년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조각을 배웠다. 졸업 뒤 먹고살려고 본격적으로 조각을 하려니 재료가 너무 비쌌다. 고민 끝에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린 만화 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갔더니, “창작만화는 필요없다”며 번역 일을 소개했다. 1990년대 말 일본 망가가 프랑스에 폭발적으로 보급되는 틈에 한국 만화도 조금씩 소개되던 때였다. “많을 때는 한 달에 2권도 했죠. 100권을 넘고는 세지도 않았아요.” 번역을 하면서 한국 만화에 눈을 떴다. 최호철의 <태일이>를 추천해서 번역하고, 이희재의 <간판스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를 번역하면서 “진짜 만화가가 되어야지” 하는 ‘직업의식’이 싹텄다. “만화로는 세상의 별별 이야기를 다할 수 있다. 요란한 테크닉 없어도 된다. 소재, 내용, 그림 스타일 모두 열려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2006년 다른 출판사에 한 투고를 시작으로 서예붓으로 그림의 강약을 조절하는 화풍을 확립해갔다. 2010년 겨울 한국으로 돌아와 만화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꼬깽이>를 연재하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의 만화화 작업을 했고, 동화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우리 엄마 강금순> 그림을 그렸다. <춘향가>, <흥보가> 등 판소리 네 마당을 만화로 옮기기도 했다. 그 사이 프랑스에서 2012년 발간한 <아버지의 노래>는 몽펠리에 만화 페스티벌에서 ‘문화계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언론상’을 수상했다. <아버지의 노래>는 원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지만, 한국에 와서는 화선지에 다시 그리고 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맨처음 한 일은 판소리를 배우는 것이었다. ‘흥보가’ 한마당을 뗄 정도로 집중했다. <꼬깽이>에도 나오듯 아버지는 동네 소리꾼이었다. 상여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쫓아가면서 그 소리를 들었다. “판소리랑 그림이 참 비슷하다. 건성으로 하면 안 된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한쪽 벽에 서예붓이 나란히 매달린 작업실, 김 작가는 항상 선 채로 작업을 한다. 한국을 떠날 때는 “한국에서 여자로 살면 내 꿈을 버리고 희생을 해야 한다. 제대로 인간 대접을 못 받고 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여성들과의 대화가 그의 직업이 되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1.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2.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김수미 추모하며…‘일용 엄니’ 다시 방송에서 만납니다 3.

김수미 추모하며…‘일용 엄니’ 다시 방송에서 만납니다

자동차극장 알바 출신, 문 닫던 영화관 17곳 살려낸 비법 4.

자동차극장 알바 출신, 문 닫던 영화관 17곳 살려낸 비법

셰프들도 김수미 추모…“음식 나누고 베푼 요리 연구가” 5.

셰프들도 김수미 추모…“음식 나누고 베푼 요리 연구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