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로 평가받는 이는 이란에 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다. 네 번째 장편영화 <어바웃 엘리>(2009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 영화제의 인정이 이어졌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년)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남우주연상·황금곰상과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년)는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1일 개봉하는 <세일즈맨>은 그 이야기꾼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칸영화제 각본상·남우주연상 그리고 두 번째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는 교사이면서 연극연출가다. 자신과 아내 라나(타라네 알리두스티)가 부부로 나오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살던 집의 건물이 무너져내리면서 다른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연극 동료 바바크(바바크 카리미)가 곧바로 입주가 가능한 집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웬일로 재수가 좋군.” 집을 구경하면서 에마드는 말한다. 하지만 전 세입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통에 그가 남겨놓은 짐 위에 이사를 하는 어수선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사 얼마 뒤엔 샤워를 하던 라나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는 <세일즈맨의 죽음> 무대 장면을 이야기 흐름과 병치한다. 연극의 매춘부 장면에 이어 영화에서 세입자가 ‘문란한 여성’임을 밝히는 식이다. 감독은 “영화와 연극이 ‘경멸’과 ‘굴욕’이라는 주제를 거울처럼 비춘다”고 말한다. 연극에서 ‘세일즈맨’ 윌리는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에 굴욕감을 느낀다. 여기에 젊은 시절의 죄과가 함께 덮친다. 영화에서 ‘세일즈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다. 관객의 궁금증을 짐짓 모른 체하면서 이야기의 가지를 뻗고 그 가지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파르하디의 장기가 여기서도 진면목을 드러낸다.
에마드는 ‘현대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 현대성은 ‘미국적’이다. 학교의 인기 있는 선생이자, 이웃 사람들에게 친절한 그는 라나의 사건 해결에 나서지만 라나의 아픔에는 무관심하다. 라나는 “지옥을 겪는 동안 당신은 뭐했어?”라고 분노한다. 에마드는 연민이 아니라 ‘증오심’으로 움직인다. 에마드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바바크에게 말한다. “싹 쓸어버린 다음에 다시 짓든지 해야지.” 영화는 연극 무대에 ‘시카고 볼링장’의 네온사인을 세우는 장면, 즉 미국이라는 무대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파르하디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을 때 쓴 편지에서 “나는 이 지구의 인류와 다양한 땅, 그리고 문화와 신앙 사이의 유사점이 차이점보다 훨씬 크다고 믿는다”고 말한 그대로다. 현대 이란은 미국 자본주의를 닮았다. 편지의 앞쪽은 이랬다. “(미국과 이란) 양쪽 강경파들은 차이를 의견의 불일치로, 불일치를 적대감으로, 적대감을 공포심으로 바꾸기 위해 여러 국가와 문화의 비현실적이고 무서운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 ‘테러 위험국’ 이란에 평범한 사람이 살고 있다. ‘셰에라자드의 후예’가 이야기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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