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원래는 노무현의 거짓말을 다루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판사 시절 예비군 동원 훈련 일화를 들으며 했던 첫 구상이다. 판사나 검사들이 예비군 훈련 통지를 받으면 다 함께 훈련장으로 가서 불참 통보를 하고 돌아오는 게 당시의 관습이었는데 당시 노무현 판사는 돌아가는 버스에 타지 않았다. 계장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일주일간 훈련을 모두 받았다. 이후로도 그런 판검사는 없었다고 한다. “거짓에 대한 결벽증이 이후로도 정치적 행위에 대한 해석의 단서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만들면서 이창재 감독의 여정은 여러번 노선이 바뀌었다. 노선 변경 자체가 ‘노무현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단초다. <사이에서> <길 위에서> 등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여온 이 감독을 29일 전주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시사 다음날 만났다.

영화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 경선으로 대선주자가 되는 과정을 다룬다. 정치 거물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열고 자주 등장하는 이들은 조금은 ‘보통의’ 사람들이다. 노무현 변호사를 정찰했던 이화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 변호사 시절부터의 운전사 노수현씨, 부림사건 고문 피해자 고호석씨 등의 주변 인물들과 명계남 배우를 비롯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도 증언한다. 안희정 충남지사, 유시민 작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등 동지들도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영화를 위해 1000분 분량의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에 비해 경선 자료 화면은 영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당시 워낙 약체 후보였고 아무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아서였다. 경선 초기 신문에 한 줄 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됐다. 방송사 자료뿐 아니라 민주당의 자료들도 대부분 사라졌고 가까스로 건진 연설 장면들은 상태가 나빴다. 그것들을 복원하고 손질하는 후반작업에만 한달 넘게 걸렸다.

경선 자료 복원 작업만 한달
1000분 분량의 인터뷰 진행했으나
눈물의 인터뷰, 편집 불가능할 정도
이 감독 “마음껏 울지 못한 빚 남아”

투자도 요동쳤다. 준비를 시작한 게 4년 전인데 투자자들은 기획안을 듣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금 분위기 파악 못하시는 것 같다” “회사가 흔들린다”는 말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해 궁색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고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 같았다. 제작 가능성이 열린 것은 지난해 4월13일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끝나고서였다.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최낙용 피디로부터 추진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 열흘 뒤 지금의 제작사(헤드플레이)에서 4년 전 프로젝트의 투자가 완료됐느냐는 전화를 했고, 부랴부랴 기획안이 완성됐다. 전주영화제의 독립·예술영화 투자 프로젝트인 제이시피(JCP)에도 마감 턱걸이로 선정되었다.

영화제 제출 기획안은 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선과 퇴임을 상승과 하강으로 대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3시간이 넘는 분량이었다. 1, 2부로 제작하자는 제안도 했지만 프로듀서가 “일단은 1편을 성공을 해야 2편이 나오는 거다”라고 조언해 ‘하강’ 국면을 잠정 포기했다.

‘거짓말’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겠다는 애초의 의도도 주변인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그것은 오각형의 한 꼭짓점밖에 되지 않았다. 공직자의 모습, 배려하고 자애로운 모습, 인간에 대한 예의, 원칙에 대한 소신 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29일 시사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손을 뻗어 말을 내뱉는 첫 자료화면부터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경선의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깔리는 흥겨운 음악과 관객의 흐느낌이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뤘다. 감독은 “상영 때 음량이 조절이 잘 안 돼 가라앉은 사운드로 보았는데 원래는 훨씬 더 신난다”고 말한다. <곡성> <마스터>의 음악작업을 했던 장영규가 음악감독을 맡아 이 감독의 요청에 따라 액션영화 <매드맥스>풍의 음악을 만들었다. “당시의 열정과 광기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어서”다.

음악이 아니어도 신나게 하려는 의도는 실패한 것 같다. 웃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난다. 30분 무렵에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는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인터뷰이들이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에 편집이 힘들었다. 이 감독은 “애도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세월호가 세월이 지났어도 수습이 안 되었기에 세월호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국민장을 했지만 ‘수습’을 강요당했다. 한번도 마음껏 울어보지 못한 빚이 남았다.” 그래서 이 감독의 바람은 이 영화를 통해 마음껏 울게 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프리미어 시사 때 울었다. 걸작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다.” 25일 개봉.

전주/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