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다큐 ‘마지막 편지’ 제작한 닐스 클라우스 감독
2009년 봄, 그는 무작정 <한겨레>를 찾아왔다. 중앙대 영상대학원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의 재개발 지역 강제철거 현장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소개하는 전시회 <추크츠방>(강압적인 이동) 홍보를 하러 왔었다. 그로부터 꼬박 8년 만인 지난주, 그는 세월호에 관한 새 작품을 들고 신문사를 찾아왔다.
“잊지 않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같지만 다릅니다. 더구나 끔찍한 참사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잊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도 합니다. 사고 원인이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다큐멘터리는 여럿 나와 있는 만큼 저는 ‘상실·공간·기억’의 여정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독일 출신 영상예술가 닐스 클라우스(41·사진)가 보여준 작품은 다큐 <마지막 편지>(Last Letters·vimeo.com/195284427)다. 지난 1년간 제작했다고 한다.
그사이 한국인 부인과 결혼한 그는 두 딸을 둔 어엿한 가장으로 한국에 정착해 있었다.
독일 출신 한국 정착한 영상예술가
이방인 시각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참사 다큐는 많아 가족 정서 주목” 8가족 찾아 ‘가족사진 빈자리’ 촬영
“슬픔 넘어 제대로 기억되길 기대”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열더니 <마지막 편지>부터 보여줬다. 불과 7분짜리 초단편이었다. 단원고 학생을 떠올리게 하는, 교복을 입은 남녀 청소년의 영상 이미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얼굴은 노란색 마스크로 가려져 있다. “학생 2명과 아버지, 세월호 인턴 역으로 모두 4명의 배우를 캐스팅했어요. 사실만 기록하는 다큐가 아니고 픽션을 가미한 영화니까요.”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실제 세월호 가족들이다. 지난해 2월 제작을 결정한 뒤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여러번 찾아가 유가족들에게 허락과 협조를 구했다. 여러 가족을 추천받았지만, 집을 공개하고 한 가족 구성원이 모두 등장해야 하는 구상이어서 섭외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동의를 하고 인터뷰 약속을 하고도 갑자기 취소한 사례도 있었다. 그동안 일부 미디어의 왜곡 또는 무지한 보도 탓에 쌓인 불만과 불신도 만만치 않았다. 우여곡절과 기다림 끝에 모두 여덟 가족을 촬영할 수 있었다.
“가족사진 촬영을 통해 유가족이 느끼는 희생자의 빈자리와 이로 인한 상실감 등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가림막과 조명등 스튜디오 장비를 직접 들고 가 거실에서 찍었어요. 다만, 희생자도 같이 찍는 듯 자리를 비워두고 찍었어요. 마찬가지로 희생자의 방이나 책상 같은 빈 공간도 그대로 담았어요.”
수학여행 다녀오면 가족사진을 찍으려 했다는 한 단원고 가족은, 어릴 때 한복 입은 아이와 찍었던 마지막 가족사진과 나란히 대비되며 ‘부재’를 실감하게 했다. 또 일반인 희생자의 아들은 “살아 계실 때 아버지 손을 못 잡아드린 게 너무 후회된다”며 뒤늦게나마 부자의 정을 전했다.
“유족들과 한번에 30분 정도씩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매번 참사의 고통과 가족들의 깊은 슬픔을 마주해야 했어요. 가족들도 제작진도 모두 지쳐서 한참씩 쉬어야 했어요. 하지만 가족들이 눈물을 쏟는 모습은 찍지 않았어요. 혹여 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한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거든요. 대신 가족들의 내레이션 목소리는 편집 없이 그대로 넣었어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그 자체로 충격이었지만, ‘이방인’인 그의 눈에는 점차 유가족들이 진실을 찾아 광장으로 나서고 시민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등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가 다르게 들어왔다. “진실을 찾는 다큐가 저널리스트의 몫이라면, 저는 영상예술가로서 남겨진 가족들에게 두고두고 보면서 추억할 수 있는 시적인 영상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독일 에젠스(esens)의 건축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미국·홍콩·오스트레일리아 등을 돌며 시각예술을 공부하던 2005년 멜버른국제영화제에서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해말 서울에 온 그는 고려대·경희대 한국어 과정에 이어 중앙대 대학원에서 영화 촬영을 전공한 뒤 ‘공간과 건축’을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했고 여러 수상 경력도 쌓아왔다.
<마지막 편지>도 온라인 영화제 ‘이 주의 단편영화’(Short of the Week) 부문에 출품했고, 3월 초 미국 뉴욕의 영상 컨소시엄에서 비공개 시사회도 열었다. “‘마지막 편지’는 한국 관련 3부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공간과 기억에 대해서 묘사하고 사회, 정치, 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인데요, <비키니 워드>(Bikini Words)에 이어 <플라스틱 걸스>(Plastic Girls)를 마무리 중입니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 세월호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사회에 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작으나마 힘을 보탤 작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닐스 클라우스.
단편영화 <마지막 편지> 가운데 단원고 희생 학생 역의 배우들.
이방인 시각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참사 다큐는 많아 가족 정서 주목” 8가족 찾아 ‘가족사진 빈자리’ 촬영
“슬픔 넘어 제대로 기억되길 기대”
단편영화 <마지막 편지>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의 빈자리 가족사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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