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사진) 선생이 8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살.
고인은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연출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단 한 작품을 연출한 뒤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여성 영화감독의 등장은 남성 중심의 한국 영화계에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망인’은 사회 문제이던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 문제를 다루며,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에 선 여성의 성적 욕망 등을 다뤄 주목받았다. 여자 감독 영화라는 이유로 극장을 잡지 못했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직접 업고 촬영하는 등 여성한테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그 단 한편의 시작이 임순례 감독 등 수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에 물꼬를 마련했다.
1955년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 <미망인> 촬영현장에 아이를 업고 나온 박남옥 감독.
1923년 경북 경산시 하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전 가정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대구 <매일신문> 기자로 일하며 영화평을 썼다. 22살 때 윤용균 감독의 소개로 1945년 옛 조선영화사 촬영소에 들어가 <민족의 새벽> <똘똘이의 모험> 등에서 편집일을 하다가,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를 계기로 스크립터로 분야를 바꿨다. ‘미망인’은 극작가였던 남편 이보라 작가가 쓴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이후 영화 월간지 <시네마 팬>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 미국에 정착해 남은 생을 보냈다.
사단법인 여성영화인 모임은 2001년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에서 고인의 인생을 재조명했다. 이 작품에서 고인은 “죽을 만큼 고생했지만 눈물 나도록 그때가 그립다”고 회고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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