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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카데미가 ‘낫소화이트’였다고요?

등록 2017-03-03 21:20수정 2017-03-03 21:32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구둘래 대중문화팀 기자 anyone@hani.co.kr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실수’였습니다. 행사 내내 ‘트럼프 비판’이 완연했지만, 뉴스의 제목은 결국 이 ‘최악의 실수’가 차지해버렸습니다. ‘흑인이 재즈를 구했다’는 <라라랜드>에서 흑인 동성애자의 성장담을 시적 영상으로 구현한 <문라이트>로 작품상이 ‘정정’되었죠. 미국 <더 뉴요커>의 힐튼 알스는 이 ‘정정’의 순간을 ‘흑백이 교차하는 순간’이라고 적었습니다. “상을 받을 때조차도 흑인이 받을 때는 잡음이 많다”면서요. 이 가교 구실을 한 것이 워런 비티라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워런 비티는 미국 대선주자가 흑인 비서와 사랑에 빠지는 정치영화 <불워스>(1998년)의 감독인데, 이 영화가 “로드니 킹(로스앤젤레스 폭동의 단초가 된 사건) 이후 백인의 입장에서 본 흑인영화였다”는군요.

<문라이트>는 감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스태프가 흑인으로 구성되고, 배우도 대부분 흑인인 영화입니다. 90년에 가까운 아카데미의 유구한 역사에서 흑인이 내러티브의 중심이 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2014년 <노예 12년>이 처음이었습니다. <문라이트>의 작품상 수상 뒤 아카데미가 ‘오스카소화이트’(#OscarSoWhite) 비판을 염두에 두고 ‘낫소화이트’로 변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오스카소화이트’는 백인 일색의 후보를 낸 아카데미를 비판하는 해시태그 운동입니다. 2015년 주요 언론이 뽑은 ‘톱10’이었던 마틴 루서 킹 영화 <셀마>가 배우·감독, 어떤 부문에도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활동가 에이프릴 레인이 트위터에서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편향성은 다음해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지난해 록키가 흑인 권투선수를 후계자로 키워낸다는 <록키>의 후속편 <크리드>는 흑인 감독·배우 등을 두고 백인인 실베스터 스탤론만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윌 스미스-제이다 핑킷스미스 부부, 스파이크 리 등은 아카데미 보이콧에 나섰습니다.

아카데미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회장은 셰릴 분 아이작스로 흑인 여성입니다. 세번째 여성 회장이자 첫번째 흑인입니다. 그러니 ‘오스카소화이트’ 해시태그 운동이 무엇보다 곤혹스러웠을 겁니다. 아이작스 회장은 후보작 카드를 받기 전엔 몰랐다면서 “쇄신”을 선언했습니다. 인종적 균형을 맞추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의 이창동 감독, 박찬욱 감독, 김소영 감독, 배우 이병헌 등이 회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이 회원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한국시각 월요일 아침 알려진 바입니다. 2012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아카데미 회원의 94%가 백인, 77%가 남성이었고 평균 나이는 62살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도 아카데미의 인종적 편견에 대한 지적은 여전했습니다. 투어버스 여행객을 돌비극장 안으로 들여보내는 ‘돌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지미 키멀은 동양인 여성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남성이 “패트릭”이라고 하자 “그것이 이름이죠”라는 말을 했습니다. 또한 <문라이트>로 조연상을 수상한 마허셜라 알리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덴절 워싱턴에게 연기를 배웠다”고 말했지만 워싱턴이 전혀 웃지 않았던 장면도 주목받았습니다. 남우주연상을 자신이 받지 못해서는 아닙니다. 백인은 되고 흑인은 안 되냐는 의문을 표했을 겁니다. 케이시 애플렉은 7년 전 성추행 사건이 회자되면서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렸더랬습니다. 반면, 지난해 오스카감이라고 회자되던 <국가의 탄생>의 네이트 파커 감독 겸 주연배우는 과거 성추문이 입방아에 오른 뒤 모든 상의 시상이 불발되었죠. 네이트 파커는 흑인입니다.

<더 뉴요커>의 지아 톨렌티노는 “그들 산업의 불공평함을 감추고 서로 용감하고 진보적인 척 축하해댔다”며 ‘어색한 정치적 풍경’을 자아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카데미 쇼’가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다는 겁니다. 톨렌티노는 “소수민족과 여성은 너무 오랫동안 과소 대표돼왔다. 그래서 어떤 작은 변화에도, 원래 본능이 체제유지적인 인간은 그걸 ‘진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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