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로 <미생> <내부자들>의 윤태호 작가가 한국만화가협회장 직함을 단 지 한달이 되었다. 지난달 14일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협) 정기총회에서 선출됐다. 윤 신임 회장은 사업계획을 다듬으며 지난 한달을 바쁘게 지냈다. 워커홀릭 기질을 버리지 못해서 협회장 일 외에도 신생 출판사 기획물 등 요일을 쪼개 일을 해나간다. 윤 신임 회장을 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래도 2012년보다는 안 바쁘다. 그때는 <미생>을 주 2회 연재하면서 누룩미디어(강풀, 주호민 등이 소속된 만화 콘텐츠 매니지먼트사) 대표를 하고, 대학교 강의를 두번 나가고, 만협이 심의규제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시위를 하러 다녔다.”
만협은 2013년 젊은 작가 200여명이 대거 회원 등록을 하면서 부쩍 젊어졌다. 기존의 친목단체 성격에 젊은 회원들의 “노조처럼 강성한 활동을 보여달라”는 요구가 더해졌고, 빠르게 변화하는 만화 외적인 상황도 주시해야 한다. 윤 회장은 이전 집행부에서 부회장으로서 협회 일을 해왔다. 협회장으로서 주된 일을 묻자 “전임 이충호 회장 사업의 안정화”를 꼽았다. 매년 여름 신인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 ‘웹툰아카데미’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는 ‘한국만화 거장전’ 등이 정기화된 사업들이다.
올해 ‘자율규제위원회’ 활동이 시작된다.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웹툰 규제 강화’에 대한 만화계 대응의 결과물이다. “이전이 방심위가 유통업자에게 제재하는 방식이었다면, 자율규제위 방식에서는 방심위 민원을 만협이 보고받고 플랫폼 담당자·만화가와 의논한다.” 심의·규제와 관련한 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윤 회장이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원로작가와 신진작가들의 인터뷰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창작자로서 신진작가들의 고민을 이미 원로작가는 겪었다. 무엇보다 경험을 들려주면서 원로작가들이 스스로를 발견했으면 한다. 머릿속에 있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른 메커니즘이다. 말을 하면서 스스로를 정리하고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실 거다.”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당부도 있다. “국내에 한정된 인터넷 포털 등의 만화 연재 플랫폼이 중요하긴 한데, 거기에만 매여선 안 된다. 그곳의 반응만이 전부가 아니다. 외국에 가면 작품에 대한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 세계화가 안 된다면, 전세계에 통할 만큼 인간의 보편성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것이다.”
‘세계화’라는 과제 앞에는 표준계약서 문제가 있다. “연재 계약서 안에 수출, 2차 판권 등에 관한 계약이 볼모처럼 들어 있다. 한 계약을 할 때는 하나의 계약만 하는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는데 현실에 맞게 업그레이드 중이다.” 만화 플랫폼의 역할도 고민하고 있다. “매일 어떤 소식을 확인하는 공간인 플랫폼은 ‘저널’로서의 역할이 있다. 상업성만이 아니라 다채로움을 채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세계화’와 ‘보편적인 인간’ 탐구는 만화가 윤태호의 필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오는 4월 1차분이 공개될 ‘오리진’ 시리즈는 ‘교양만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성을 탐구’하는 기획이다. 3년 임기 협회장과 7년 100권 계획인 오리진 시리즈의 출발선상에서 윤 작가는 의외로 여유롭다. “다 일을 나눠줄 거다. 만협 이사회에서 분과에 맞게 일을 나누고, ‘오리진’ 시리즈는 내가 기획을 갖고 시작했지만 출판사의 편집진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쨌든 책이 잘 팔려 돈 빚은 갚았는데 이제는 일 빚이 늘고 있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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