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도쿄와 시골 마을의 타키(왼쪽)와 미츠하는 어느 날 불시에 영혼이 바뀐다. 미디어캐슬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새해 1월4일 개봉한다. 일본에서 올해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19일까지 1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208억엔을 벌어들여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2위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년)을 앞섰다. 역대 1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의 304억엔이다. 한국보다 먼저 개봉한 중국·홍콩·타이·대만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12월2일 개봉해 열흘 만에 1700만명이 보았다. ‘디지털 시대의 섬세한 감성주자’ ‘빛의 마술사’라고 평가받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가 한국의 관객들도 끌어들일 수 있을지 관심사다.
■ SF·재해·로맨스 복합 장르 <너의 이름은.>은 에스에프(SF)로 시작해서 재난극으로 이어지는 ‘복합장르’의 영화지만 일차적으로는 짐짓 ‘로맨스’ 영화인 체한다. 혜성이 천년 만에 지구에 근접하는 어느 날, 시골 마을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는 이상한 꿈을 꾼다. 꿈이 그렇듯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트에는 ‘너의 이름은.’이라고 낯선 글씨가 적혀 있다. 미츠하는 시골 마을이 지겨워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어본다. 그러자 꿈속에서 도쿄의 남자 동급생 타키가 되어 있다. 꿈속인데도 남학생의 일상이 너무나도 리얼하게 펼쳐진다. 곧 둘은 꿈이 아니라 실제로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휴대전화에 메모를 남겨 ‘삶의 규칙’을 정해 가던 둘의 마음은 애틋해져 간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연결이 끊긴다.
미츠하와 타키는 꿈속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의 이름은 뭐였지?’ 몇번을 묻고 답해도, 몇번이나 되뇌어도 잊어버리고 만다. 꿈속에서 연결된 인연은 현실 세계에서도 연결을 이룰 수 있을까. 꿈같은 희망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너의 이름은.>에서 자연재해는 처음에는 아름답게 보인다. 미디어캐슬 제공
■ 그 사람들이 살아 있다면 꿈속의 연인 바깥쪽 현실에선 혜성이 재난으로 돌변한다. 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다. 자연히 2011년의 일본 도호쿠 대지진이 연상된다. 당시 숨진 사람만 1만8천명을 넘어선다. 올해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대지진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들이 살아 있다면 하는 안타까움을 영화에 담았다”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망각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저항하는 인간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감독의 메시지는 일본의 전통예식을 통해 에둘러 표현된다. 미츠하는 미야모토 마을 신사를 지키는 가문의 자손으로 실로 매듭(무스비)을 만들고, 매년 ‘가미사케’를 만드는 의식을 한다. ‘가미사케’는 입속에서 씹은 밥을 발효시켜 만드는 전통주다. 술을 모시는 곳은 천년 전 재해를 당했던 곳이다. 미츠하의 할머니는 말한다. “기록이 없어도 전통은 계속된다.” 어떤 방법으로든 ‘망각에 저항하라’는 것이다.
꿈속에서 영혼이 바뀌었던 미츠하와 타키는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찾아 헤맨다”. 미디어캐슬 제공
■ 용감하게 한가운데로 돌진하다 혼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 <별의 목소리>(2002년)로 애니메이션 고베 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신카이 감독은 이후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언어의 정원> 등을 통해 차세대 대표 주자로 급부상했다. 영화는 감독의 전작에서 보였던 장기가 살아 있다.
<별의 목소리>에서처럼 주인공들은 분리된 공간에서 애틋한 마음을 키운다. 신카이 감독의 ‘일본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드러난다. <언어의 정원>에서 문자 이전 언어인 ‘야마토 고토바’에서 언어의 ‘회화성’을 건져냈던 감독은 이번에도 고어에서 주요한 모티브를 가져온다. 고어에선 ‘황혼’의 시간대를 ‘누군가 그는’ ‘그 뉘신지’ 등으로 부른다.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볼 수 없는 시간대의 특성을 살린 명명이다. 이 ‘그 뉘신지’의 시간은 영화에 서정을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을 작업한 안도 마사시가 작화를,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2015년)를 만든 애니메이터 다나카 마사요시가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일본 록그룹 래드윔프스는 서정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래드윔프스는 영화에 대해 “도망가지 않고 사랑이 한가운데를 향해 똑바로 나아간다”고 표현했는데, 실로 영화는 용감하게 한가운데로 돌진하고 있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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