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려진 시간>의 주연 강동원이 2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쇼박스 제공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에는 장르와 역할에 관계없이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에 집중된 관심이다. 16일 개봉하는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에서 섬에서 아이 상태로 실종됐다가 어른이 되어 돌아온 성민 역을 맡은 그는 두 번을 ‘등장’한다. 사라졌던 성민(이효제)이 수린(신은수) 앞에 어른이 되어 등장하고, 수린에게 보내는 성민의 일기장 편지를 통해 전개되는 플래시백 장면에서 아역이 성인 역으로 바뀌며 한번 더 등장한다. 단, 관객들은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엄 감독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블라인드 관객 시사회에서 강동원이 등장하자 관객들이 환호하며 반가워하더라. 영화가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재미였다”고 등장의 임팩트를 이야기했다. 관객들이 등장을 기다리는 ‘스타 파워’를 견지하면서, 17년차 배우로서의 연기 욕심을 저울질해나가기, 그 사이에서 배우 강동원은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을까. 강동원을 2일 오후 서울시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작품들의 면면에서 강동원이 취하는 절묘한 균형감이 엿보인다. 2015년 말 <검은사제들> 장재현, 올초 <검사외전> 이일형 등 동년배 신인 감독의 입봉작에 이어 <가려진 시간> 역시 동갑내기 신인감독의 작품이다. 작품은 강동원이 선택했기에 힘을 얻었다. “타율이 꽤 좋아서, 투자가 안 되지 않는다. 홈런이 없었는데 올초 홈런(<검사외전> 970만)도 쳤고….” 그는 “비상업적인 작품도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상업적인 것만 하면 지친다”고도 했다.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 기질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기질이 삐딱한 게 있다. 초등학생 때 모두 롯데를 응원하니까(강동원은 부산 출신이다) 싫어서 빙그레를 응원했다. 아버지가 ‘너는 왜 빙그렌데’라고 하시길래 ‘독수리’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것 만드는 게 재밌다. 클래식한 것을 만드는 것도 좋다.”
‘스타 파워’는 <가려진 시간>의 촬영 현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촬영도 늦춰지고 제작비도 바닥나면서 시간에 갇혀 섬을 빠져나갈 수 없는 장면을 대사로 처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시나리오를 본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었고, 감독님한테 우리가 주장했다며 장면을 찍자고 했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아이디어를 보태는 등 17년차 배우의 경력도 힘이 돼줬다. “비누 조각을 할 때 공중에 뜨니까 그때그때 치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도 여러번 보았다. “중간중간 2, 3차례 봤다. 감독님이 많이 물어보시더라. 기자 시사회에서는 시지를 입힌 뒤 풀 버전을 보았는데, 디테일하게는 거기서 사운드가 훅 끊기지 않냐, 그 씬에서 밀고 가면서 끊어줘야 되지 않냐 등의 이야기도 했다.”
균형감은 멈춘 시간을 살지만 세월을 견디어냈기에, 어린아이면서 어른인 성민의 연기에도 발휘되었다. “또래 남자가 봐도 오글거리지 않으면서 젊은 여성 감성도 잡을 수 있도록 톤을 조절했다.”
절묘한 균형의 기질은 ‘시간’을 견디어냈기에 나왔다. “<늑대의 유혹>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라고 하면 그런 시나리오들이 비슷하게 들어온다. 그런 거에 안 따라가고 재밌는 걸 하려고 했다. 예전에는 투자가 안 되면 어이없게 시나리오를 바꾸라는 요구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줄어들게 되었다.” 12월에 <마스터>(조의석 감독)가 개봉하고, 내년의 스케줄도 꽉 차 있다. 성민처럼 시간에 대한 조바심이 있을 법하다. “제일 아까운 게 시간인 것 같다.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안 좋아하고, 막연히 쉬는 것도 안 좋아하는 편이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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