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르게 깊고 짙푸른 바닷속으로 여자들이 맨몸으로 뛰어든다. 물안경 말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숨을 멈추는 것만으로 버텨내면서 전복, 문어, 소라, 우뭇가사리를 건져낸다. 하루 8시간 물 한모금 먹지 않고 수백번씩 바다로 자맥질해 들어가 따온 것들은 가족의 밥이 되고 아이들의 학비가 된다.
2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은 제주도 우도 해녀들의 삶을 담고 있다. ‘물숨’이란 해녀들이 물속에서 쉬는 숨,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물질을 하다 전복이나 값진 해물을 보면 꼭 캐고 싶어지지만 욕망에 홀려 타고난 숨의 능력보다 조금만 더 바다에 머물러도 물숨을 먹게 된다. 해녀들은 “바다 가면 욕심내지 마라,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와라”라고 가르치고 다짐한다. 해녀들은 “숨은 하늘이 주고 바다가 허락한 만큼만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더 값비싼 해물을 캘 수 있지만, 타고난 숨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바다의 깊이는 다 다르다.
땅은 척박하고, 곡식은 키우기 힘들고, 자란 곡식도 태풍이 다 휩쓸어가버리는 제주에서 여인들은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 매일 죽음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수압의 고통을 이기려 빈속에 독한 약을 털어넣으며 고된 노동을 하지만, 한평생 물질하며 살아온 해녀 할망들은 씩씩하고 강인하다. 숨을 참고, 욕심을 자르고, 욕망을 다스리며 바닷속에서 늙어간다.
여든다섯, 여든여덟살 해녀 할망들은 육지에선 늙고 병들었지만, 푸른 바닷속에선 백발의 명사수가 되어 작살로 순식간에 물고기를 잡는다. 오십대 딸은 함께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목숨을 잃은 팔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바다가 원망스럽지 않으냐,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들은 말한다. “바다가 내 밥이고 일터야” “내가 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바다는 공짜로 다 준다” “바다에 나가면 그냥 좋아”라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해녀가 되고 싶다”고.
4·3의 고통 어린 땅, 이제는 관광객의 떠들썩함과 투기 광풍에 뒤덮인 제주의 한켠에서, 꿋꿋하게, 독립적으로, 그러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비밀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두렵고 휘청거리고 힘겹지만 매일 용감하게 삶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내 고향 제주에는 매일 바다로 출근하는 여인들이 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고희영 감독의 삶과 해녀들의 삶이 만나 만들어졌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 감독은 바다에도, 해녀에도 관심이 없었다. 육지로 나와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쟁쟁한 방송작가로, ‘철의 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능한 일벌레로 살았다. 마흔에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처음으로 해녀의 삶이 마음에 들어왔다. “욕심만 부리고 살았던 게 후회되고 죽음이 두려운 그때 어떻게 해녀들은 두려움 없이 무덤이 될 수 있는 바다로 매일 뛰어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해녀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조금씩 다가가 마음을 열고 함께 생활하며 7년간 촬영하고, 후반작업에 2년의 시간을 더 들였다. 고 감독은 그렇게 “해녀들의 바다에서 내 인생의 바다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에 공감한 재일 한국인 음악가 양방언이 음악을 더했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원고를 썼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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