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을 알 수가 없다’, ‘끝까지 가야 한다’. 최근 수작들의 공통점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데몰리션> <헝그리 하트> <미친개들>. 각 배급사 제공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미친개들>의 내레이션이다. 딱히 하나로 특정지을 수 없는 복합 장르로 진화한 영화의 경향일까. ‘속을 알 수가 없다’,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게 최근 수작들의 공통점이다. 남녀의 알콩달콩한 멜로처럼 보였는데 스릴러로 발전해가는 <헝그리 하트>, 아내가 죽은 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의 심리치유극 <데몰리션>, 초짜 은행 강도들이 인질과 심리극을 벌이다 예상 못한 반전으로 끝나는 <미친개들>이 그러하다.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영상 연출을 보여주는 공통점도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헝그리 하트>는 뉴욕의 차이니스 레스토랑 좁은 화장실에 갇힌 남녀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남자가 화장실에 있는 사이 들어온 여자, 나가는 문이 잠기고 만다. 둘은 꼼짝없이 갇혀 꼭 붙은 채 구조를 기다린다. “여기 가게 이름이 뭐죠?” “황금 분수?” “아니 밥 먹으러 왔으면서 그것도 몰라요?” “당신은?” “저는 지나다 급해서 온 거라.” 화장실의 티격태격을 계기로 만난 미나와 주드는 연인 사이가 된다. 미나가 아이를 가진 뒤 둘은 결혼을 한다. 임신은 미나를 완전히 변하게 한다. 채식을 고집하고 병원을 거부한다.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주드와 키운 채소만을 고집하는 미나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힘없는 목소리의 미나가 자는 주드를 깨우면서 하는 말은 어떤 스릴러보다 오싹하다. “아이가 고기를 토했어.” <헝그리 하트>는 좁은 공간을 비추는 와이드 앵글과 거친 효과를 내기 위해 1970년대 모던 렌즈를 사용하고 16㎜ 필름으로 촬영했다. 애덤 드라이버와 알바 로르바케르는 71회 베니스영화제 남녀주연상을 수상했다.
<데몰리션> 역시 밀폐된 공간, 부부의 대화로 시작한다. 대화는 차가 돌진하면서 중단되고 아내는 죽어버린다. 남은 남자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홀)는 장례식에서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데이비스는 편지를 쓴다. 아내가 죽은 병원에서 오작동한 자판기 회사에 환불을 요청하는 편지다. 장례식 다음날 출근하고 자동응답기에는 “아내는 고인이 되어 통화가 안 됩니다”라고 남겨놓는다. 데이비스는 아내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 않다”. 대신 냉장고와 컴퓨터를 분해하고 철거 용역으로 일한다. 자판기 회사에 보낸 항의 편지를 읽은 고객상담소 직원 캐런(나오미 와츠)은 데비이스에게 전화를 건다.
“모든 것은 은유로 보인다.” 데이비스는 편지를 써가면서 말한다. <데몰리션>에서 파괴는 상실감을 드러내는 심리적인 은유다. 이 상실감을 영상화하기 위해서 <이터널 선샤인>처럼 느닷없으면서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온다. <이터널 선샤인>처럼 바닷가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오는 13일 개봉. <미친개들>에서 초짜 은행강도의 범행은 은행을 나서는 순간부터 틀어져버린다. 총격전 중 경찰을 쏘게 되고, 인질을 잡았는데 인질까지 살해한다. 이동하기 위해 차를 잡았는데 하필이면 이식수술을 위해 아이를 급히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남자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강도 사건을 보도하고 강도와 인질은 한 차를 타고 국경을 향해 나간다. 로드 무비 특유의 풍광을 살린 스타일리시한 화면이 스릴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결국 공들여 쌓은 스릴을 한 시퀀스에서 일거에 뒤집어버리는 충격을 가한다. 1974년 작 마리오 바바의 컬트 스릴러인 동명의 작품을 추격전에 초점을 맞추어 리메이크했다. 오는 7일 개봉.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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