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까지 6개월도 남지 않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이하 부산영화제)가 중대 기로에 섰다. 영화제의 독립성을 요구하며 영화인들이 집단 불참(보이콧)까지 결의했지만, 부산시는 정관 개정 작업 과정에서 여전히 영화제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쪽 영화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부산 시민과 영화인, 영화 팬들이 공들여 쌓아온 ‘아시아 최고 영화제’의 위상도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19일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시는 시장이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임명하는 쪽으로 정관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로부터 복수의 후보를 추천받아 임명한다고 하지만, 영화제 쪽은 부산시가 영화제를 계속 장악하려 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2014년 제19회 영화제 당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이빙벨> 상영으로 시작된 갈등 끝에 부산시가 이용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재임명하지 않아 사실상 해촉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영화제 쪽은 영화인들이 다수 참여하는 총회에서 조직위원장을 임명해 부산시의 입김을 차단하고 독립성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의 이런 정관 개정 추진과 관련해 서병수 부산시장 쪽은 “영화제가 외부인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라고 하지만, ‘꼼수’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서 시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영화제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민간에 넘기겠다고 밝혔지만, 정관 개정 작업의 마무리를 명분으로 이제껏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와 영화제 집행위원회의 정관 개정 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영화인들은 투표 끝에 ‘영화제 집단 불참’까지 결의했다. 18일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부산영화제 참여를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놨다. 작품 출품과 행사 참여 등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부산영화제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의는 비대위에 소속된 9개 단체(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가 지난 1일부터 일주일간 단체별 투표를 거친 결과로, 단체별 회원의 과반이 응답했는데 90% 이상이 ‘전면 거부’에 찬성했다. 비대위는 성명서에서 “영화계가 이렇게 한목소리를 낸 것은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이후 10년 만”이라며 “서병수 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와 부산영화제 독립성 보장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영화제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는 19일 <한겨레>에 “부산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들이 마련된다면 재투표에 들어가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보이콧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10월6일부터 열리기에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국내 영화인들의 보이콧 움직임에 호응해 외국 유명 영화인들의 영화제 불참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부터 베를린, 로테르담 등 국제영화제에서 외국 영화인들은 ‘아이 서포트 비프(BIFF)’(부산영화제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행사를 열어 부산시의 정치적 개입을 비판하고 부산영화제의 독립성 보장을 촉구해왔다.
실제 영화제 초청작 선정을 위해 지난달 시작된 국내외 작품 공모에서 응모 작품 수가 지난해에 견줘 줄었다. 김지석 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응모가 줄고 있다. 올해는 초청작품 축소가 불가피하며 축소 폭이 얼마일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 탓에 영화계 일각에선 부산영화제가 20년 동안 쌓아온 ‘아시아 최고 국제영화제’라는 명성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한다. 특히 2011년 시작된 베이징국제영화제 쪽이 부산영화제를 넘어서기 위해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임을 걱정한다.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쪽의 갈등은 부산시가 2014년 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하자 부산시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위원장 임기를 연장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정기총회에서 신규 자문위원 68명을 포함한 집행위원회는 정관을 개정할 임시총회 개최를 요구했다. 이에 부산시는 ‘신규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 11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자율성 침해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방법까지 사라진 뒤 비대위의 ‘보이콧’ 결의가 나왔다. 부산시 관계자는 19일 “비대위의 영화제 참가 거부 결의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부산시는 조직위원장 민간화를 포함한 합리적 정관 개정을 위한 협의를 집행위와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창현 구둘래 기자, 부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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