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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원작에 입체감 더한 ‘알 파치노의 샤일록’

등록 2005-10-19 16:32수정 2005-10-20 14:27

영화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그간 던져온 질문은 많다. 과연 희극인가? 샤일록은 그저 악덕한 고리대금업자인가? 바사니오가 사랑하는 포티아가 머무는 섬 벨몬트는 사랑과 신의로 가득한 이상향일까? 유태인을 철저히 배제한 기독교인, 그들만의 세상은 아닌가? 툭하면 목숨을 내주겠다는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에는 셰익스피어의 동성애적 코드가 담겨있지 않나?

400년전 희곡은 여전히 살아있고 소통하는데, 우린 어쩌면 “반드시 1파운드의 살만 베어라, 피가 한 방울도 묻어선 안된다”며 칼을 든 샤일록을 멈추게 한, 천하의 ‘명판결’만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작을 고스란히 영화로 살린 <베니스의 상인>이 오는 21일 개봉한다. 연극의 무대를 실재하는 베니스로 삼았다는 단순한 영화적 장점을 뛰어넘게 한 이는 샤일록을 연기한 알 파치노다.

16세기 ‘지중해의 여왕’ 베니스. 무역, 금융자본이 몰려든 욕망의 도시를 카메라는 이면까지 속속 드러낸다. 도시는 증오, 사랑, 분노 따위를 감추지 않는다. 가뜩이나 유태인을 박대하던 당대 의식이 응집된 곳이었다.

그 한 가운데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서있다. 집밖에선 빨간 모자를 써야하는 유태인의 비애감은, 가슴을 드러내고 호객질을 해야했던 창부의 것과 다를 바 없다.

‘베니스의 거상’ 안토니오가 이유없이 샤일록의 얼굴에 침을 뱉어도 시비거리가 되지 못하고(원작에선 법정에서의 진술로만 되어있지만 영화에선 거의 첫 장면으로 부각된다), 딸이 돈을 갖고서 기독교도인 애인과 달아났을 때도 샤일록은 메아리 없는 절규만 할 뿐이다.

사랑하는 포티아에게 구혼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바사니오에게 그의 절친한 친구,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삼겠다는 샤일록의 욕망은 차라리 정직하다. 영원한 사랑을 내걸고 현명하고 자애로운 포티아에게 구애하는 바사니오, 아낌없는 우정을 담보로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안토니오의 것에서 멀지 않다.

결국 안토니오는 파산해 법정까지 왔지만, 피와 살을 구별하는 판결로 상황은 역전되면서 샤일록은 모든 걸 잃는다. 알 파치노가 남긴 샤일록의 비극적 그림자는 그렇게 원곡보다 짙어진다.

의상, 배경 모두 16세기 베니스의 것이다. 바사니오를 연기한 조셉 파인즈, 포티아의 린 콜린즈 모두 원곡의 기품있는 수사를 구현하는 데 어색함이 없다.

지루할 수 있겠지만, 원작(연극)보다 빠르다. 원작이 남긴 질문도 그대로 살아있다. 제레미 아이언스(안토니오)의 비중이 다소 적은 게 아쉽다. <일 포스티노>의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영화사 도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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