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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국제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

등록 2014-02-27 20:02수정 2014-02-28 08:33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 칼럼니스트
듀나의 영화 불평
한국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경쟁작을 내지 못했다. 슬슬 조바심을 내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왜 5대 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올라가는 한국 영화들이 줄어들고 있는가. 우리가 영화를 잘못 만들고 있거나 잘못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박찬욱과 봉준호 이후로는 세계적인 스타 감독도 내지 못했네? 한국에 오는 외국 연예인들에게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아직도 <올드보이>라고밖에 말을 안 하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올드보이> 운운은 그냥 당신들이 무례했던 거다. 모든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 영화계를 주목하고 있다는 착각은 거두기 바란다. 타이와 인도네시아 영화계는 모두 영화 선진국이고 모두 굵직한 수상작과 히트작들을 내고 있지만 여러분은 이 동네 영화들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인도네시아에 가서 비슷한 질문을 받고 “<더 레이드>요!”라고 답하면 그 사람들도 지겨워하지 않을까? 어차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면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게 이 동네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들은 아직도 꾸준히 한국 영화들을 챙겨 본다.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자.

그리고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실속을 전혀 차리지 못했던 건 아니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비경쟁작이었지만 올해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 중 하나였다. <콩나물>, <논픽션 다이어리>, <철의 꿈>처럼 야무진 수상작들도 있었다. 이들을 보고 빈손으로 왔다고 하면 섭하다.

결정적으로, 이런 식의 조바심은 이해하기 어렵다. 김기덕이 <피에타>로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게 겨우 2012년이다. 기껏해야 1년하고 몇 개월이 지났다. 한국 영화가 또 상을 받지 못했다고 걱정하기엔 기간이 너무 짧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은 영화제를 올림픽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영화를 들고 나가 상을 타와 그 영광을 조국에 바치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밖에 없는 격투장. 다른 때엔 멀쩡한 감독인 임상수가 처음부터 수상 가능성은 티끌만큼도 없었던 <돈의 맛>을 들고 칸에 갔다가 영화제가 끝나고 그렇게 우울증에 빠졌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임 감독에겐 사과의 말씀. 하지만 계속 놀려먹고 싶은 걸 어쩌랴.)

하지만 영화는 올림픽이 아니다. 누가 상을 받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상은 늘 축제의 일부일 뿐이다. 어차피 누가 상을 받건 그 결과는 당사자와 업계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겐 곧 잊힌다. 그리고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5대 경쟁 영화제라는 것의 무게감도 이전만 못하다. 베를린보다는 토론토가 더 중요해졌고,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축제처럼 엉뚱하게 주목받는 행사도 있다. 게다가 경쟁 영화제 안에서 보더라도 상을 받는 영화가 늘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진짜 평가는 영화제가 끝난 뒤 관객들이 매긴다.

심지어 아까 비교 대상이 되었던 올림픽도 보기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얼마 전에 끝난 소치 겨울올림픽만 해도 뻔한 것 같은 승부가 그렇게 뻔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예였다. 논란이 되는 여자 피겨스케이팅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할 입장은 못 된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온 누가 어떤 메달을 땄건, 지금처럼 영상기록이 공유되는 시대에 진짜 판단이 내려지는 건 경기가 끝난 뒤가 아닐까. 국제영화제를 거친 모든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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